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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살아도 산이 그립다] (1) 지금 못하는 건 나중에도 못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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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05 16:05:09 수정 : 2017-06-12 13: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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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영경의 마르디 히말 트레킹
<<사진 = 아침빛에 모습을 드러내고 다시 올라오는 가스에 묻히려는 안나푸르나 산군:
안나푸르나 남봉-히운출리- 그리고 물고기 꼬리 모양의 마차푸차레>>
해가 질 때는 외로움도 역시 찾아들었다. 이제 회의에 빠지는 일은 극히 드물었으나 그럴 때면 흡사 내 전 생애가 내 뒤에 펼쳐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덜컥 내려앉곤 했다. 나는 우리가 일단 그 산에 오르기만 하면 눈앞에 가로놓인 과제에 깊이 몰입하는 바람에 그런 기분은 사라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이따금, 결국 내가 찾던 게 뒤에 남겨놓고 온 어떤 것이라는 걸 깨닫기 위해 이렇게 멀리까지 온 건 아닌가 하는 회의가 깃들곤 했다.

(토마스 F. 혼베인, <에베레스트: 서쪽 능선> 가운데서)

비어있던 산을 랄리구라스가 채워가고 있었다. 

진달래꽃 스물 가까이를 한데 모아놓은 모양새로 봄가을 두 차례 피고 지는 랄리구라스, 네팔의 국화이다. 2017년 2월 끝자락께, 그리고 3월 들머리, 마르디 히말 베이스 캠프 서쪽(Mardi Himal Base Camp-West; 4,500m)을 향해 오르고 내리며 열흘을 보냈다.

산 아래 지낸 일정 포함 보름 여정이었다. 

20년도 한참 더 전에 인도에서 포카라로 넘어갔던 적이 있고 2014년 11월 ABC(Annapurna Base Camp; Annapurna Sanctuary 4,130m) 트레킹을 포함 달포를 머물렀으니 세 번째 네팔행이다.
 
하지만 내 모든 여행이 그랬듯 두려웠고, 설렜다.
 
‘그가 머무른다면 모욕, 그가 떠난다면 심연’, 
‘들리기를 원하며, 들릴까봐 두려워하며’, 
이언 매큐언의 문장들처럼.

물리적인 거리가 필요할 때가 있다. 

고부간의 갈등을 그리 푼 예도 보았고, 헤어진 연인의 늪에서 그렇게 빠져나오는 것도 보았다. 나이 스물 아니어도 떠나야겠단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실 ‘스물’은 생의 곳곳에 복병처럼 웅크리고 있으니까. 

<<사진 = 등정주의가 아닌 등로주의자였던 박영석 대장이 그 일행들과 이 남벽에서 새 루터를 개척하다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을 기리는 돌무덤이 ABC 로지 뒤편, 이 사진의 왼편에 있다. 아침을 여는 1봉을 보러 들어온 무리들이 떠난 자리에서 힘껏 그들의 이름을 불렀나니.>>
봄이 오고 있었고, 사람을 보냈고, 일은 엉켰고, 생활에 균열이 왔고, 생이 흔들렸다. 
가지 못할 이유가 일과 시간과 돈이라면 가야할 까닭은 사흘 밤낮을 써도 모자랄 판이었다. 도망가기에 여행만한 게 없고, 거리두기에 여행만한 게 없으며, 생으로부터 시간을 벌기에 또한 여행만한 게 없다. 

하기야 지극하게 간절한 무엇이 아니라한들 못 떠날 까닭이 또 어디 있겠는가. 
지금 못하는 건 나중에도 못하리니 바로 지금 갈 것!

아이가 고3이 되면서 딱 하나 한 부탁이 있었다. 
“어머니, 한국에만 계셔 주셔요!”

