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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발해를 꿈꾸며' 의 그 장소…끊어진 기억을 잇는 시간의 터널

입력 : 2017-09-02 17:00:00 수정 : 2017-09-02 11: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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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시대유감 / 철원 노동당사…껍데기만 남은 아픈 역사… 스산함 머금은 전쟁의 상흔
# 스타를 키우는 시대와 서태지의 귀환

얼마 전 느닷없는 연락을 하나 받았는데, 문자로 누굴 좀 뽑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오디션 프로를 잘 보지 않아도 그런 게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느 케이블TV 채널에서 진행하는 101명의 아이돌 지망생 중에 11명을 ‘픽’(pick)하는 프로의 최종 경쟁이 방송되는 날의 풍경은 실로 대단했다. 거기서 1등을 한 친구는 무려 150만표를 받았다고 하니, 갑자기 끌려들어가 투표를 한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96년 1월 해체 발표를 하는 서태지와 아이들.

세상이 달라지긴 달라진 것 같다. 요즘은 팬들이 스타를 키운다. 굿즈를 사주고 순위를 올려주는 등 일종의 지분을 갖고 후원을 하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스타들이 가진 뛰어난 재능과 완성된 작업에 자연스레 끌려들어가던 예전의 기억이 있는 사람에겐 조금 낯선 일이다. 우리를 매혹시키는 무엇인가에 갑자기 빠져들어 깊이 좋아하는 것을 요즘식의 표현을 빌자면 ‘덕질’을 한다고 하는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특정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인 일본어의 ‘오타쿠’(otaku, 御宅)를 오덕, 덕후라고 줄여 부르다가 ‘덕’이 된 것이다. 요즘은 예전처럼 낮추어 보는 의미의 단어가 아닌 일상용어로 자리 잡고 있는 중인데, 좋아하는 대상도 만화나 게임이나 연예인에서 심지어 군대(밀리터리 덕후라고 해서 밀덕)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덕질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 또한 오랜 시간 누군가의 팬이었고, 마니아였고, 덕후였다. 오랫동안 나는 ‘그’의 경쾌하면서도 강력한 멜로디에서, 혹은 시의적절하게 마음을 꿰뚫는 가사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위안을 얻곤 했다. ‘그’의 오랜 부재에 들을 음악 없다며 불평을 했고 돌아오면 감질나는 활동에 짜증을 내기도 했다. ‘그’는 곧 25주년 기념 콘서트를 여는 서태지라는 뮤지션이다.

4집까지의 음반을 내며 문화대통령 칭호까지 듣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한 것은 1996년 1월이었으니 벌써 20년이 넘은 일이다. 창작의 고통을 고백하며 자신이 뒤집어놓은 대중음악 판에서 떠나갔다가 다시 솔로음반을 내기까지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서태지는 자신이 처음 음악을 시작한 그 지점, 록 음악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시도들을 들고서 늙지 않는 소년 같은 모습으로 몇 년에 한 번씩 우리 곁에 돌아온다. 
옛 노동당사를 배경으로 한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 장면
그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기대가 있었다. 통일(발해를 꿈꾸며)이나 교육(교실이데아), 청소년 가출(컴백 홈) 등 기존 가요에서 깊이 다루지 않던 주제들을 들고 나온 스무 살 남짓한 청년의 패기는 주된 팬층이었던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어른에게도 무척 강렬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태지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가 컴백한 그와 만났던 일화는 무척 유명하다. “그대는 방 한구석에 앉아 쉽게 인생을 얘기하려 한다”거나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네”라는 가사는 불의가 있다면 순응하기보다는 저항하고 이겨내야 한다는 거부할 수 없는 속삭임이기도 했다.

고 신해철이 “자신은 고뇌하는 비겁자이며 서태지는 거침없는 낙오자”라 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서태지는 동시대인들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에 대해 자신은 단지 ‘음악인’일 뿐이라 선을 그었고, 그것이 한편으로 그를 시대적 동지로 여겼던 사람들에겐 일종의 상실감을 안기기도 했다. 어찌 보면 그는 그 시대의 요구에 저절로 반응하는 축복받은 감성을 지녔던 것이다. 1990년대에는 어울리는 발랄한 사랑과 즐거운 저항이, 2000년대 초반엔 인터넷을 비롯한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애정과 비판이,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선 후에는 이즈음의 화두, 환경과 생명에 관한 것이 자연스럽게 또 그의 주제가 되었다. 

