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야는 대체로 한국의 대선에서 야당의 집권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선거전 내내 줄곧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미국에서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미국 조야는 ‘문재인―트럼프’ 조합이 빚어낼 한반도 정책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문 후보는 ‘국익 우선주의 외교’를 표방하고 있다. 한국의 형편과 이익에 맞춰 외교·안보·통상 정책을 자주적이고, 주도적으로 펼쳐가겠다는 게 국익 외교의 요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노선을 내세워 집권했고, 현재 이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외교와 통상 등 대외 정책 분야에서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한국에서 진보 정권이 집권하면 트럼프 대통령과 가장 먼저 대북 정책 방향을 놓고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선제 타격에서부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의 북·미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대북 정책의 스펙트럼을 최대치로 확장했다. 미국은 이를 ‘최고의 압박과 관여’ 정책이라고 부른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정책을 추진하면서 동맹국인 한국과 사전 협의를 거치겠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는 단순한 수사에 그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미국 본토를 핵무기로 타격할 수 있는 핵탄두 장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이 임박했다고 판단하면 한국이 반대해도 대북 군사 옵션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또 “트럼프 대통령이 이와 정반대로 김 위원장과 담판을 시도한다면 이때에도 북·미 간 최고위급 대화 채널이 가동되는 것이어서 한국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타임스(WT)는 3일 (현지시간)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트럼프 정부가 대북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에 관한 불확실성이 고조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WT는 “북한에 유화적인 문 후보와 글러브를 벗은 맨주먹 접근책을 들고 나온 트럼프 대통령이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도 4일 “차기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북 강경정책에서 대대적인 기조 변화를 할 것”이라며 “이 때문에 강경노선을 이어가는 트럼프 정부와 충돌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Alexander Hunter/The Washington Times |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비용 10억 달러를 한국이 부담하라고 청구서를 내밀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 또는 폐기를 요구한 것이 한국인의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4일 “트럼프에 대한 우려가 한국 대선전에서 이슈로 부각됐다”고 보도했다. VOA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그의 대북 강경책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한국의 대선 후보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고, 문 후보가 그 최대 수혜자라고 지적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