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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 20년-한국 경제 현주소] “앞으로 1~2년간 세계금융 긴축… 성장·청년고용 집중해야”

입력 : 2017-11-19 19:59:54 수정 : 2017-11-19 21: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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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서 고용창출 이뤄져야… 서비스 등 시장 개방 중요/‘경제 뇌관’ 1400조 가계부채 관리, 한은 독립성에 달려/ 中·美 리스크 등 외부 변수, 개혁 통해 회복력 키워야 “한국 정부가 자금지원 신청을 회피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만 역부족일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 1997년 11월19일)

“한국이 희생을 수반하는 국제통화기금(IMF) 조건을 이행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다.”(월스트리트저널, 1997년 12월8일)

외환위기 당시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해외 언론의 시선은 싸늘했다.

국가부도 직전에서 기사회생한 한국은 20년이 지난 지금 외환보유액 기준 세계 9위의 나라가 됐다. 국제신용평가기관들도 한국의 신용등급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은 더 이상 외환위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됐을까. IMF 아시아태평양 국장을 지낸 아누프 싱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와 IMF 상임이사를 지낸 배리 스터랜드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을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만나 한국 경제의 실상을 진단해봤다. 두 사람은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아시아 외환위기 20년 후’라는 주제로 연 ‘2017 글로벌 금융안정 콘퍼런스’에 참석차 방한했다. 
아누프 싱 조지타운대학교 교수(왼쪽), 배리 스터랜드 브루킹스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외환위기 당시와 지금의 한국 경제를 비교 평가해 달라.

아누프 싱(이하 싱): “한국은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견뎌냈다.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여러 가지 개혁 조치를 충실히 실행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1위까지 성장했다. 우선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여건)이 매우 견조하다. 공공부채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대부분의 국가보다 낮은 편이고, 정부의 재정 균형도 잘 잡혀 있다. 대외수지도 견조하고, 외환보유액도 높은 수준이다. 즉, 미래 위기의 예방이라는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완충이 돼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도 이제 초점을 위기 예방보다는 성장 지속에 맞춰야 한다.”

배리 스터랜드(이하 스터랜드): “한국 경제가 20년 전에 비해 훨씬 튼튼해졌다. 성장의 토대도 훨씬 탄탄해졌다. 외환위기 당시의 교훈을 되새겨 잘 풀어간 것 같다. 한국은 더 유연한 환율정책을 쓰고, 금융감독은 더 철저해졌다. 기업 지배구조도 탄탄해졌다. 거시경제 틀도 건전하다. 경제의 취약성은 개선됐지만 20년 전에 비해 새로운 리스크도 등장했다. 중국 경제와 연관된 취약성이다. 중국 경제가 높은 성장을 하면 한국이나 호주 등 인근 국가에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 리스크 요인이기도 하다.”

―한국은 외환위기를 극복했지만 저성장과 양극화, 높은 실업률 등과 같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스터랜드: “저성장과 양극화, 높은 실업률이 외환위기의 후유증은 아닌 것 같다. 모든 국가가 지속적으로 해결해야 할 이슈들이 생기고, 그때마다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 한국 경제가 겪고 있는 여러 이슈는 다른 선진국도 겪고 있다. 오히려 한국은 과거의 위기를 잘 극복했기 때문에 더 선진화됐다고 생각한다. 선진경제에 비해서도 한국 경제는 그리 나쁘지 않다. 부정적인 면만 보려 하면 부정적인 것만 보이겠지만 긍정적인 면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여러 개혁에 성공하면서 한국의 소득 수준은 높아졌다. 한국 정부가 지금 안고 있는 개혁과제들은 20년 전 위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 경제가 변화하면서 새롭게 생긴 것이다. 일부 이슈는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 변화, 여성 경제활동 참여 등과 관련된 것으로, 외환위기와는 관련이 없다.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고해서 한국만의 해결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싱: “저성장과 양극화, 높은 실업률을 외환위기와 연결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이 이제 선진경제가 됐고, 다른 선진경제가 직면한 이슈를 한국도 겪는 것이다. 선진경제가 계속해서 연 7%씩 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 이제는 그 절반 수준에서 성장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인구 고령화 탓이기도 하다. 한국의 도전 과제는 다른 선진국도 겪고 있는 문제다. 한국은 제조업 선도국가다. 한국 제조업의 생산성은 아주 높지만 서비스업이나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제조업의 절반에서 3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 이런 영역에서 경제를 더 개방해서 제조업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생산성을 올려야 한다. 고용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제2의 외환위기 가능성은 잠복해 있나.