# 뫼비우스, 모든 것은 모든 것에 맞닿아 있다

내가 가본 서태지의 공연 중 기억에 오래 남는 건 처음으로 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서서 4만여 관중을 불러모으며 건재함을 알린 2015년 펜타포트 공연과 더불어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렸던 ‘뫼비우스’라는 이름의 ‘2009 서태지 라이브 투어’ 첫 공연이다. 
2015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서태지 공연 장면

뫼비우스의 띠는 안과 밖의 구별이 없는, 시작하는 지점으로 어느새 되돌아오는 형상이다. 이름부터 아이로니컬한 전쟁에 대한 추모도, 증오도 아닌 기념을 위해 지어진 권위적 건물은 공연 주제가 상징하듯 미래가 과거가 되고, 과거와 미래가 맞닿은 그 교묘한 역설과 무척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처음에 무대는 생각보다 평범해 보였다. 그런데 오프닝 공연이 끝나고 본무대가 시작되려 하자, 무대 사이드에 있던 세로로 긴 패널들이 버티컬 블라인드의 움직임처럼 스르륵 90도로 회전하여 정면으로 나와 정렬하며 무대를 가렸다. 그 패널 뒤로 무대 조명의 프레임들이 마치 인사를 하듯 아래로 꺾어지고 패널들은 다시 무대 뒤로 물러나더니 이번엔 스크린이 되었다.

최고의 테크놀러지를 도입해 입체적으로 움직이는 무대를 배경으로 영혼을 울리는 듯한 강한 비트의 음악, 의자에 앉은 채로 객석 위로 날아올라 360도 회전하는 연출, 화려한 불꽃놀이와 친숙한 멘트들이 이어졌다. 1집부터 4집 사이의 노래들은 새롭게 편곡되었고, 8집 싱글에 이어 새로 정규음반에 들어갈 두 곡의 노래가 발표되었다. 그중 ‘복제’라는 의미의 ‘레플리카’는 서로 닮고자 하는 현대의 인간상들을 비판한 노래로, 2000년에 이미 발표된 ‘인터넷 전쟁’의 연작처럼 느껴졌다.

서태지를 아는 사람의 절반은 4집까지의 아이들 시절을 기억하고, 절반은 컴백 후 로커로서 활동한 5집 이후에 열광한다. 그는 하드코어 계열의 강렬한 6집을 발표한 2000년 이후 본격적으로 밴드와 함께 활동을 시작했는데, 2004년에 발표한 7집이 낙태나 스토커, 음악 비즈니스 등의 문제와 개인 내면의 자아 등을 주제로 했다면, 2008년에 발표된 8집은 보령의 미스터리 서클과 코엑스 UFO, 이스터 섬에서 촬영한 모아이 뮤직비디오 등 압도적인 스케일의 프로모션을 통해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여행처럼 다가왔다. 그가 은퇴 후 발표했던 5집 TAKE 앨범의 뮤직비디오에서도 우주에서 귀환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우주 혹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과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한편으론 자신에 대해 빈번히 지칭되는 ‘신비주의’라는 타이틀에 대한 직접적인 패러디로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앨범을 들어보면 그의 관심은 거대한 것뿐만 아니라 마이크로한 것에도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었다. 물방울 소리로 시작되는 모아이, 8집을 구성하는 두 개의 싱글 타이틀 ‘atomos’, ‘secret’과 콘서트 주제였던 ‘symphony’, ‘worm hole’, 그리고 ‘뫼비우스’까지, 극한으로 음을 쪼개어 보았다는 ‘nature pound’를 기반으로, 섬세하면서도 웅장하게 거대한 하나의 스토리가 완성되어간다.

모아이 섬의 고대의 자연과 먼 우주의 비행체라는 시간과 공간의 역설, 버뮤다라는 신비한 공간과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성애를 연관시킨 역설, 휴먼드림의 경쾌한 음속에 숨겨진 인간과 로봇의, 정신과 육체의 역설, 이런 에피소드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작은 세계(인간)와 모르고 있는 가장 큰 세계(우주)가 충돌한다. 지구라는 공간과 현재의 시간, 그 모든 것들을 아우르며 그는 결국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존재의 방식들은 다양하다. 그리고 그 존재들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세상은 그토록 다채롭거나 끝없이 단순할 것이다. 혹은 아주 가혹하거나 아주 따뜻할 것이다. 모든 것은 모든 것에 맞닿아 있다. 

