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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흡연자 "혐오그림 무덤덤"… 비흡연자·판매자만 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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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15 19:08:14 수정 : 2017-05-16 10: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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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그림 효과 무색… 담배 판매 이전 수준 회복
“이제는 케이스도 잘 안 쓰게 되더라고요. 무덤덤해진 것 같아요”

흡연자인 회사원 이모(32)씨는 담배갑에 혐오 그림이 부착되기 시작하자 담배 케이스를 구입했다. 한동안은 담배를 구입한 뒤 20개비를 케이스에 옮겨 담아 꺼내 피웠던 이씨는 이제 더 이상 케이스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씨는 “옮겨 담는 게 귀찮아지기도 했고, 혐오 그림도 계속 보다보니 이제는 좀 무덤덤해진 것 같다. 옮겨 담지 않고 담배갑 채로 넣는 케이스도 있긴 한데, 그것도 귀찮아 이제는 그냥 갖고 다닌다”고 말했다.

◆ 담배 혐오 그림 효과 무색? 담배 판매량 다시 증가

이씨처럼 대다수의 흡연자들이 혐오 그림에 대해 무덤덤해졌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2월23일부터 담배갑에 혐오 그림을 부착하게 된 이후 첫 두 달 동안에는 담패 판매량이 감소했다. 지난 1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6년 12월 2억9000만갑이 팔린 이후 지난 1월 2억8000만갑, 2월 2억4000만갑이 팔리며 하며 혐오 그림 부착이 효과를 보는 듯 했다. 그러나 3월에 다시 2억8000만갑이 팔리며 평소 수준을 회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흡연자들이 혐오 그림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면서 혐오 그림의 효과가 무색해졌다는 얘기다. 1~2월 판매 둔화가 혐오 그림 효과가 아닌 새해 금연 결심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20년째 담배를 피웠다는 김모(41)씨는 “담배가 몸에 안 좋은 것을 모르던 것이 아니지 않나. 처음엔 아내한테 ‘그런 그림이 있는데도 피냐’며 잔소리를 듣는 게 싫었지만, 이제는 무덤덤하다. 담배 케이스로 가릴 수도 있고, 요즘엔 편의점에서 혐오 그림을 가리는 ‘매너 라벨’을 나눠주기도 하더라. 혐오 그림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다”라고 말했다. 김씨 말대로 혐오 그림을 가리기 위한 갖가지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편의점 등 담배 판매점에서 파는 2~3000원짜리 간이 담배 케이스부터 10만원을 호가하는 프리미엄 담배 케이스 상품도 팔리고 있다. 여기에 혐오 그림을 가리는 스티커, 일명 ‘매너 라벨’도 등장했다. 아파트나 오피스텔 분양, 술집 등 광고가 필요한 업체들이 스티커를 제작해 편의점에 배포하고, 편의점은 담배 구입자들에게 이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는 것이다. 흡연자와 담배 판매업자, 광고주의 이해가 일치하면서 매너 라벨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담배회사에서 제작해 지원하는 게 아니라서 규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 신촌의 한 편의점 계산대 뒤편의 담배 진열대가 가지런히 정리돼있다. 직원들은 담배에 부착된 혐오스러운 흡연 경고그림으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호소한다. 
자료사진
◆"왜 우리가 피해를 봐야하나요"

“담배 그림을 고르는 손님 때문에 힘들어요. 심지어 새 보루를 뜯어서라도 덜 혐오스러운 그림을 고르는 손님도 있다니까요”

경기도 안산시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손모(24·여)씨의 푸념이다. 손씨에 따르면 많지는 않지만, 담배를 구입하는 손님 중 2~30%는 특정 혐오 그림이 부착된 담배로 고른다고 답했다. 손씨는 “손님이 없을 때는 그 정도 수고로움은 이해하겠는데, 다른 손님들이 줄 서 있는 상황에서 혐오 그림을 고를 때는 짜증이 좀 나기도 한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혐오스러움이 덜한 그림이 무엇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한다. 흡연에 따른 질환과 폐해를 표현한 담배 혐오 그림은 총 10가지 종류다. 그중 흡연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혐오 그림은 간접흡연의 위험성을 경고한 ‘눈이 충혈된 아이의 옆모습’이다. 아빠 얼굴이 타버린 가족사진(조기 사망)과 남성 하반신 앞에 구부러진 담배(성기능 장애)도 그나마 혐오감이 덜한 담배로 꼽힌다. 

담배 판매자들의 고충은 이뿐만이 아니다. 국회의사당 본청 1층 매점에서 담배를 판매하는 하모(45)씨는 담배를 거꾸로 꽂아놓아 혐오 그림이 보이지 않도록 진열했다. 이유를 묻자 “임신 초기인데 혐오 그림을 볼때마다 기분이 너무 좋지 않아서 일부러 그랬다. 손님들도 의아해 하는 분들이 있는데 늦둥이를 임신했다며 양해를 구하고 있다. 규제에 어긋난다고 하던데 태아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모성애로 이해해달라”라고 말했다.

비흡연자들도 담배 혐오 그림으로 인한 애꿎은 피해자다. 보통 담배 매대가 계산대에 설치되기 때문에 계산할 때마다 담배 혐오 그림을 봐야하기 때문. 주부 이모(38)씨는 “편의점에 갈 때마다 내가 왜 그런 그림을 봐야하나 의문이 들 때가 많다”면서 “지난 번에 아이와 함께 편의점에 갔을 땐 아이가 담배 혐오 그림을 보더니 눈을 가리더라. 비흡연자들을 위한 가림막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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