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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대기업 안팎으로 고전… 정부와 소통할 민간기구 꼭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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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20 18:47:23 수정 : 2017-09-20 18: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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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경제 차관 지낸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범위 확대 등 기업 관련 이슈가 쏟아지는데 과거처럼 경제5단체가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 혼자 모든 기업을 대변할 수는 없습니다.”

재벌개혁을 외치며 출범한 새 정부에서 경제단체들이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비정규직 문제 발언으로 융단 폭격을 받은 후 정부의 재벌개혁과 노동개혁 등 기업 관련 각종 정책에 대해 논평을 자제하며 극도로 몸을 사려 기업들의 불만이 적잖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20일 “전경련 고유 기능인 시장경제 창달과 기업 의견 전달, 민간 경제외교에 집중하고 있다”며 “과오는 있지만, 전경련은 기업과 정부 모두를 위해 필요한 단체”라고 말했다.
이제원 기자
2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집무실에서 만난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부회장은 인터뷰 내내 경제단체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했다. 권 부회장은 노무현정부에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2차관을 역임했고, 당시 1차관이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었다. 두 전임 기재부 차관이 나란히 경제단체 수장을 맡고 있지만 정부와 원활한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권 부회장은 “정부가 우리를 상대해줘야 한다”며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을 대변하듯 지금처럼 대기업들이 안팎으로 고전할 때 대기업을 대표할 민간기구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경련을 없애더라도 비슷한 조직을 다시 만들어야 할 만큼 필수불가결한 조직”이라고 덧붙였다.

권 부회장은 1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에서 정부의 기업정책과 전경련의 쇄신안 진행상황 등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털어놨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경련 쇄신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정경유착 사태는 사회협력회계 때문에 생겼다고 할 수 있다. 본래 취지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수재의연금, 평창올림픽과 인천아시안게임 등 국가행사에 기업들의 후원금을 출연하는 등 좋은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르·K스포츠재단은 처음 얘기 들었을 때부터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데 왜 또 돈을 내라고 하나’ 했다. 결국 문제가 터졌고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연 150억∼200억원의 사회협력회계 예산과 담당 본부까지 아예 없앴다. 회장단 회의 대신 전문경영인 중심의 경영이사회로 바꾸고, 경영인이 아닌 기업 중심이 되겠다는 의미로 56년 역사의 전경련 명칭도 한국기업연합회(한기련)로 변경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한기련으로 변경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름과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은 정관 변경사항이라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 신청해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재판이 진행 중이고 산업부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 신청을 못하고 있다. 이름을 바꾸고 시장경제 창달과 기업 의견 전달, 민간경제외교 등 전경련 본래 기능에 집중할 계획이다.”

―4대 그룹 등 주요 회원사 이탈로 어려움은 없나.

“전경련은 정부 지원 없이 오로지 회원사들이 낸 회비로 운영하는데 올해는 지난해 대비 30%의 회비밖에 안 들어왔다. 210명이었던 직원을 100명으로 줄이고, 월급도 임원 40%, 팀장급 30%씩 줄였으며 4개층을 쓰던 사무실도 2개층으로 줄였다.”

―새 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 통상임금 판결 등의 기업에 민감한 이슈가 이어지고 있지만 경제단체들이 안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도 처음에는 대기업 회장들 안 만나겠다고 했다가 일자리, 투자, 세금 등 제일 많이 기여하는 곳이 전경련 주요 회원사들이니 결국 1년에 서너 차례 만났다. 어느 나라든 중요 경제정책 할 때 기업들 의견을 묻고, 자국 기업의 해외경쟁력 강화 위해 (기업의)건의사항도 듣는다. 마찬가지로 정부 사업에 기업의 협조가 필요할 때도 전달창구가 필요하다. 일본의 게이단렌(經團連), 프랑스의 MEDEF(프랑스경영인연합회), 미국의 US 체임버와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등이 이런 역할을 하는데, 기업뿐 아니라 정부에게도 필요한 조직이다.”

