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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이것만은 확 바꾸자!] 남성 위주 ‘정치 사다리’ 여전… 깨지지 않는 ‘여의도 유리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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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15 19:34:41 수정 : 2017-08-15 21: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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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다양성 높일 여성 정치인 참여 확대 시급
“정당의 목적은 선거 승리예요. 표를 얻기 위해 학연, 지연, 혈연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합니다. 그런데 동창회, 향우회 등 각종 지원세력의 조직과 인맥 구성은 남성 위주로 꾸려져 있어요. 정치적으로 힘을 키워주는 사다리가 남성 중심적으로 이뤄진 사회에서 여성은 아무리 많이 배우고 똑똑해도 ‘과연 선거에서 이길 수 있겠어?’라는 의심을 받게 됩니다.” 각 정당이 여성 후보 공천에 소극적인 이유를 한 전문가는 이같이 진단했다. 사법·행정고시의 여성합격률은 50%, 외무고시는 70% 안팎에 이르지만 20대 국회의 여성의원 비율은 17%에 불과하다. 선거는 고시처럼 성별, 출신학교, 지역, 가족관계 등과 관계 없이 실력으로만 겨루는 공정한 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김을동 전 새누리당 의원이 예비여성후보 모임에서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표를 못 받는다”고 말한 것처럼 선거에는 성차별적 시각 등 사회문화가 고스란히 반영된다. “여자라서 안 된다”는 편견으로 당의 공천이나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거나 세력을 조직하는 과정이 남성 위주로 구성돼 한계에 부딪히기도 한다.

남성 중심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공직선거법 제47조는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각 정당이 여성 후보를 30% 이상 공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성에게 특혜를 주려는 목적이 아니라 이들에게 차별적인 사회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역대 총선에서 진보정당을 포함해 이 규정을 지킨 주요 정당은 한 곳도 없었다.

◆정당 내 성차별 여전

1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대 총선(2016년)에서 지역구 여성후보의 공천율이 가장 높았던 당은 정의당이었으나 비율(11.8%)은 규정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10.7%로 그 뒤를 이었고 당시 집권당이었던 새누리당의 지역구 여성후보 공천율은 6.9%에 불과했다. 지역구에 출마한 여성 후보의 선거경쟁력은 남성과 큰 차이가 없었음에도 후보자 수는 현저히 적었다. 20대 총선에서 남성은 836명이 당의 지역구 공천을 받고 출마해 227명이 당선(당선율 27.2%)됐고 여성은 98명이 출마해 26명(26.5%)이 지역구 의원 배지를 달았다.

부산대 황아란 공공정책학부 교수는 “20대 총선 후보자의 당락에 영향을 미친 요인을 분석한 결과 성별보다는 후보의 소속정당과 현직 여부가 당락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며 “여성의 낮은 출마율은 여성에 대한 정당의 편견과 그에 기반한 공천 전락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각 정당은 비례대표 의석의 여성할당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더불어민주당은 ‘비례대표의 매 홀수에 여성을 배정해야 한다’고 규정한 공직선거법을 위반하고 당선가능한 경계 순번에서 남녀를 바꿨다. 그 결과 비례대표 14번과 15번이 모두 남성으로 채워져 15번까지 배지를 달았다. 원외 소수정당일수록 이러한 법 위반은 심각하게 나타났다.

지역구의 30% 여성할당은 권고조항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없고 비례대표 여성할당은 강제조항이나 어겨도 법적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지방의회의원 선거 때는 비례대표 여성 홀수제를 지키지 않으면 당선 무효가 되나 국회의원 선거에는 이러한 처벌 규정이 적용되지 않도록 법이 설계됐다.

또한 ‘비례대표는 재임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원칙하에 이주자 및 보편적 아동 인권을 대변했던 이자스민 전 새누리당 의원과 소상공인을 대표했던 전순옥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비례재선 신청은 묵살됐으나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비례로만 5선을 하는 특혜를 받았다.

◆여성의원 왜 늘어야 하나

“여성의원은 과연 여성시민의 요구를 잘 대변하는가?”, “여성의원의 젠더는 과연 여성인가?”, “사회적 약자가 여성뿐인가?”

현재 국회의원의 주류는 50대 남성 의원으로 한국 정치에는 이들 세대의 남성중심적인 관행이 팽배하다. 이 때문에 남성 정치에 편입해 성공한 여성은 투쟁과 대결을 거듭하며 여성성이 희석된 경우가 많았다.

국내외 학자들은 여성의 정치 참여가 남성중심적인 문화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임계점을 ‘여성 30%’로 본다. 이 정도로 수가 늘어나면 상징적 참여를 넘어 각 여성 의원의 성향에 관계 없이 남성중심적 관행 개선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여성정치인 최초로 5선을 지낸 박순천 전 의원은 당시로서는 급진적으로 받아들여진 ‘처의 재산권을 인정할 것’, ‘딸에게도 상속권을 줄 것’, ‘중혼 부패성을 탄압할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여성 국회의원은 1990년대까지 10명 안팎에 불과했다. 2000년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확대하기 위해 비례대표에 여성할당제가 도입돼 여성운동가 출신들이 상당수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에야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생명윤리법 제정 등 여성과 관련된 다양한 법·제도 개선이 진행됐다.

한국 정치는 아내의 지극한 ‘내조’를 받을 수 있는 ‘결혼’한 ‘중년’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쉼표 안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후보는 비정상적인 존재로 취급돼 차별 받았다. 실례로 이에 저항하며 결혼 대신 동거를 해온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20대 총선의 지역구 출마를 위해 뒤늦게 남편과 혼인신고를 했다. 이 같은 정치문화에서 여성뿐만 아니라 청년,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 각계각층의 다양성은 존중받기 어려웠다.

전문가들은 여성의 정치 참여는 사회적 약자들이 정치적 대표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중년 남성’의 정치에서 소외된 대상 중 규모가 가장 큰 집단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젠더라는 ‘렌즈’를 통해 기득권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젠더정치연구소 권수현 부대표는 “남성이 정치적으로 과잉대표되면서 경쟁력 없는 남성이 정책경쟁이나 공식적인 제도적 통로보다는 남성 의원들의 연대나 비공식적 관행을 통해 공천을 확보하는 경우도 있다”며 “여성할당제는 이러한 문화를 공유하지 않는 이질적 집단의 참여를 높여 궁극적으로는 전체 의원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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