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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페미니즘 상징’ 원더우먼의 숨겨진 진실

입력 : 2017-05-13 03:00:00 수정 : 2017-05-12 21: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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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여성 히어로로 강인한 새 여성상 구상
사슬 묶인 모습 등장… 남성 성적 욕망 자극
자기 모순적 캐릭터 어떻게 만들어졌나
원작자 마스턴 복잡한 삶 통해 비사 조명
바야흐로 슈퍼히어로의 시대다. 슈퍼맨부터 배트맨, 아이언맨, 헐크, 토르 등에 이르기까지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그중에서도 원더우먼은 시대를 통틀어 가장 인기 있는 여성 슈퍼히어로로 통한다. 원더우먼은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지만, 다른 슈퍼히어로와 달리 진짜 ‘역사’도 숨기고 있다.

신간 ‘원더우먼 허스토리’는 원더우먼을 탄생시킨 원작자 윌리엄 몰턴 마스턴(1893∼1947)의 삶을 전기 형식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 질 르포어는 마스턴이 남긴 메모와 편지, 앨범 등을 통해 원더우먼이 가진 모순과 숨겨진 역사를 조명한다.

원더우먼은 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 미국에서 탄생했다.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달리 원더우먼은 자기모순적인 캐릭터로 통한다. 20세기 중반 미국 페미니즘의 표상이면서, 번번이 사슬에 감기고 재갈이 물린 채 등장해 남성의 왜곡된 성적 욕망을 자극하기도 했다.


슈퍼히어로 만화 ‘원더우먼’에는 원작자 윌리엄 몰턴 마스턴(오른쪽)의 여성우월주의가 반영돼 있다. 사진은 1942년 ‘원더우먼’ 1호.
저자인 마스턴도 원더우먼만큼이나 복잡한 인물이었다. 마스턴은 거짓말탐지기를 처음으로 고안해 낸 심리학자다. 양성애자인 그는 하버드대 재학시절 여성인권 서클을 주도한 페미니스트였고,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판에 발을 들였다. 체중 100㎏가 넘는 거구였던 그는 스스로를 ‘세계적으로 유명한 심리학자’라고 떠벌리고 다녔다.

슈퍼히어로 만화가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미국 사회는 슈퍼히어로 만화가 지나치게 폭력적인 내용을 다룬다는 비판여론이 형성되고 있었다. 이에 만화출판사인 DC코믹스는 심리학자이면서 영화 시나리오를 쓴 경험이 있는 마스턴에게 자문을 구했다. 마스턴은 여론을 상쇄시키기 위해서는 여성 슈퍼히어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여성은 약점으로 인해 강점을 멸시당했다”면서 “이를 해결할 명백한 방법은 슈퍼맨의 힘과 훌륭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매력을 전부 갖춘 여성 캐릭터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적 아름다움과 초능력, 지혜, 공감능력을 겸비한 원더우먼 캐릭터에는 마스턴의 ‘여성우월주의’가 반영됐다. 마스턴은 사회통념 속에 존재하는 여성상에 강인함과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원더우먼이 새로운 여성상으로서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피력했다. 그는 미국이 수백년 내에 모계사회로 변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원더우먼은 1970년대 미국 페미니즘 운동가들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미국 페미니즘의 대모격인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 페미니스트들이 창간한 잡지 ‘미즈’는 1972년 창간호에 원더우먼을 표지모델로 실었다. 표지에는 ‘원더우먼을 대통령으로’라는 문구가 함께 실렸다.

그러나 원더우먼은 페미니즘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일부 진영에서는 원더우먼이 여성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운다는 비난이 제기됐다. 다른 슈퍼히어로가 폭력성 논란에 휘말렸다면, 원더우먼은 과도한 노출이 문제시됐다. 원더우먼을 옭아맨 수갑과 족쇄, 재갈, 사슬 등은 여성 억압을 상징하는 은유로 여겨질 소지가 있었다. 1942년 전미문학심의기구는 ‘센세이션 코믹스’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는데, 원더우먼의 노출이 심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원더우먼의 이 같은 특성은 마스턴의 은밀한 사생활이 반영된 결과였다.

마스턴은 1947년 암으로 숨졌다. 그러나 원더우먼은 대중문화 속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논쟁적 아이콘으로 부활을 거듭하고 있다. 저자는 “슈퍼맨이 SF에 빚졌고 배트맨이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에 빚졌다면, 원더우먼은 가상의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와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에 빚졌다”면서 “원더우먼의 기원은 윌리엄 몰턴 마스턴의 과거와 그가 사랑했던 여성들의 삶에 있다”고 말한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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