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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성의 씨네 IN&OUT] 한 번에 읽기 힘든 제목… 메시지는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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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05 11:03:38 수정 : 2017-08-05 11: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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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제목의 영화들 / 남기웅 감독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 총 27자… 한국 영화들 중 가장 길어 / 기성사회 위선·기만 풍자 강렬한 인상 / 김주혁·엄정화 주연 ‘… 홍반장’ 26자 / 맹활약 주인공 ‘짱가’ 닮아 주제가 인용 / 외국선 ‘닥터 스트레인지…’ 기네스북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 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

한 번 듣고선 따라하기도 버거운 이 기묘한 문장은 우리나라 영화 가운데 가장 긴 제목으로 유명하다. 무려 스물일곱 글자나 된다.

남기웅 감독의 데뷔작으로, 2001년 밴쿠버국제영화제 특별언급상,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런던국제영화제, 뉴욕독립영화제, 방콕국제영화제,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등 그해 가장 많은 해외영화제에 초청되는 영광을 누렸다. 개봉 당시 파격적인 소재로 디지털 영화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았고, 일본에서도 숱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 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혼탁한 세상에 내버려진 여고생과 그들을 선도해야 할 지식층 및 기성사회의 위선과 기만, 그리고 폭력적 권력을 패러디와 판타지 기법으로 풍자한다. 카메라는 남성들의 무분별한 성적 가치관 탓에 우리 사회에 내재한, 무언가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폭력과 여학생들의 성적 고뇌에 초점을 맞춘다. 남자 교사로 표현되는 남성 또는 권력자의 폭력에 짓밟히는 여학생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킬링머신으로 다시 태어난 여학생이 부도덕한 사회(남성들)에 복수를 하는 내용이다. 흐느적거리는 영상 속에 담긴 반사회의 붉은 화면이 자못 충격적이다.

‘대학로에서 ···’ 다음으로 긴 제목은 한 글자가 부족한 스물여섯의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다. 김주혁과 엄정화가 주연을 맡았다.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
‘ ··· 홍반장’의 처음 제목은 ‘영화처럼’이었다. 최종본에서 빠졌지만 시나리오 초고 끝 부분에 ‘우리는 꼭 영화처럼 이루어졌다’는 내용이 있었다는 것. ‘··· 홍반장’이란 제목은 어디서 나왔을까. 1970년대 인기 만화 ‘짱가’의 주제가에서 따온 카피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 영화 속 홍반장의 활약이 짱가 저리가라 수준이기 때문이다.

‘··· 홍반장’이 나오기 전까지는 1974년에 제작된 김영효 감독의 ‘눈으로 묻고 얼굴로 대답하고 마음속 가득히 사랑은 영원히’라는 스물네 글자 제목이 가장 길었다. 신성일, 우연정, 이대엽, 장혁 등이 출연했다.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 당한 여고생은 아직 대학로에 있다.
이어서 스무 글자의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와 열아홉 글자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나는 아직도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가 순번을 차지한다.

열일곱 글자로는 ‘내가 성에 관해 알고 있는 몇가지 이야기들’ ‘열아홉의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 ‘따봉수사대-밥풀떼기 형사와 전봇대 형사’가 있고, 열여섯으로는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사랑하고 싶은 여자 & 결혼하고 싶은 여자’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이 있다.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이밖에도 열 글자를 훌쩍 넘기는 제목의 영화들이 많지만 여기서는 명함도 못 내미는 처지다.

해외에서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가 1964년 제목이 가장 긴 영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바 있다. 번역하면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 혹은: 나는 어찌하여 근심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게 되었는가’쯤의 긴 이름이 된다. 국내 개봉 때는 그냥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라는 제목을 사용했다. 

우디 알렌 감독도 결코 짧지 않은 제목의 영화를 만들었다. ‘당신이 섹스에 관해 항상 알고 싶어하는 모든 것, 하지만 묻기를 두려워하는 것’(Everything Tou Always Wanted to Know About Sex But Were Afraid to Ask)이다.

단편영화까지 살펴보면 벤 에플렉이 주연한 작품이 가장 긴 제목의 영화로 꼽힐 법하다. ‘I Killed My Lesbian Wife, Hung Her on a Meat Hook, and Now I Have a Three-Picture Deal at Disney’로, ‘나는 나의 레즈비언 아내를 죽여서 불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지금은 월트디즈니와 세 편의 영화를 협상 중이다’라는 뜻이다. 웬만한 시놉시스로 보일 정도다. 

길고 긴 제목의 영화들, 누구랑 보았는지 그때 그 시절로 추억여행을 떠나 보시라.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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