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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역사속 스포츠] 4월 26일 황소뿔을 맨손으로 격파한 최배달 사망

입력 : 2017-04-23 09:47:00 수정 : 2017-04-21 09: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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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역사속 스포츠]

◇ 4월 26일, 1994년 단 한번도 지지 않았던 극진 가레데 창시자 최배달 사망

최배달(1923년 6월 4일~1994년 4월 26일)은 맨주먹 대결에서 한번도 패한 적 없는 전설적인 무도인이다.

일본계열의 가라테(空手)가 상대에게 직접 공격을 금하는 것에 실망, 손으로 얼굴을 직접 가격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공격을 허용하는 극진 가라테를 창설해 세계적 주목을 끌었다.

본명이 최영의인 그가 최배달로 불린 것은 활동무대가 일본이었던 까닭에 이름을 일본식인 대산배달(大山倍達)로 고친 결과이다.

일본식 이름같지만 대산은 그의 성 최(崔)를 달리 표현한 것이고 배달은 한국인임을 잊지 않으려해 지었다.

그만큼 그의 몸과 마음엔 배달민족, 우리의 얼과 혼이 들어 있었다.

최영의는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나 3살때 만주로 건너가 누나집에 있으면서 중국권법을 배웠다.

이후 일본으로 넘어가 1938년 8월 가라데를 배웠다.

1945년 도쿄에 가라데연구소를 열었으며 1946년 입산수도해 기량을 연마했다.

그 무렵 진정한 무술이라면 실전에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신의 무술에 극진(極眞)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47년 전일본 가라데대회에서 우승한 최배달은 다시 입산수도한 뒤 가공할 위력의 무도인으로 탈바꿈했다.

자신의 무도를 알리기 위해 황소와 맨손 대결을 펼쳤다.

1950년 47마리의 소와 대결해 뿔을 뿌러뜨렸고 이중 4마리가 충격을 받고 즉사, 최배달의 이름이 일본 전역에 알려지게 됐다.

최배달은 1951년 3월 유도, 검도 고수와의 맨손 대결을 시작으로 전세계를 돌며 이른바 '도장깨기'를 해 전승을 거뒀다.

1954년 일본 현풍관에서 유도 고단자 100명과 연속 대결해 모두 이겼다.

1955년 도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장(오야마=大山 도장)을 열어 극진가라데 보급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후 극진 가라데는 전세계 120개국에서 1400만명이 수련하는 세계적 무예로 성장했다.

최배달은 1994년 4월 26일 폐암으로 사망했다.

최배달의 일생은 고우영의 만화 <대야망>과 방학기의 <바람의 파이터>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또 바람의 파이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또 송강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계기였던 영화 <넘버3>속에도 “대단하신 분이었지, 맨손으로~”라는 대사에도 등장할 만큼 우리나라 중장년층 사이에 유명한 무술인이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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