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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에 희망을!] 주 6~7일 일하고 고작 월 100만원… 꿈 착취하는 공연·영화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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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30 19:16:11 수정 : 2017-09-01 1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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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들 미래 담보로 저임금 강요 ‘문화계 열정페이’ 실태
한 달 100만∼150만원. 주 6∼7일 근무. 정해진 퇴근 시간 없음. 필수조건은 밤샘도 마다 않는 열정. 문화계 청년 일자리 상당수의 구인 조건이다. 무대기술, 조명, 스타일리스트, 마케팅 어느 분야를 가든 조건은 비슷하다. 젊은이의 미래를 담보로 저임금을 당연시하며 꿈을 착취하는 ‘열정페이’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하게 해주는 것만도 감사한’ 열정페이 실태를 20대 청년 두 명의 사례를 통해 들여다봤다. 4년차 무대기술가 김기영(29·가명)씨, 전직 영화마케터 이지영(28·〃)씨의 경험담을 일기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난 원래 계약서 안 써”… 야근수당·4대 보험은 꿈

무대기술 분야에서 일한 지 4년째다.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무대기술팀에 막내로 들어갔을 때 주 6일 근무는 기본이었다. 7일 일할 때도 있었다. 보수는 최저 시급에 턱걸이 했다. 적게 받으면 한 달 120만원쯤, 많으면 150만원 정도 됐다. 100만원도 안 될 정도로 나보다 훨씬 못 받는 친구들도 많았다. 이마저 제때 받으면 다행이었다. 어리고 착한 한 친구는 작품 끝나고 1년이 넘도록 보수를 못 받기까지 했다.

지방 공연을 돌면 극장에서 매일 12∼15시간씩 땀 흘렸다. 야근·주휴 수당이란 개념은 전무했다. 산재보험도 당연히 없었다. 위에서 망치가 떨어져 다치거나 발목이 삐어 며칠 쉬고, 심하면 실족사까지 했지만, 모든 책임은 개인이 져야 했다. 우리는 복지소외 계층이다.

게다가 폭언까지 들어야 했다. ‘왜 이런 인격 모독을 당하면서 해야 하지.’ 우리는 일할 때마다 한건 한건씩 계약했다. 그런데 계약서를 구경조차 못했다. “이번 작품은 규모가 작으니까 한 달에 얼마 줄게”가 전부였다. 따졌다. “왜 계약서 안 쓰나요. 어떤 조건으로 일하는지 알고 싶어요.” 돌아온 답은 “나는 원래 계약서 안 써”였다. 요즘 근로기준법 때문에 편의점 알바도 계약서를 쓰는데…. 내 경험이 특수한 건 아니다. 이 바닥에서는 만연한 일이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 싸우거나 불만을 표출하기도 힘들다.

이 분야는 구인공고가 거의 없고 인맥이나 지인 소개로 들어온다. 그러니 처음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다. 갑을 관계가 심할 수밖에 없다. ‘이 팀이 싫으면 다른 데 가서 일하지’가 안 되는 시스템이다. 윗사람은 윗사람대로 ‘싫으면 나가’ 식이라 횡포가 심해진다. 우리뿐 아니라, 도제식으로 배우는 분야에서는 선생님이 부르면 무조건 달려가고 신처럼 떠받들 수밖에 없다. 성추행을 당해도 조용히 있게 된다.

이런 세태가 크게 바뀔 것 같지 않다. 승자독식이 문제다. 많은 이들이 못 견디고 떠난 후 끝까지 살아남은 자는 과실을 따먹는다. 자신이 기득권이 됐을 때 과연 이 구조를 바꾸고 싶을까. 구성원의 의식 변화로만 상황이 개선되기는 힘드리라 본다.

열정페이의 근본 문제는 있던 열정도 없어지게 만드는 거다. 일이 너무 하고 싶어 들어왔어도 줄창 열정페이를 받으면 열정이 사라진다. 그러면 ‘이제 됐어’ 하고 포기하는 친구들이 많다. 마음이 식어서 떠나니 현실이 바뀔 리 없다.

◆“사흘씩 철야… 적은 월급보다 힘들었던 건 인격모독”

‘1000만 영화’ 여러 편을 마케팅한 회사에 다녔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짧으면 일주일, 길면 한두 달 사이에 퇴사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케터의 업무는 영화 제작 전부터 시작해 끝이 없다. 편당 10명은 필요할 일을 3명, 많으면 5명이 나눠 했다. 성수기에는 한 팀이 2∼3편을 동시에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니 심할 때는 사흘 가까이 퇴근을 못 했다. 밤새 일하고 아주 잠깐 눈 붙였다가 새벽에 진행하는 각종 행사로 뛰어나가곤 했다. 무대 인사를 금·토·일요일에 도니 주말조차 쉬지 못했다.