# 갈라진 세계와 끊어진 기억을 잇는 시간의 터널, 철원 노동당사

1994년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 ‘발해를 꿈꾸며’가 나온 해이다. 그리고 기록적으로 더웠던 해이다. 그해 여름 도피안사를 답사하기 위해 철원에 갔다가 고석정도 보고 노동당사도 들렀던 적이 있다.

철원은 삼팔선 이북에 있는 지역으로 6·25전쟁 전에는 북한이었다가 전쟁 후 남한에 편입된 지역이며, 북한과는 접경에 위치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접근이 통제되는 구역이 많은 곳이다. 그곳에는 달의 우물이라는 동네가 있다. 내가 아는 분이 그곳 출신인데 그 동네에 일가친척이 다 모여 살고 있었다 한다. 그러다 6·25전쟁 때 갑자기 군인들이 잠깐 피란 가자며 간단한 짐만 짊어지고 나오라고 해서 정말 짐을 간단하게 꾸려서 나왔더니 여기저기 트럭에 나눠 타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트럭은 어딘가로 한참을 달리다 사람들을 여기저기 내려놓더란다. 그분이 도착한 곳은 전라도 광주였는데, 그렇게 뜬금없이 실향민이 되고 이산가족이 되어 정말 고생 많이 하셨다는 이야기를 허탈하게 해준 적이 있다. 그곳이 바로 월정리인데, 그분이 살던 동네가 아직도 그곳에 있을 거라고 들었다. 참 쓸쓸하고 스산한 이야기이다.

건립된 지 천년이 넘었다는 도피안사에는 고려시대에 만든 이지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는 고려시대 철불이 있다. 사실 그때 여행의 목적은 그 철불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우리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금색을 잔뜩 발라놓아 철불이 가지고 있는 힘을 느끼기가 쉽지 않았고, 좀 애잔한 느낌마저 들었다. 애매한 접경에 위치한 철원이라는 장소의 기억과 겹쳐지며 그런 느낌은 더욱 증폭되었다.
철원 노동당사는 갈라진 세계가 다시 이어지고 끊어진 기억을 다시 이을 수 있는 시간의 터널과 같다는 느낌을 준다.2002년에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낡고 위태로운 구조물의 보존을 위해 지금은 건물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1946년에 조선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쓰기 위해 지어진 노동당사 건물은 당시에 꽤 위세가 대단했다고 한다. 그러나 철원은 너른 평야를 품고 있는 요지이며 김화, 평강과 더불어 ‘철의 삼각지’로 불리는 격전지였기에, 그 일대가 쑥대밭이 되고 인간이 만든 많은 것들이 모조리 사라진 참혹한 곳이었다. 노동당사는 그 와중에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건물 중 대표적인 유적이다. 또한 밀고 밀리는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건물이었다.

2002년에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낡고 위태로운 구조물의 보존을 위해 지금은 출입을 통제해서 외관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당시는 그런 제한이 없었고 그곳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그곳에 오래 머물면서 여기저기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내부가 다 허물어지고 껍데기만 위풍당당하게 남아 있는 노동당사 건물은 나무에 매달려 있는 매미껍질같이 공허했다. 폐사지도 많이 가봤지만 여기만큼 쓸쓸하지는 않다.


그 무렵 서태지와 아이들이 4집을 발표하며 ‘발해를 꿈꾸며’라는 타이틀곡의 뮤직비디오를 이곳 노동당사에서 찍었다. 2층 정면에 앞으로 쭉 뻗어 있는 캐노피에 올라가서 비둘기를 날리며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통일을 노래하며 춤을 추는 모습은, 당시에도 무척 신선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놀랍기만 한 연출이었다. 쓸쓸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곳은 갈라진 세계가 다시 이어지고 끊어진 기억을 다시 이을 수 있는 시간의 터널과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발해를 꿈꾸며, 시대유감을 들으며 1990년대를 건너와 21세기에 들어선 지도 십수년이 지난 오늘, 이 평화로워 보이는 일상 너머의 혼란과 모순은 어디서 온 것일까 생각해 본다. 북한과의 화해와 타협 대신 대립과 갈등 속에서 벌어지는 무기 실험과 군사훈련 소식 등 통일을 향해 한발 나아가기에는 막막하기만 한 현실과, 여전히 비슷비슷한 교실에서 모두 한 방향만을 바라보고 있는 전국 수백만의 아이들,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 마약 살인 테러,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점점 무뎌진 채 성찰 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에 대하여.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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