―그러나 최근 대한상의가 청와대 주최 기업인 초청만찬 등 대부분 행사에서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대한상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회원사로 두고, 대·중소기업 간 협의 및 의견조정 역할이 핵심이다. 그렇다보니 전기요금인상 반대, 지배구조 강화 등 회원사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이슈에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더구나 대한상의 회원사가 8만개에 달하지만 대기업은 2%도 안 된다. 중소기업은 중소기업중앙회가 있듯 대기업을 대변할 조직이 필요하다. 1961년 전경련이 출범한 이유다. 또 전경련은 민법상 사단법인으로 정부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회원사 회비로 운영하는 순수 민간단체다. 수십 년간 한·미 재계회의, 한·일 재계회의 등을 개최하는 등 민간경제외교는 전경련만이 할 수 있다.”

―회원사들은 어떤 의견인가.

“회원사들뿐 아니라 탈퇴한 회원사 실무진들도 주요 기업정책에 대한 여론조사나 정책 건의 등을 개별 기업이 일일이 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전경련이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정부가 우리를 상대해줘야 한다. 다른 경제단체들도 경제5단체 합동으로 의견을 표명하지 못해 답답해하고 있다. 대한상의에만 집중되는 것에 대한 불만도 나온다. 대통령의 방미와 방러 때도 협조할 수 없어 안타까웠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상하원 합동연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노력도 있지만 전경련 회원사였던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 등 경제인들의 물밑 지원이 있었다.”

―새 정부가 근로자를 위한 정책에 무게중심을 두면서 규제완화 등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책은 없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2007~2016년 10년간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는 총 2762억달러인 반면 같은 기간 외국인의 국내 투자는 950억달러에 불과하다. 100조원이 들어오고 300조원이 해외로 나갔다는 것인데 이는 일자리 100만개 이상이 해외로 갔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국가경쟁력 순위가 WEF(세계경제포럼) 기준 2007년 11위에서 2016년 26위로 하락했는데, 특히 기업 관련 규제 수준 105위, 노사 협력 135위를 기록할 정도로 취약하다. 시장의 담합이나 독과점을 규제해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기업 규모가 5조원, 10조원 넘어간다고 규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이번에 대기업집단국 만들었는데, 공정위는 경쟁을 촉진해야지 기업 자산규모 크다고 규제하는 전담부서를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삼성은 애플 시가총액의 3분 1이고 현대차는 도요타의 15%에 불과한데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60가지 규제를 가하니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갖기 쉽겠나.”

―최근 한·미 FTA 재협상 이슈와 관련해 미 상공회의소 등과 교류를 많이 하는 것 같다.

“한·미 재계회의를 통해 한·미 FTA뿐 아니라 기업인의 미국 단기출장 시 비자면제 협정 등도 제안해 해결한 바 있다. 4년 전 일본과 관계 악화됐을 때도 정경분리를 요청, 3년 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일본 총리 만남을 성사시켰다. 정치가 긴장관계에 있더라도 경제 교류를 하면서 풀릴 수 있다. 전경련이 잘하고, 전경련밖에 할 수 없는 것이 민간 경제외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근엔 우리나라와 수교관계가 아닌 쿠바, 대만 등과도 경제협력회의를 개최하는 등 민간 경제외교에 집중하고 있다.”

―다음달 10일에도 워싱턴에서 한·미 재계회의가 열리는데 주요 안건은 무엇인가.

“한·미 FTA가 주요 이슈가 될 것이다. 미국 기업들도 한·미 FTA를 통해 이득을 봤다고 생각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강경하게 나오니 협상이 불가피하다. 이번 회의에 미 윌버 로스 상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도 참석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청년 일자리 창출이나 소외계층 복지 확대는 결국 기업이 사업을 잘해 일자리도 많이 만들고 세금도 많이 내야 한다. 기업들의 기를 살려 투자 많이 하고 새로운 사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다.”

●경북 영천(68)●경북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행시 19회●대통령 비서실 경제정책비서관●재정경제부 제2차관●駐 OECD 대표부 대사●국무총리실 실장●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부위원장●한국경제연구원 원장, 전경련 부회장 겸임

대담=김기동 산업부장
정리=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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