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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代 독립운동 안중근 가문… ‘망각의 역사’서 불러내다

입력 : 2017-04-07 21:04:21 수정 : 2017-04-07 21: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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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은 세계적인 안광(眼光·식견)을 가지고 스스로 평화의 대표로 나선 사람이다.”

백암 박은식은 1914년 발간한 ‘안중근전’에서 1910년 3월26일 순국한 안 의사(1879~1910)를 독립운동가이자 뛰어난 사상가로 조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 안 의사는 여전히 ‘하얼빈 의거의 주인공’으로만 남아 있다.

현대사 저술가인 정운현·정창현씨는 신간 ‘안중근가(家) 사람들’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안 의사의 면면을 조명하고, 독립운동 명문가인 안중근 일가를 소개한다.

저자들은 안중근 의사의 영웅적 거사만 추앙하다 보니 그의 인간적 면모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안타깝게도 안 의사 유해의 소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그의 모친과 동생들은 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가문을 대표하는 안 의사는 영웅으로 추앙받아 많은 전기와 평전이 나왔지만, 그의 일가가 우리 근현대사에 남긴 발자취는 연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망각 속에 묻히고 있다. 안 의사의 가문은 3대에 걸쳐 15명이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운동 명문가다. 안 의사의 남동생인 안정근(1885~1949)과 안공근(1889~1939)은 형이 순국하자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사촌동생인 안경근(1896~1978)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김구 선생을 보좌했다.

독립운동은 후대에도 이어졌다. 안정근의 장남 안원생(1905~?)은 임시정부와 흥사단에서 활동했다. 광복 후에는 주한 미국대사관에 근무하며 가문의 중심에 섰다. 안공근의 차남 안낙생(1913~1950)은 한인애국단에서 활동했다. 그는 윤봉길 의사와 이봉창 의사의 거사 전 마지막 사진을 직접 촬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항일을 하면 삼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삼대가 흥한다’는 말이 안 의사의 일가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안 의사 의거 이후 그의 일가에 가해진 일제의 감시와 탄압은 가혹했다. 그에 반해 2대에 걸쳐 친일 행적은 남긴 윤치영 가문은 광복 후에도 승승장구했다. 윤치영은 1963년 결성된 안중근숭모회의 초대이사장까지 지냈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 왜곡된 현대사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안 의사는 “불의를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라”고 말했다. 역사를 반성할 줄 모르는 민족은 또다시 역사의 횡포를 만날 것이고, 역사를 통찰할 줄 모르는 민족은 미래로 전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누구나 다 아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안중근 가문의 재조명은 과거에 대한 성찰을 넘어 새로운 미래상을 찾아볼 수 있는 여정이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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