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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청정국' 지위 되찾자] 반평생 중독 생활·전과 15범…"저는 마약중독자입니다"

입력 : 2017-10-31 06:00:00 수정 : 2017-11-01 16: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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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국회·청와대 앞 1인시위 이어가는 조윤휘씨 / “혼자선 못 끊는 마약… 치료·재활 기회 늘려 새 출발 도와야”
“33년 전 처음 마약을 접한 뒤 마약 투약 혐의로 13번 실형을 살고 목포교도소에서 마지막 형기를 치른 뒤 시민의 도움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마약투약자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징역을 살게 하는 현실이 진정 누구를 위한 길일까요.” 마약류 중독자였던 조윤휘(52)씨는 30일로 46일째 매일 국회와 청와대를 오가면서 이같이 1인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마약류 중독자가 이같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은 이례적이다. 전과 15범의 ‘주홍글씨’를 새긴 그가 반평생 넘는 중독생활을 뒤로하고 이같이 전면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 의지만으론 탈피 힘든 마약 중독의 쳇바퀴

지난해 3월 조씨는 다시 한 번 새출발의 부푼 꿈을 안고 택시운전 면허 시험을 봤다. 우여곡절 끝에 합격해 직업다운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마약류 중독으로 인한 전과가 문제가 돼 면허를 발급받을 수 없다는 것.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응시료를 지불하고 제대로 치른 시험에 합격까지 한 뒤 실패이다 보니 맥이 풀렸다.

지난달 15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조윤휘씨. 마약류 전과 15범인 그는 마약류 판매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마약류 중독자에 대한 치료·재활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남제현 기자
전과자인 조씨가 택할 수 있는 직업은 사실상 국내에는 없다. 시도를 안 해본 것도 아니었다. 트럭을 몰고 다니면서 이런저런 물건을 팔고 다니기도 했고 대리운전도 여러 차례 해봤다. 이 과정에서 사고를 친 적은 없었다. 다만 시비가 속출하는 길거리 장사나 취객을 주로 상대하는 대리운전기사의 특성상 경찰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전과가 드러날 것에 대한 공포 때문에 오래 지속할 수가 없었다.

택시 면허의 불발은 마지막으로 붙잡던 동아줄이 끊어진 느낌이었다. 막대한 허탈감과 좌절의 소용돌이 속에 조씨의 시선은 다시 마약으로 향했다. 10번 넘는 실패를 또다시 반복해야 하는 현실이 막다른 벽으로 다가왔다.

조씨가 다시 마약의 늪에 빠진 걸 알게 된 그의 어머니는 경찰에 신고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마약 투약에 대해 자수하겠으니 대신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경찰은 조씨를 서울 은평시립병원에 인계했다. 하지만 의료진은 마약류 중독자라는 이유만으로 조씨를 문전박대했다고 한다.
결국 조씨에게는 ‘감옥행’ 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 초범이던 20대에는 집행유예를 받기도 했지만 재범이 누적된 탓에 형이 가중되며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마약류 제조·판매자와 투약자의 형량 차이가 별로 없어 마약류 공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지 못하고 있다”며 “법을 어기고 마약을 투약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지만 이를 바로잡고 새출발하기 위한 기회가 전무한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의 처벌 조항을 살펴보아도 취급한 마약류의 종류나 자격 등에 대한 구분은 있지만 제조·판매자와 투약자의 형량 차이는 뚜렷하지 않다. 마약류 제조·판매에 대해선 가차 없이 사형까지 시키는 중국 등 처벌이 가혹한 해외 사례와 달리 우리나라는 징역 7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전체의 5% 미만(2016년 기준)이다. 

◆“어렵게 이어가는 1인시위, 변화의 마중물되길”

조씨는 매일 오전 6시 이전에 눈을 떠 오전 8시 전에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선다. 팻말에는 △마약류 판매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마약류 중독자에 대한 치료 확대 △치료보호예산 확대의 3가지 요구가 담겨 있다.

관련 경험이 전무했던 조씨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시행착오가 있었다. 의지 상실로 다시 전과를 늘리고 말았지만 조씨는 자신의 전과 경력 숫자 이상으로 단약(마약을 끊는 것)을 시도했다. 많은 실패를 맛봐야 했다.

하지만 그는 ‘지천명’의 나이를 넘겨서까지 과오만 반복할 순 없었다. 좌절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다른 중독자들의 사례를 지켜보면서 가족에게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다는 생각도 강해졌다. 그래서 1인시위에 나선 것이다.

지금 조씨에게 1인시위는 정부에 관련 대책의 개선을 촉구하는 행동이면서도 개인적으론 스스로 변화 의지를 다지는 의식이기도 하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1인시위자가 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지금에야 가볍고 편리한 시위 장비를 갖췄지만 처음에는 몸집만 한 헝겊의 네 귀퉁이에 동파이프를 덧대 팻말을 제작했다. 접을 수도 없는 팻말을 들고 출퇴근시간에 지하철로 국회와 청와대 앞을 오가다 보니 매순간 식은땀 범벅이었다. 초반에는 광화문광장 일정까지 소화했는데 엄청난 인파 앞에서 죄의식과 불안감은 더욱 가중됐다. 바람이 심할 때에는 고정이 잘 되지 않는 팻말을 붙잡고 날아가는 전단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하기도 했다.

하지만 변함없는 의지를 지켜본 주변 시위자들이 팻말제작법과 시위하는 법 등을 전수해줬고, 다른 중독자는 물론 일반 시민까지 독려자가 조금씩 늘어갔다. 이에 조씨는 다시 흔들릴 뻔했던 의지를 붙잡을 수 있었다.

가장 기뻐하는 것은 역시 조씨의 가족들이다. 마찰과 반목, 심지어는 폭행으로 점철된 수십년을 뒤로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 조씨에 대한 믿음이 싹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씨는 “마약류 중독으로 수십년을 허비하면서 단약이 혼자만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을 알게 됐다”며 “이로 인해 신음하는 중독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맹목적인 죄의식을 탈피해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내야할 때”라고 당당히 말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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