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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플러스] 인간관계에 염증… ‘인맥 거지’ 자처하는 청년세대

입력 : 2017-06-01 19:17:16 수정 : 2017-06-01 19:3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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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속의 고독’ 일상화… 양면적 성향 두드러져
#1. 3년차 건설사 영업사원 A(31)씨는 최근 스마트폰 메신저에 저장된 연락처들을 보면서 공허한 마음이 들었다. 진지한 마음으로 퇴사를 고민하던 A씨였지만 아무리 살펴도 선뜻 연락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 메신저에는 1300명이 넘는 ‘친구’가 있었지만 정작 마음을 터놓고 고민을 상담할 사람이 없었다. A씨는 “인맥관리가 일의 연장선상이 되면서 새로운 관계 맺는 것도,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지쳤다”면서 “조만간 한 번 (인맥을) 정리해야겠다”며 씁쓸해했다.

#2. 직장인 B(30)씨는 이따금 외로움을 느낄 때면 소개팅을 한다. 지난해 소개팅을 10번 이상 했지만, 깊은 관계로 이어진 경우는 한차례도 없었다. 연인관계에서 오는 부담감이 싫어서였다. 한 번의 식사와 만나기 전까지의 설렘 등에 만족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게 그의 말이다. 가끔씩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을 땐 아무 인터넷 동호회를 찾아 오프라인 모임에 참가하기도 한다. 물론 두 번 가는 일은 없다.

거미줄같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과 회의감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경쟁사회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주변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의식하면서 동시에 고립감을 느끼는 이른바 ‘군중 속의 고독’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이에 “혼자가 편하다”며 주변인들을 과감하게 쳐내며 이른바 ‘인맥 거지’를 자처하는가 하면, 외로움을 달래줄 일회성 인맥을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인간관계의 부담은 최소화하면서도 외로움은 해소하려는 현대인의 양면적 모습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1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 4월 성인남녀 252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절반가량인 1146명(46%)이 ‘인맥 다이어트를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생각은 했으나 실행으로 옮기지는 못했다’는 답변도 923명(36%)에 달했다. ‘타인에게 프로필을 공개하고 싶지 않아서’, ‘진짜 친구를 찾기 위해서’, ‘이름만 봐선 누군지 몰라서’ 등 이유에서였다. 또 전체의 48%는 스스로를 ‘인맥 거지’라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생 김모(26)씨도 ‘인맥 거지’를 자처한다. 학업, 취업준비 등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관계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다지 친하지도, 잘 알 지도 못하는 사람들과의 ‘단톡방’은 의미 없는 메시지와 이모티콘의 홍수였다. 김씨는 “(휴대폰 연락처에) 가족을 포함해 50여명밖에 남지 않았다”면서도 “남들의 모습을 몰래 훔쳐보던 전보다 지금이 낫다”고 말했다.

청년들의 이런 모습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란 시각도 있다. SNS 등으로 관계 맺기가 과거에 비해 훨씬 쉬워짐과 동시에,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관계의 양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전북대 설동훈 교수(사회학)는 “시간, 돈, 마음 등 인간관계를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선 ‘여유’가 있어야 한다”며 “무수한 인간관계 속에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허용가능한 범위에서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인맥 정리의 주된 이유다. 정서적인 유대감 등 일정 부분을 포기하면서 스트레스의 근원을 원천봉쇄하려는 것이다. 최근 수년 간 청년층을 중심으로 ‘혼밥’, ‘혼술’ 등 혼자 문화가 확산한 것도 그 이면에 관계에 대한 두려움, 스트레스가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지난해 4191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전체의 42%가 형식적으로 인맥을 관리하고, 인맥 관리에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응답했다.

드러나는 양상이 다르지만 일회성 성격이 짙은 이른바 ‘티슈 인맥’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난달 초 지방의 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은 직장인 김모(28)씨가 그런 사례다. 연휴 때마다 종종 홀로 게스트하우스를 찾는다는 그는 “게스트하우스 측에서 여행자들을 위해 맥주나 바베큐 등을 두고 파티를 열어줘 젊은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며 “20∼30대 직장인이 대부분인데 일회성 만남이라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7년 째 익명 보이스채팅을 취미로 하고 있는 C(42·여)씨는 “일면식 하나 없이 서로 목소리밖에 알지 못하는 관계지만, 바깥에선 말하기 힘든 고민이나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며 “(보이스채팅으로) 일상을 나누며 서로 조언하고 위로받는 게 어설프게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보려는 현대인의 욕구가 투영된 모습이라고 보았다. 덕성여대 최승원 교수(심리학)는 “특히 청년 세대에서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깊은 인간관계를 꺼리는 모습이 두드러진다”며 “외자녀로 자라는 경우가 많은 데다 여러 사람과 부대끼며 자란 경험이 거의 없는 현실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리스크가 적다는 건 얻을 수 있는 것도 그만큼 적다는 의미”라며 “평생 혼자 살 수는 없는 만큼 조금씩 깊은 인간관계를 맺는 연습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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