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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플러스] '17년째 스타크래프트 중계 중' 이 남자가 스타를 놓치 않는 이유는?

입력 : 2017-10-08 13:00:00 수정 : 2017-09-29 19:5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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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방송진행자(BJ)로 스타크래프트 대회를 직접 개최하고 있는 김철민 캐스터(가운데). 출처=아프리카 TV

“17년차 '스타크래프트' 캐스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스타 중계를 하는 사람은 제가 유일하지 않을까요?”

지난달 28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E-스포츠 캐스터 김철민씨는 17년 전 MBC게임 채널에서 중계를 하던 모습과 다름없었다. 당시 ‘MBC 중창단’으로 불리며 E-스포츠계를 이끌었던 김 캐스터는 여전히 스타크래프트 중계를 하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대형 방송국에 소속돼 마이크를 잡던 그가 이제는 개인방송을 통해 중계 외 기획과 섭외까지 모두 맡고 있다는 것.
 
MBC게임 채널 시절 김철민 캐스터(가운데). 출처=MBC게임

“기성 방송을 했을 땐 가서 떠들고 나면 '끝'이었는데, 현재 개인방송은 온전히 내 것이기 때문에 선수와 스폰서, 대회장소의 섭외와 기획까지 책임감이 배가 된다.”

김 캐스터는 이렇게 말하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는 현재 개인방송 플랫폼인 아프리카TV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KCM 종족 최강전’이라는 대회를 열어 프로게이머들과 함께 게임대회 방송을 하고 있다. 몸담았던 케이블 채널이 문을 닫자 한때 자동차 정비사업에 뛰어들기도 했지만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2년 전 다시 '스타 판'으로 돌아왔다.

그간 스타크래프트 대회가 속속 사라지고 프로게이머들이 개인방송으로 대거 이동했다.

이런 추락을 현장에서 지켜본 김 캐스터는 안타까움이 앞섰다.
 
그는 “선수들의 개인방송을 봤는데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어느새 망가지고 있더라"며 "관심을 받으려 자극적인 말을 내뱉고, 후원금 3만원에 게임을 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런 충격이 스타크래프트 게임판을 다시 예전처럼 그럴싸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계기로 이어졌다고 한다.

김 캐스터는 개인방송에 뛰어든 뒤 게임 대회를 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대회를 후원해 줄 회사를 직접 찾아다녔고, 알음알음으로  해설자와 출연할 선수들을 직접 모집하기 시작했다. 낯선 일이었지만 크라우드 펀딩으로 대회 후원을 받아 몇시간 만에 목표금액의 200%를 넘는 성과를 내 희망에 들뜨기도 했다. 

나아가 처음 30명이었던 시청자도 수백, 수천명으로 불어나고, 스타 팬들이 직접 후원에 나서는 모습에 보람을 찾았다고 한다. 지금은 출연선수 9명 개개인의 방송과 본 중계를 더해 10개 개인방송이 동시 송출되는 방식의 KCM 종족 최강전의 누적시청자는 모두 합쳐 20만명이 넘을 정도다.
 
'KCM 종족 최강전' 방송 중 게임 경기 화면. 출처=아프리카TV

그럼에도 김 캐스터는 한숨을 내쉬면서 이렇게 넋두리를 했다.

“개인방송은 참 쉽지 않다. 2·3년은 인내를 가지고 버티며 새로운 콘텐츠를 꾸준히 개발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 같다. 요즘 시청자들이 쉽게 싫증을 낸다. 스타 중계에도 콘텐츠가 필요하다.” 

김 캐스터는 MBC게임이 폐국할 무렵 스타크래프트의 인기 하락 이유로 두가지를 꼽았다. 먼저 경기를 너무 자주 했다는 것. 당시 TV를 틀면 항상 스타 경기가 나왔다. 그전까지 1주일에 이틀 하던 경기가 프로·개인리그 등 여러 대회가 생겨나며 5일로 늘었다. 이로 인해 시청자들이 점점 지겨워지기 시작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음 이유로 선수들이 이기기 위한 게임을 했다는 데 원인이 있다고 진단했다.
 
김 캐스터는 “초기에는 경기 스타일에 따라 '대나무' 조정현이나 '불꽃 테란' 변길섭 등의 별명으로 불린 데서 알 수 있듯 선수 개개인의 개성이 돋보였다면 이후 게이머들이 팀을 이뤄 함께 숙소생활을 하면서 점차 괜찮은 '빌드'를 공유하면서 개성을 잃어갔다”며 “예전에는 이름을 가려도 스타일로 누구의 경기인지 알 수 있었는데, 막판에는 누구든 똑같아져 기발한 경기가 안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팀이 해체된 뒤 선수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어렵사리 생긴 지금은 다시 개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며 “스타크래프트가 다시 활성화되려면 프로게이머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캐스터는 "이젠 그들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고 있다"며 "2011년보다 지금 경기가 더 재밌다는 보장을 한다”며 싱긋 웃었다.
 
개인방송진행자(BJ)로 거듭난 김철민 캐스터. 출처=페이스북

그는 스타 대회에 ‘종족전’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개인방송이란 플랫폼을 이용해서 프로게이머가 직접 자신의 방송을 통해 같은 종족의 게이머를 영입해 ‘종족 대항전’을 여는 식이다. 그 과정에서 프로게이머를 둘러싼 이야깃거리들이 생겼고, 경기까지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알파고 테란’ 김성현이나 ‘자본이 낳은 괴물 프로토스’ 김윤중 등 과거 주목받지 못했던 게이머들이 새로운 별명을 얻으며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김 캐스터는 지난 8월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가 출시된 지금이 스타 게임 방송이 다시 주목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PC방 아르바이트생한테 물어보면 아저씨들이 술 한잔 걸치고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팀플레이를 하러 찾아온다고 한다”며 “대세인 리그오브레전드(LOL)와 비교해선 부족하겠지만 시청률로 따지면 아직도 스타 방송은 인기가 있고, 방송 수도 늘고 있다”고 알렸다.
개인방송진행자(BJ)로 거듭난 김철민 캐스터. 출처=페이스북

김 캐스터는 과거 팬들 사이에서 ‘불운의 아이콘’이라 불렸다. 대학 졸업 당시 IMF로 취업시장이 얼어붙었고, 재수 후 방송국 아나운서를 준비하던 그는 입사 제한 나이까지 합격하지 못 했다. 김 캐스터는 한동안 폐인처럼 지내다 지역 케이블 리포터를 거쳐 MBC게임의 캐스터로 들어가 승승장구하는가 싶더니 위암에 걸려 잠시 방송을 쉬게 된다. 이어 자신이 몸담았던 방송국이 문을 닫고 도전한 사업까지 실패한다.

그는 “그간 나쁜 일이란 일은 다 겪었지만 나를 완전히 쓰러뜨리지 못했고, 다 극복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송충이가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며 "내가 가장 즐겁게 잘할 수 있는 것이 스타 중계”라고 강조했다.

과거 45살까지 게임 중계를 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김 캐스터는 이미 그 나이가 됐고 다시 목표를 설정해 뛰고 있다.

그가 웃으면서 남긴 마지막 말도 꽤 인상적이었다.

“나는 스타 경기를 이렇게 비유하곤 한다. 아직도 먹고 싶어하는 미식가들은 많은데 강제로 문을 닫아 버린 가게. 스타는 아직까지 재밌고 앞으로도 재미는 보장한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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