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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이것만은 확 바꾸자!] "노인들 부양하러 태어났나요"…'목말 사회'의 우울한 미래

입력 : 2017-07-18 18:50:49 수정 : 2017-07-18 22:4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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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화 시대 2017년생의 씁쓸한 2046년
“저는 2046년 현재 서른살이 된 청년입니다. 출생아 수가 처음 30만명대로 내려앉은 2017년에 태어났지요. 같은 해 태어난 동갑내기들은 30만여명에 불과하지만 올해 만 65세가 된 1980년생 어르신들의 수는 80만명 이상입니다. 평균수명이 길어져 대다수가 살아계십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이 낮다는 언론의 비판 보도도 나왔던데 지금의 조세부담률은 당시에 그토록 선망했던 유럽 수준입니다. 저희 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의 상당수가 어르신들을 위해 쓰이고 있죠. 선거 때마다 세대 간 갈등이 극렬하게 표출되나 우리에게 투표권이 없던 시절, 많은 복지 정책이 이미 어르신들을 위해 설계돼 버렸습니다.

당시 청년들은 취업·주거 마련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헬조선’이란 표현을 썼던데 ‘노인 부양’ 부담까지 떠안은 우리에게는 엄살로 보일 뿐이에요. 그때는 생산가능인구 5명이 1명의 노인을 부양했으나 우리는 조만간 젊은이 한 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하는 ‘목말 사회’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경쟁자가 줄어 취업의 어려움은 나아지지 않았냐고요? 기계와 기술이 제조업 등 주요 산업의 일자리를 대체하며 취업의 문은 더욱 좁아졌습니다. 2014년 산업연구원의 ‘초저출산·초고령사회와 산업구조’ 연구보고서는 이런 상황을 잘 예측했어요. ‘기술 개발에 따른 설비 자동화가 노동력을 대체하면서 고용 감소가 전망된다’고 했었죠.

인구가 줄었는데도 주택수요는 줄지 않았어요. 201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초저출산·초고령사회와 주택시장’ 보고서에서 ‘총주택수요가 2044년에 정점에 도달한 뒤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정점이 2년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란 참으로 어렵네요. 노인 1인 가구가 증가해 여전히 주거 수요가 높은 데다 ‘있는 사람’이 주택을 여러 채 갖고 있는 부의 편중 때문이지요.

사회가 우리에게 크게 해준 것도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살아가는 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나요? 우리는 노인을 부양하기 위해 태어난 세대인가요?”

저출산·고령화의 미래를 전망한 각종 연구 자료를 토대로 그린 2046년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2001년부터 1.3명을 밑돌면서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40만명대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이들이 부양해야 할 세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올해는 이마저도 무너져 사상 첫 30만명대 출생아 수가 예상된다.

이 추세라면 올해 태어난 아이가 서른살이 되는 2046년 국민 5명 중 2명(36.6%)이 노인이 되고 노인 1명당 생산가능인구는 약 1.8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2011년 기획재정부의 추정에 따르면 미래 세대는 급증한 노인부양비로 인해 현 세대보다 2.4배나 많은 조세와 사회보험료 등의 재정 부담을 지게 될 전망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저출산의 해법을 ‘어떻게 하면 아이를 더 낳게 할까’에 맞췄다. 이미 적은 수로 태어난 아이들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았다.

1, 2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은 ‘지금 당장’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기혼자 지원에 주력했고, 지난해 수립된 3차 기본계획은 ‘조만간’ 부모가 될 가능성이 있는 청년의 삶 개선에 주목했다.
그러나 합계출산율이 1.3명을 밑도는 초저출산을 탈피하더라도 지난 15년간 40만명대로 태어난 아이들은 그 어떤 세대보다 과도한 노인 부양 의무를 짊어져야 한다. 이미 10년 이상 이전 세대보다 너무 적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들이 역량 있는 성인으로 자랄 수 있게 사회가 지원하지 않으면 노인 부양은 미래 사회의 극심한 사회갈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현재 아동에 대한 지원은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아동·청소년 관련 복지 지출은 2013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1.3%로 OECD 평균(2.5%)의 절반에 불과하다. 33개국 중 30위다. 1위인 영국은 아동·청소년에게 GDP의 4%를 지원하고 있다.

그나마의 지원조차 보육과 빈곤아동에 편중돼 있다. 보육을 제외한 아동·청소년 지원금은 장애인분야의 16.7%, 노인분야의 4.8%에 불과하다. 아동복지에 일반 아동을 위한 서비스를 상당히 포함한 영국, 미국 등 주요국들과 달리 한국은 보육을 뺀 아동복지예산의 93.6%를 빈곤아동을 위해 쓰고 있다.
미국의 아동복지예산은 GDP 대비 1.1%로 한국보다 낮지만 예산의 23%를 일반아동을 위해 사용하고, 아동 투자를 가장 많이 하는 영국은 아동복지예산 중 일반 아동을 위한 예산의 비율이 41.8%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2014년 범부처 차원의 ‘아동정책기본계획’을 세우고 아동 복지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미 하고 있는 사업을 보강하는 수준이거나 인식·홍보 강화 등 선언적 구호에 그쳤다. 이를 뒷받침하는 대규모 재정 투입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가 1, 2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 때 약 80조원을 쏟아붓고도 출산율이 반등하지 않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아이 낳기 독려보다는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 잘 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아이가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사회에서는 출산장려금을 따로 주지 않아도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늘 것이라는 진단이다.

서울대 이봉주 교수(사회복지학)는 “아동이 행복할 수 없는 사회에서 각종 출산장려책은 무력해진다”며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아동에 대해 과감한 사회적 투자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미숙 연구위원도 “아동과 청소년은 우리 사회의 미래이자 인구 고령화의 부담을 뒷받침할 세대”라며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과 복지확충이 매우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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