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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길] “평생 지역 후학양성 자부심… 중소국립대 특성화 대책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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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07 20:13:40 수정 : 2017-07-07 20: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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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 목포대총장, 지방대가 나아갈 길을 말하다 수도권 집중 현상과 지방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풀리지 않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수십년째 이어져온 대한민국의 고질병이다. 특히 지방소재 중소 규모 대학들은 학령인구 감소와 맞물려 더 큰 위기감을 호소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지방대들이 줄기차게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일(62) 목포대 총장은 지방의 위기가 획일화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건축학자이기도 한 그는 단편적인 예로 서울 등 대도시의 주거형태인 아파트가 시골 논두렁에까지 들어서는 모습이 중앙·수도권 집중 현상을 잘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 역시 획일화의 한 단면이라는 게 최 총장의 설명이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최 총장은 “수도권과 지방은 분명 환경에 차이가 있지만 모든 문제를 수도권의 관점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지방이 위기에 놓인 것”이라며 “대학 차원에서도 수도권 대학들과 지방대들이 각자의 역할이 있는건데 이를 무시하고 획일화 일변도로 간다면 지방대는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가 총장으로 재직중인 목포대는 규모가 작은 중소형 국립대다. 거점대학과 지역중심대학, 특수목적대학 등 총 3가지 유형으로 나뉘는 국립대는 80% 이상이 지방에 위치하고 있지만, 국립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학구조개혁평가나 재정지원사업 등에서 불이익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최 총장은 털어놨다.

정부의 재정지원이 부족한데다 등록금 동결 또는 인하 기조가 이어지면서 주수입원이 없는 국립대, 특히 지방 중소 규모 국립대들은 회계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 총장은 “지역인재 육성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역할을 해야할 대학이 이처럼 어려움을 겪는 건 분명 건강한 현상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목포대 최일 총장이 “전국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지역중심 국·공립대학들은 대형 국립대보다 적은 예산으로도 빠른 특성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므로 정부의 중소형 국립대 혁신 발전을 위한 육성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최 총장은 지방대 총장으로서뿐만 아니라 평생을 ‘지방인’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1955년 광주에서 태어난 최 총장은 지역 유지였던 할아버지 덕분에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다만 그는 광주 최고의 명문으로 꼽혔던 광주서중에 진학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혹독하게 공부에 매달려야 했다. 최 총장은 “그 때가 인생을 통틀어 가장 공부를 치열하게 했던 때”라며 웃어보였다.

광주서중에 입학한 최 총장은 광주일고에 무시험으로 들어갈 수 있게돼 즐거운 중·고교 시절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최 총장은 교사로 일하면서 화가생활을 동시에 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서울대 미대 진학을 희망했으나 집안의 반대로 공대를 가야 했다. 그는 공대 내 학과 중에서 건축학과가 가장 예술적 성향이 강하다는 생각에 건축학도가 됐다고 덧붙였다.

최 총장에겐 서울로 유학 아닌 유학을 떠났을 때가 가장 외롭고, 힘든 시기였다. 당시 시대 상황은 암울했다. 최 총장이 대학에 진학하기 전부터 유신이 선포돼 대학 캠퍼스의 분위기는 삼엄했다. 매일 대학생들의 데모와 휴교령이 반복됐다. 정상적인 대학 생활을 할 수 없었던 탓에 최 총장은 건축학을 거의 독학으로 배워야 했다.

어려운 대학생활을 견뎌낸 건 건축가가 되고자 하는 꿈 덕분이었다. 최 총장은 휴교기간에도 작품과 씨름하며 건축을 공부했다. 이런 노력이 빛을 보게된 걸까. 최 총장은 대학 4학년 때 건축학도들의 등용문이었던 국전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그는 “현재 중앙대 건축학과에 있는 손세관 교수와 함께 국전에 출품했었는데, 운이 좋게도 심사위원들이 잘 봐줘 문공부 장관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 총장이 처음 교수 생활을 한 건 서울이나 광주가 아닌, 울산이었다. 1980년 고향 광주에서 5·18 민주화 운동이 군부독재 정권에 끔찍하게 진압된 데 충격을 받은 최 총장은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당시 울산대는 서울대 건축학도들이 외국으로 나가기 전에 잠시 교편을 잡는 대학이었다.

그러나 울산에서 지금의 부인을 만나고, 큰 아이가 태어나면서 가족들을 데리고 유학길에 오르기 힘든 상황이 됐다. 최 총장은 석사 과정 때 지도교수의 권유로 다시 서울로 올라와 박사 과정을 밟았다. 공부를 하는 한편으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해 울산대에서 교수 생활도 그대로 이어갔다. 그 와중에 평생의 업으로 생각했던 건축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도 없어 건축사 면허도 땄다.

박사 학위를 취득한 최 총장은 연고가 전혀 없는 울산에서 뜻을 제대로 이루기 어렵다고 판단, 서울로 올라갈 채비를 했다. 그 때 우연히 전남 무안의 목포대가 종합대학으로 승격되면서 낸 건축공학과 신규교수 채용 공고를 보게 됐다. 당시 최 총장 주변에서는 다들 만류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서울대나 울산대에 비해 규모가 작은 지방 신생 대학인데다 부교수 신분을 버리고 전임강사부터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다.

