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전 처음 마약을 접한 뒤 마약 투약 혐의로 13번 실형을 살고 목포교도소에서 마지막 형기를 치른 뒤 시민의 도움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마약투약자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징역을 살게 하는 현실이 진정 누구를 위한 길일까요.” 마약류 중독자였던 조윤휘(52)씨는 30일로 46일째 매일 국회와 청와대를 오가면서 이같이 1인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마약류 중독자가 이같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은 이례적이다. 전과 15범의 ‘주홍글씨’를 새긴 그가 반평생 넘는 중독생활을 뒤로하고 이같이 전면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 의지만으론 탈피 힘든 마약 중독의 쳇바퀴
지난해 3월 조씨는 다시 한 번 새출발의 부푼 꿈을 안고 택시운전 면허 시험을 봤다. 우여곡절 끝에 합격해 직업다운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마약류 중독으로 인한 전과가 문제가 돼 면허를 발급받을 수 없다는 것.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응시료를 지불하고 제대로 치른 시험에 합격까지 한 뒤 실패이다 보니 맥이 풀렸다.
지난달 15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조윤휘씨. 마약류 전과 15범인 그는 마약류 판매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마약류 중독자에 대한 치료·재활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남제현 기자 |
택시 면허의 불발은 마지막으로 붙잡던 동아줄이 끊어진 느낌이었다. 막대한 허탈감과 좌절의 소용돌이 속에 조씨의 시선은 다시 마약으로 향했다. 10번 넘는 실패를 또다시 반복해야 하는 현실이 막다른 벽으로 다가왔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의 처벌 조항을 살펴보아도 취급한 마약류의 종류나 자격 등에 대한 구분은 있지만 제조·판매자와 투약자의 형량 차이는 뚜렷하지 않다. 마약류 제조·판매에 대해선 가차 없이 사형까지 시키는 중국 등 처벌이 가혹한 해외 사례와 달리 우리나라는 징역 7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전체의 5% 미만(2016년 기준)이다.
조씨는 매일 오전 6시 이전에 눈을 떠 오전 8시 전에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선다. 팻말에는 △마약류 판매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마약류 중독자에 대한 치료 확대 △치료보호예산 확대의 3가지 요구가 담겨 있다.
관련 경험이 전무했던 조씨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시행착오가 있었다. 의지 상실로 다시 전과를 늘리고 말았지만 조씨는 자신의 전과 경력 숫자 이상으로 단약(마약을 끊는 것)을 시도했다. 많은 실패를 맛봐야 했다.
하지만 그는 ‘지천명’의 나이를 넘겨서까지 과오만 반복할 순 없었다. 좌절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다른 중독자들의 사례를 지켜보면서 가족에게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다는 생각도 강해졌다. 그래서 1인시위에 나선 것이다.
지금 조씨에게 1인시위는 정부에 관련 대책의 개선을 촉구하는 행동이면서도 개인적으론 스스로 변화 의지를 다지는 의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변함없는 의지를 지켜본 주변 시위자들이 팻말제작법과 시위하는 법 등을 전수해줬고, 다른 중독자는 물론 일반 시민까지 독려자가 조금씩 늘어갔다. 이에 조씨는 다시 흔들릴 뻔했던 의지를 붙잡을 수 있었다.
가장 기뻐하는 것은 역시 조씨의 가족들이다. 마찰과 반목, 심지어는 폭행으로 점철된 수십년을 뒤로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 조씨에 대한 믿음이 싹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씨는 “마약류 중독으로 수십년을 허비하면서 단약이 혼자만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을 알게 됐다”며 “이로 인해 신음하는 중독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맹목적인 죄의식을 탈피해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내야할 때”라고 당당히 말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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