스터랜드: “20년 전과 같은 리스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국제적인 자본 흐름은 변동성이 있으니 이러한 자본 흐름의 리스크가 커질 가능성은 상존한다. 하지만 외환위기는 이것보다 더 많은 요인에 좌우된다. 규제 당국의 감독 여부도 변수다. 한국의 규제 당국은 적절히 대응하고 있다. 국제자본 흐름의 변동 리스크는 있지만 그에 따른 결과나 여파는 20년 전처럼 심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늘어난 외환보유액도 안전판이다. 물론 새로운 리스크는 있다. 지난 몇 년간 한국 경제가 경험한 것처럼 중국 경제가 야기할 변동성이다.”

―문재인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소득주도 성장을 표방하고 있다.

싱: “고용창출을 동반한 성장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는 올바르다. 현재 한국의 전반적인 실업률은 낮지만 청년실업률은 10%에 달하는 것으로 안다. 한국에서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있다고 들었다. 고용창출은 중요한 이슈이지만 고용은 민간 부문에서 나와야 한다. 정부는 현재 공공부문의 고용창출과 최저임금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하나의 단계에 불과하다. 서비스 부문을 더 개방하고 중소기업 부문도 더 개방해야 한다. 앞으로는 성장이 제조업뿐 아니라 서비스 부문, 특히 민간 부문에서 나와야 한다. (문재인정부가 내건) 혁신성장이라는 콘셉트는 중요하다. 세상이 빨리 변하고, 기술이 더 중요해지고 있어서다. 혁신성장을 위해서 정부는 앞으로 교육 수요의 변화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과거에 한국 학생은 수학과 같은 특정 과목을 잘했다. 그러나 이제 포커싱을 바꿔야한다. 자라나는 세대가 갖출 기술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교육 내용도 이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도 해당하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특수직업교육이 중요해진다. 한국 정부도 앞으로 미래에 창출될 여러 직업에서 요구하는 재능을 갖춘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으로 개편해야 한다.”

―20년 전과 같은 위기를 피하려면 어떤 대비가 필요한가.

스터랜드: “한국이 국내 리스크 요인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성장 둔화 등에 대해서는 잘 관리하고 있으나 외부리스크 요인에 대해서 좋은 회복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중국 경제의 급격한 성장 둔화나 미국의 정책 변수(금리 인상이나 미국 재정정책 변화)에 대응한 회복력이 있어야 한다. 다행히 이런 외부 리스크는 1년 전보다 개선됐다. 중국은 기업 부채 문제 해결에 나섰고 미국의 통화정책은 굉장히 부드럽게 관리되고 있다.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우려도 그간 걱정한 것에 비해서는 덜한 편이다. 그렇다고 안주해서는 안 된다. 중국·미국발 리스크는 언제든 생겨날 수 있다. 꾸준히 개혁해 나가야 한다.”

싱: “앞으로 1∼2년을 내다보면 글로벌 금융여건이 긴축적일 것이다. 선진국의 통화정책은 기존의 부양책을 거둬들인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분야로 유동성이 대거 흘러들어간 이머징(신흥) 시장에는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위기 예방보다는 성장 지속에 맞춰야 한다. 어떻게 성장을 지속하고,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느냐가 중요하다.”

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

사진=이제원·남정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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