최 총장은 고향인 전남에 울산대 못지 않은 좋은 대학을 만들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목포대행을 택했다. 그는 “건축 활동을 하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과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을 모시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그는 목포대 산학협력단장과 공과대학장을 거쳐 2014년 3월 목포대 제7대 총장에 당선됐다.

그동안 최 총장은 건축에도 많은 족적을 남겼다. 교편을 잡고, 대학 경영에 뛰어들면서도 틈틈이 건축 설계를 해 지금까지 5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냐고 묻자 최 총장은 “건축가로 이름을 알리게 된 도봉구청과 담양 리조트 호텔”이라고 답했다. 담양 리조트 호텔은 소박하지만 온천욕을 즐기면서 사계절 아름다운 자연을 조양할 수 있는 곳으로, 고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구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머물기도 했다.

최 총장의 30여년 간 교수생활은 어땠을까. 그는 스스로를 ‘면도날처럼 깐깐하고 항상 많은 것을 요구한 교수’였다고 회상했다. 여학생들은 혹독했던 최 총장을 ‘저승사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제자들도 최 총장의 마음을 하나 둘 이해하기 시작했다. 건축가가 된 제자들이 지금도 최 총장에게 연락을 종종 해온다고 한다.

그는 “건축 설계라는게 이상적이어선 곤란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문제를 계속 체크하고 보완해야 한다”며 “게다가 설계 지도는 학생들과 1대 1 대면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엄격하게 할 수밖에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니 학생들과 끈끈한 사제지간의 정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건축가와 교수로서 최 총장이 가장 강조한 건 현장과 실무 중심의 문제해결 능력이다. 그는 “건축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길과 마당이라고 생각한다”며 “건축물의 형태 보다는 건물에 의해 형성되는 길과 마당이 인간의 생활을 얼마만큼 풍요롭게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교육철학으로 옮기면 ‘현장 실무 중심의 문제해결 능력을 배양해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된다.

총장이 된 뒤 그가 가장 주력한 것은 학생들의 취업률 향상이다. 최 총장이 취임한 2014년에 목포대의 취업률은 전국 국립대 중 꼴찌 수준이었다. 그는 “종합 대학으로서 기초학문 육성에도 힘써야겠지만 지방대인 목포대는 일단 지역인재들을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도록 하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교수 시절부터 최 총장은 학생들에 늘 “만원버스엔 탈 자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비집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항상 여유있는 자리는 있기 마련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취업이 어렵다고 해서 취업이 안 되는 것은 아니며, 어딜 가든 경쟁에서 이겨낼 수 있는 실력과 자신감을 길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최 총장은 이공계에 먼저 집중해 취업률을 올리고, 인문계는 언어와 지역학을 결합해 특성화를 꾀했다. 예를 들어 중국어과 학생을 중국 통상 전문가로 키운 것이다. 최 총장은 또 고용노동부나 산업자원부 프로젝트 수주에 노력을 기울이는 등 취업률 올리기에 안간힘을 쏟았다. 그 결과 그의 4년 임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인 현재 목표로 했던 취업률 60%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특성화대를 제외하면 최상위권 수준의 취업률이다.

하지만 취업률이 오른다고 지방대의 위기가 해소되는 건 아니다. 여전히 정부의 대학정책은 수도권과 지방을 구분하지 않은 채 집행되고 있으며, 재정난을 겪고 있는 지방대가 절대 다수다. 그는 “정부가 간섭이 아니라 조금만 지원을 해주면 지방대가 고유의 역할, 즉 지역경제 발전과 지역인재 육성 등에 매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최 총장은 새 정부에 대한 제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새 정부의 대학정책이 대형 국립대 집중 육성에 치중됐다고 알려졌는데, 각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는 중소 국립대들이 살아나야 그 지역도 살 수 있다”며 “일부 대형 국립대로 통폐합된다면 새 정부 대학정책이 ‘지방 속에 또 다른 지방’을 만들어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방 중소 국립대는 대형 국립대가 육성하기 힘든 분야의 인력양성에 특화돼 있고, 보다 적은 예산으로 빠른 특성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중소 국립대 육성을 위한 지원책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최 총장은 지난달 29일 부산에서 열린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하계 총장 세미나에 참석해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새 정부를 향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최 총장은 “이낙연 국무총리가 전남 출신이어서가 아니라 지방의 어려운 현실을 잘 알고 있는 분이라 생각해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며 “참여정부 시절처럼 새 정부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지방과 지방대 살리기에 나섰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원선 선임기자 president58@segye.com

최 총장은
△1955년 광주 출생 △광주일고 졸업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서울대 건축학 공학석사 △서울대 건축학 공학박사 △일본 동경대 객원연구원 △목포대 교수 △목포대학교 공과대학장 △목포대 산학협력단 단장 △국토해양부 국가 건축정책위원회 자문위원 △국토해양부 중앙건축위원회 위원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 △청와대 건설기술·건축문화선진화 위원회 위원 △문화체육관광부 표창장 △제29회 국전 건축부문 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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