격무에 시달렸지만 연봉은 1800만원에 불과했다. 인턴 3개월은 120만원, 그 후 6개월은 150만원을 받았다. 꿈을 좇아 왔지만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적금은 꿈도 못 꾸고 월세·생활비를 충당하기 바빴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퇴사 후 보니 9개월간 일했음에도 건강보험은 고작 3개월치가 납부돼 있었다.

퇴사한 결정적 계기는 회사 대표의 태도였다. 직원들을 자신보다 하등한 존재로 보는 듯했다. 그는 새벽 시사회에 5분 늦은 직원을 붐비는 쇼핑몰 한가운데 세워놓고 윽박질렀다. 화를 낼 때 잘못을 지적하기보다 직원을 못 배운 사람 취급하는 것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조금씩 신용카드 대금이 연체됐다. 꿈은 희미해졌고, 오직 돈이 절실해졌다. 힘겹게 다른 업종으로 이직했다. 내 이름을 건 영화를 만드는 게 이전의 꿈이었다면 지금은 꿈이랄 게 없다. 착실히 적금하는 재미로 살지만 불행하지는 않다. 

◆창조산업 구조적 문제… 단체 만들어 협상력 키워야

전문가들은 문화산업의 속성 자체가 열정페이를 키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도제식 인력 육성 구조다. 승자독식도 문제를 키운다. 지원자는 많지만 시장에서 원하는 ‘스타급’ 인력은 적고, 이들이 재화의 대부분을 가져가니 기형적 임금 구조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노동렬 성신여대 교수는 “경제학자 리처드 케이브스는 영화·미술·음악 등을 창조산업으로 정의하면서 특징 중 하나로 A리스트, 즉 스타 몇 명이 산업을 끌어가는 점을 들었다”며 “스타를 꿈꾸는 사람은 너무 많고 스타는 적으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노 교수는 “일하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기에 누군가는 적정한 급여를 포기해서라도 기회를 얻으려 한다”며 “열정페이 현상은 비극적이지만, 세계적으로 만연한 현상”이라고 밝혔다.

방송계에서는 경영 악화로 방송사의 외주 제작비가 동결된 것도 악영향을 미쳤다. 일부 드라마 현장에는 회당 수백만원을 받는 스태프가 존재하는 반면, 교양·다큐 분야는 고사 직전이다. 한국독립PD협회 관계자는 “외주제작사 대부분이 열정페이”라며 “방송국에서 제작비를 터무니없이 적게 주기에 선배 제작진(카메라맨, PD, 작가)의 인건비를 주기 위해서는 신입(청년)에게 돈을 줄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러다보면 인력을 적게 뽑을 수밖에 없고, 결국 한 명이 FD(플로어디렉터), 카메라 보조, 보조작가 일을 도맡아 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실제 올해 3월까지 외주제작사에서 보조작가·리서처로 일한 정모(33)씨는 2주에 하루 쉬며 하루 평균 10시간씩 일했지만 한 달에 쥐는 돈은 120만원에 불과했다. 자료조사뿐 아니라 카메나 등 장비를 옮기고 운전까지 했다.

독립PD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KBS2 ‘VJ특공대’는 2003년 회당 2800만원이던 제작비가 현재도 크게 오르지 않은 상황이다. 한 외주제작사 대표는 지난해 4월 시작한 KBS2 ‘생방송 아침이 좋다’의 회당 제작비가 당초 2000만원에서 1700만원으로 감소했다고 전했다. 그는 “외주제작사에서 조연출이나 자료조사를 하면 100만~120만원 받는 게 전부라, 내년에 최저임금이 오르면 사람을 줄여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제작비를 무조건 올려 달라는 게 아니다”라며 “청년들이 직업에 자긍심을 가질 정도의 생존권은 보장해줘야 하지 않나”라고 강조했다.

노 교수는 대안으로 이익단체 활성화를 제안했다. 작가협회·연예매니지먼트협회처럼 분야별 이익단체를 만들고 단체협상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노 교수는 “이 단체들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문체부가 5년 정도 협회 운영과 법률 자문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은아·김희원·이복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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