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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군 포로로 끌려갔다 세계를 떠돈 두 여인의 기구한 삶

입력 : 2017-03-31 22:24:44 수정 : 2017-03-31 22: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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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엄니’ 수향과 ‘기생 딸’ 정현은 임진년 동래성 전투에서 왜군에 끌려갔다. 수향은 탈출을 시도하지만 다시 잡혀 노예로 팔리게 되고, 마카오와 인도 고아, 리스본을 거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이르게 된다. 정현은 ‘기생의 사랑은 죽음 같은 단 한 번의 사랑’이라는 엄니 수향의 말을 무시하고 포로로 끌려온 이근과 사랑에 빠진다. 사랑 때문에 수향과 헤어지게 된 정현은 이근과 사이에 낳은 아들마저 잃게 된다.

정현은 13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조선은 ‘화냥년’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가부장 체제를 복구하는 데 혈안이 된 양반들에게 정현은 역적이나 다름없었다. 사실상 조선에서 쫓겨난 정현은 수향을 찾기 위해 일본으로 향하지만 풍랑을 만나고, 포르투갈 상선 선장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조국에서 쫓겨나고 수향마저 잃은 정현에게 선장은 ‘세뇨리따 꼬레아’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조선 여인의 치욕과 아픔을 담은 역사소설 ‘화냥년’을 펴냈던 유하령 작가가 4년 만에 돌아왔다. 신작 ‘세뇨리따 꼬레아’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세계 곳곳을 떠돌게 된 두 기생의 기구한 인생 이야기다.

양반사회의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보통의 기생인 수향과 달리 정현은 사랑을 놓지 않는다. 전쟁이 끝나고 유교 질서가 강해진 조선을 떠나는 정현은 사랑에 자신을 맡기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주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포로는 약 1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기록은 정확하지 못하다. 다만 일본 학계에 보고된 조선 포로 여인에 대한 기록이 한 건 있을 뿐이다. 임진년에 끌려가 나가사키와 마카오에서 노예로 고초를 겪은 뒤 일본인에게 출가했다는 짧은 기록이다. 유 작가는 사료를 바탕으로 세계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세뇨리따 꼬레아’의 이야기를 축조했다. 특별한 여인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누구라도 겪을 수 있었던 시대상황의 반영인 셈이다.

유 작가는 “전쟁의 진리는 생과 사를 넘나들었던 수많은 포로들, 노예가 된 포로들, 쓰러져 간 의병(義兵)들 속에 있다”며 “이들은 붓 없이 삶에서 죽음으로 건너갔다”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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