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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노숙인에서 추억을 담는 '길거리 사진사'까지

입력 : 2017-07-09 07:00:00 수정 : 2017-07-09 02:3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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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희망사진사 김창훈(45)씨.

지난 4일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9번 출구 앞. 한 남자가 카메라를 든 채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희망사진사’로 불리는 김창훈(45)씨. 졸업식이나 각종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길거리 사진사가 점점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시대지만 김씨는 광화문 앞에서 관광객들의 추억을 담고 있다.

한 커플이 “사진 좀 찍어주세요”라며 앞으로 다가왔다. 서울시에서 무료로 대여해주는 한복을 입고 커플은 나란히 사진기 앞에 섰다. 사진 가격은 액자 포함 4000원. 김씨는 그들의 포즈를 이리저리 바꾸며 구도를 잡았다. 커플 손에 사진이 들어가기까지는 10분쯤 걸렸다.

올해 27살 동갑내기 커플인 두 사람은 각각 서울과 대전에 살아 장거리 연애 중이다. 이들은 광화문에서 데이트를 즐기다 희망사진사를 보고 추억을 남기자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남자친구 김씨는 “책상 앞에 두고 여자친구가 생각날 때마다 보려고 한다”며 싱긋 웃었다. 사진사 김씨도 자신이 찍은 사진이 소중하게 다뤄질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며 뿌듯해했다.
 
희망사진관을 찾아온 장상수(70)씨의 옷 매무새를 정리하는 김창훈 사진사.

김씨는 2년 전만 해도 홈리스(homeless)였다. 무역회사 직원으로 해외를 돌던 김씨는 도박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노숙인이 됐다. 해외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사진 찍는 걸 좋아했지만 노숙인이 된 후에는 사진이 두려워졌다. 누군가 자기를 찍는 게 싫었고, 다른 이의 사진을 찍어줄 처지도 아니었다.

노숙인 자활잡지 빅이슈코리아 판매원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한 김씨의 인생 전환점은 2014년 전 세계 노숙인 축구경기인 ‘홈리스 월드컵’이었다.

월드컵에 참여한 김씨는 경기장에서 한 NGO(비정부기구)단체의 사진사가 카메라 든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다. 그의 열정을 보고 사진에 대한 꿈이 생긴 김씨는 사진작가 조세현씨의 희망프레임이란 프로그램에 참가해 사진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사연이 언론에 알려지고 12년 만에 헤어졌던 가족을 찾기도 했다.

지난 2015년부터 김씨는 서울시와 빅이슈가 운영하는 ‘희망사진관’의 사진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씨는 “광화문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이나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오기 때문에 사진사를 찾는 사람이 적다”며 “희망사진사를 찾는 사람들은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거나 순간을 간직하고 싶은 외국인들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하와이에서 온 해롤(27)과 투신(27)의 사진. 사진은 액자에 담겨 4000원에 판매 됐다.

미국 하와이에서 온 해롤(27)과 투신(27) 부부는 광화문을 둘러보다 희망사진관을 찾았다. 그들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던 중 김씨를 보고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서도 즉석 사진을 부탁한 이유를 묻자 그들은 “간직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김씨는 “디지털카메라 속에 사진은 실재하는 게 아니지 않냐”면서 “액자에 넣는 것만으로도 사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했다.

타이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 등 한류열풍으로 중국·동남아 여행객들이 희망사진관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김씨는 매일 10~20장 정도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관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언론의 관심도 받았고, 100명 이상 자신을 찾았는데 요즘은 꽤 한가해졌다고 한다. 게다가 야외에서 촬영하다 보니 요즘처럼 비 오거나 더울 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빅이슈 코리아 내부사정으로 희망사진관 운영을 하지 못하게 돼 사진관을 앞으로 어떻게 꾸릴지 고민한다”며 “예전에는 사진사가 더 있었는데 지금은 다 생계를 위해 떠나고 혼자 광화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김씨는 지난해 재개발 전 서울 아현동의 모습을 담은 ‘아현동’이란 제목의 사진전을 열었다. 또 2~3개월마다 장수사진전을 열어 노인들의 영정사진 찍어주는 활동도 펼친다.

김씨는 “누군가 내가 만든 사진을 가지고 있다는 게 뿌듯하고 보람을 느낀다”면서 “희망사진관이라는 이름처럼 내 사진 이야기가 노숙인이나 사람들에게도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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