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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와 만납시다] "'속세'를 떠난 지 벌써 10개월…5일이 지나면 집으로 갑니다"

입력 : 2017-11-11 08:00:00 수정 : 2017-11-11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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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숙학원 수험생입니다 / 꿈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재수생활' / 독하게 마음먹고 외부 세계와 단절 / 이성교제 금지… 벌점 쌓이면 쫓겨나 / 운명의 수능날, 노력 헛되지 않기를 하늘이 푸르다. 공기도 상쾌하다. 학원 로비에 내려오니 트레이닝복 차림의 몇몇 수험생이 신문을 훑고 있다. 약 1주 앞으로 다가온 대학수학능력시험 마무리에 여유가 없기는 하지만, 각종 사회 이슈도 놓쳐서는 안 된다.

기숙학원 생활이 벌써 10개월째다. 오는 16일 수능이 끝나 가족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린다. 이튿날 발표될 가채점 결과와 여기저기서 들리는 입시 분석 뉴스 등으로 초조하겠지만 성적표가 오기 전까지는 조금이나마 여유를 느끼지 않을까 기대한다.

캠퍼스를 누비는 대학교 1학년 친구들을 떠올리면 부럽기는 하지만, 내 꿈을 향해 나아가는 단계에 있으니 이곳에 들어온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나 스스로 도전하고 싶었고, 가족을 설득해 기숙학원을 선택했으니 마무리까지 굳게 책임지는 것도 내 몫이다.

경기 용인 소재 종로기숙학원 내 숙소의 모습.
수능이 끝나면 하고 싶은 게 많다. 영화도 보고 싶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싶다. 일단 친구들과 계획한 일본 여행 약속은 꼭 지킬 작정이다. 수험생 동료 누군가는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다”고 했다. 삼시세끼에 간식까지 이곳 구내식당에서도 챙겨 먹을 수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엄마가 해주는 밥이 최고다.

같은 이과생인 형철(가명)이가 가족을 만나고 왔다고 했다. 외출은 아니고 면회다. 가족을 보고 온 형철의 얼굴에 여러 감정이 스치는 것 같다. 부모가 매달 보내주는 200만원 상당의 수업료와 생활비. 큰 부담이 될 텐데 자기 선택을 응원해준 부모에게 늘 감사하다던 형철이다. 수험생 특유의 검은 점퍼, 슬리퍼 차림의 형철이의 얼굴은 ‘엄마, 아빠 반가웠어요. 그리고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형철이는 “오랜만에 어린 여동생까지 왔다”고 전했다. “부모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고 물으니 “처음 보자마자 엄마가 손을 잡아줬다”며 “긴장하지 말고 잘하리라 믿는다고 말씀하셨다”고 답했다. 순간 형철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건 왜일까. 가족에게 미안하고 마지막까지 잘해야 한다는 내 부담감이 형철이에게 투영되었기 때문일까.

기숙학원에 들어오는 수험생들 유형은 다양하다. 친구 만나기를 좋아해 재수생활에 방해가 될까 봐 자원한 이도 있고, 조금만 점수를 더 높이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세상과의 일시적인 단절’을 선택한 친구도 있다. 우리가 흔히 ‘속세’라고 표현하는 외부 세계와 잠시 연락을 끊는다면 목표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수험생도 있었다. 부모 권유로 들어온 이도 있다. 이들 중 몇몇은 기숙학원을 견디지 못하고 나간다. 그런 소식을 들으면 안타깝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나이 앞자리가 달라진 우리는 소위 ‘한창’이다. 어찌 이성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있을까. 더구나 같은 건물에서 여러 달을 지내다 보면 이래저래 신경을 쓰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이성교제로 벌점이 쌓인 두 남녀가 퇴소당한 일도 있다. 수험생에게는 ‘잔인’한 현실이지만 선택에는 그만큼 책임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남녀 수험생은 같이 수업은 듣지만 밥은 따로 먹는다.

수능을 코앞에 두고 진로를 놓고 교사와 머리를 맞대는 수험생들이 부쩍 늘었다. 그간 모의고사 성적을 토대로 어떤 대학을 노릴 수 있을지 점쳐보는 차원인데, 다행히 기대했던 말을 듣게 되면 마음이 놓인다. 서울의 한 대학을 노리는 나도 얼마 전 과목 교사와 원장에게 상담을 받고 한결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16일 마지막 종소리가 울리고 시험장에서 나오면 무슨 생각이 떠오를까. 치열했던 지난 1년을 돌아보며 허탈함이 더 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입가에 희미한 미소만은 띄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래야 날 응원해준 친구와 가족에게 보답했다고 자위할 수 있을 테니까. 다 같이 힘내요. 우리는 비록 남들보다 약간 느리지만 제대로 된 방향을 향해 뛰고 있다고 믿어요.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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