그걸 못할까, 날마다 도시락을 싸라는 것도 아니고, 실어 나르라는 것도 아니고. 내 여행은 일을 겸한 여행, 대개 그랬다. 대입과정을 끝내자마자 심지어 과외알바며 장학금까지 챙긴 아이는 기다려준 어미의 여행경비를 보탰고, 덕분에 온전히 여행이 목적인, 내게는 드문 여행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마을을 떠나신 적이 없었다. 칸디아나 카네아에도 가보신 적이 없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왜 그 먼 곳까지 가?
이곳을 지나가는 칸디아나 카네아 사람들이 있어서 칸디아나 카네아가 내게 오는 셈인데, 내 뭣 하러 거기까지 가?”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가운데서)

크레타섬에서 나그네란 나그네는 다 불러들여 밥을 먹이고 잠을 재우던 조르바의 외조부, 밤이면 그는 안락의자에 편히 앉아 장죽을 문 채 귀를 기울이며 나그네를 따라 여행길로 나섰다. 

누구는 0.75평 감옥에서도 우주를 유영하고
누구는 세상을 다 돌아다녀도 마음은 창살이기도 하더라.
사는 일이 시라 시를 더는 쓸 일이 없고
내 깃든 산마을이 우주라 사는 곳이 여행지이면서도
자유로운 한편 바닥모를 늪지대에 어느 날은 서 있기도 했다.
나는 은둔자이고 싶었고, 한편 사람들 사이에서 잔을 높게 들고도 싶었다.
사는 일은 삶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는 일,
허공에서 그만 떨어져 내릴 것 같은 줄 위에서 평형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겨울 끝이었다.

산에 살아도 산이 좋고, 산에 살아도 산이 그립다. 
출발 이틀 전에야 마르디 히말을 들었고, 결정했다, 가리라.
주로 여행정보를 얻는 ‘론리 플래닛(여전히 2012년판) 네팔’만 해도 들어있지 않던 곳,
그리 알려져 있지 않아 정보가 적은 반면 그래서 정말 ‘낯설’ 수 있으리.
가지고 있는 ‘어라운드 안나푸르나’지도에서 마르디 히말 BC는 4,500m,
‘마르디 히말 트렉’지도에서는 4,250m.
어느 게 더 정확한지 권위 있는 어디에 물어볼 수도 있었으련만
내겐 4천이든 5천이든 쉬 발길이 닿을 수 있도록 열린 곳이면 되었다.

안나푸르나의 마르디 히말에서도 마당엔 빨래가 널려 있었다...

(계속)

옥영경(자유학교 물꼬 교장)

풍경 더 보기

<<사진 = 푼힐전망대에서 본, 새벽을 여는 안나푸르나 산군:
다울라기리-닐기리-안나푸르나 남봉-히운출리-그리고 물고기 꼬리 모양의 마차푸차레>>


<<사진 = 푼힐전망대에서 본, 아침빛이 닿기 시작하는 안나푸르나 남봉-히운출리- 그리고 물고기 꼬리 모양의 마차푸차레>>


<<사진 = 안나푸르나 1봉. 안나푸르나 산군 가운데 이 봉우리는 산군 깊숙이 들어와 있어 ABC(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서만 볼 수 있다. 등정주의가 아닌 등로주의자였던 박영석 대장이 그 일행들과 이 남벽에서 새 루터를 개척하다 돌아오지 못했고, ABC 로지 뒤편에서 그들을 기리는 돌무덤이 나부끼는 룽따(바람의 말:馬, 적힌 법문이 널리 퍼지라는 의미의 깃발)로 말을 붙인다.>>

<<사진 = 아침이 오는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서 ‘안나푸르나 1봉’을 등지고 바라보는 마차푸차레. 오른쪽으로 ‘안나푸르나 남봉’. 안나푸르나 1봉은 안나푸르나 산군 깊숙이 들어와 있어 ABC(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서만 볼 수 있다.>>
<<사진 = 푼힐전망대에서 보고 있는, 아침을 여는 안나푸르나 산군: 다울라기리-닐기리-안나푸르나 남봉-히운출리>>

<<사진 = 푼힐전망대에서 보고 있는, 아침이 열리는 안나푸르나 산군: 가장 높이 보이는 봉우리가 `안나푸르나 남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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