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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선 사람들] 폭언·폭행에 노출된 상담사… 2교대로 12시간씩 ‘강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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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21 19:15:08 수정 : 2017-05-22 19:2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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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처우에 인력난… 정부는 ‘뒷짐’
“자택에서 술에 취해 가위를 들고 ‘죽겠다’고 말하는 상담자를 상대하는데, 함께 온 경찰은 ‘상담하시라’며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여자 주제에 뭘 아느냐, 너를 성폭행하겠다, 만지고 싶다… (상담 과정에서) 폭언과 욕설, 성희롱에 시달리기 일쑤다.”

지난해 전국보건의료노조의 조사에서 나온 자살예방 상담요원들의 고충이다. 자살상담뿐만 아니라 현장출동까지 비일비재하지만, 여건은 처참하다. 20·30대 젊은 여성이 90%인 상담요원들은 과격한 폭력,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인력난에다 열악한 처우, 불안정한 환경 등 탓에 이직률도 높다. 자살 문제 개선을 위해선 현장 상담요원의 근로여건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지만, 정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팔짱만 끼고 있다.

인력난은 심각한 수준이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의 경우, 2∼3명씩 돌아가며 12시간씩 근무하는데 하루 상담전화만 100∼150건에 달한다. 현장 출동 상황이 있을 때는 상담이 가능한 사람이 한 명뿐인 구조다. 주간에는 지역 정신보건센터와 업무를 나눠 그나마 형편이 낫지만 야간, 주말에는 상담요원 2명이 서울시 전역을 담당한다.

지역별 정신보건센터도 상황은 비슷하다. 정부의 위탁을 받은 민간기관들의 자살예방 관련 예산은 6000만∼1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건비와 사업비가 모두 포함된 금액으로 종사자들의 정규직 전환은 물론 새로운 사업을 펼치기도, 인력을 충원하기도 어렵다. 10만명 당 정신보건인력이 영국(318.9명), 미국(125.2명), 핀란드(99.2명) 등에 비해 우리나라(42명)가 턱없이 부족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인건비 상승 요인이 되는 장기근무자 중에는 자발적으로 퇴직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지방의 한 정신보건센터에서 일하는 A(27·여)씨는 “이전에 일한 아동상담기관과 처우와 근무여건이 하늘과 땅 차이”라며 “유능한 인력이 계속해 떠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경찰 등 관련기관과의 역할 분담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점도 고충이다. 상담요원 B(36·여)씨는 “자살신고를 받은 경찰은 상담요원에게 의심자를 인계하자마자 자리를 뜨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경찰관에게 ‘제발 있어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많지만 금세 가버린다”고 전했다. 공무원 신분도 아니고, 상담자를 강제할 근거가 없는데 “당신들 일 아니냐”는 식의 반응만 돌아온다는 게 현장의 전언이다. 경찰은 자살시도의 구체적 정황 없이 단순 신고만으로 조치를 취할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자살상담이 감정소모가 많은데다 근무여건마저 이런 상황이다 보니 상담요원들이 오히려 자살충동을 심각하게 느끼기도 한다. 

21일 중앙자살예방센터의 ‘자살예방사업 실무자의 정신건강 실태분석’(2016)에 따르면 ‘최근 1년 이내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실무자 156명 중 34명(21.9%)이 ‘그렇다’고 답했다. 일반인(5.2%)보다 4배 이상 높은 수치다. 무력감이나 죄책감, 우울감 등을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주무부처에서도 마땅한 대책은 없다. 예산 자체가 워낙 부족해서다. 복지부 관계자는 “인력난과 고용여건이 심각한 상황인 것은 잘 알고 있지만 현재로선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털어놨다.

서울시정신보건지부 주상현 사무장은 “현장의 노하우와 스킬이 보존된다면 자살률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는데 예산이 없어 전문인력이 클 수 없는 구조”라며 “고용안정, 상담요원 보호 등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사회부 경찰팀=강구열·박현준·남정훈·박진영·김범수·이창수·배민영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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