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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선거철만 되면 '안보 지킴이'로 변신하는 정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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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04 12:00:00 수정 : 2017-03-04 11: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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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일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당 관계자들이 경기 파주 1사단 수색대를 방문해 군 장비들을 살펴보고 있다. 파주=국회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임박하면서 조기 대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정치권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여야 대선 주자들은 주한미군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비롯한 주요 이슈에 대해 앞다투어 메시지를 내놓는 등 얼굴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 절차가 아직 남아있어 각 정당의 대통령 선거 경선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지만 주자들은 경선과 본선을 염두에 두고 다른 후보와의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국민들에게는 연설보다 한 장의 사진, 몇 초 동안 재생되는 동영상이 때로는 더 큰 파급효과를 거둘 수 있는 만큼 각 후보 캠프에서는 경선을 앞두고 후보가 주인공인 이벤트를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다. 때문에 각 후보 진영에서는 토크 콘서트와 현장 방문 및 체험, 핵심 공약 구체화를 위한 공개 세미나 등 다양한 이벤트를 선보인다. 인재 영입 역시 파급효과가 가장 큰 시점을 골라 발표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지난해12월 6일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실에서 변재선(왼쪽) 국군 사이버사령부 사령관이 이철우 정보위원장(가운데) 등에게 국방망 해킹 관련 보고 및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안보 분야는 국회의원 선거 등 전국 단위 선거에서 늘 빠지지 않는 이벤트 단골손님이다. 남북 대치 국면에서 북한의 도발에 단호히 대응할 수 있는 지도자를 바라는 국민들의 여망을 의식한 행보다.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특성상 자녀들이 2년 동안 생활하는 군대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의식한 것이다. 때문에 정치권 인사들은 선거철마다 군복을 입고 군부대를 방문하는 ‘밀리터리 패션쇼’를 펼친다.

◆ “내가 대한민국 안보 지킴이”…정치권 경쟁 치열

대선에서 안보 이슈는 상수(常數)다. 남북 분단 속에서 대선주자의 안보관과 북한에 대한 태도는 중요한 평가지표다. 때문에 대선주자들은 ‘안보에 유능한 후보’의 이미지를 극대화해 중도층 표심을 끌어안으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경우가 많다.

대선주자 중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 1월 25일 강원도 소재 육군 102기갑여단을 방문했다. 부대를 찾은 문 전 대표는 병사들의 생활관을 둘러보고 군 생활의 애로점을 듣고 간부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장병들을 격려했다. 문 전 대표는 “제가 국회에 있을 때 국방위원을 했고 당 대표를 할 때도 안보 행보로 꽤 많은 부대를 다녔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해군 2함대를 방문해 해군대비태세를 점검하고 있다.

마침 이날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도 당 지도부와 함께 합동참모본부를 방문해 문 전 대표와 국방 분야를 놓고 신경전을 펼쳤다. 합참을 방문한 직후 안 전 대표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국방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문 전 대표가 지난 1월 제기한 군 복무기간 단축 문제를 거론하며 “선거 때만 되면 군 복무 단축에 대한 주장이 나오는 것에 대한 진의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이에 문 전 대표는 “원래 국방개혁안에 군 복무 기간을 18개월까지 단계적으로 단축하기로 설계되어 있는데 이명박 정부 때 21개월로 멈춘 것”이라며 18개월까지 단축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바른정당 남경필(왼쪽) 경기도지사와 유승민(오른쪽) 의원이 2월13일 국회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기회를 양보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바른정당 소속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2월 2일 육군 28사단을 방문해 자신이 주장한 모병제 전환의 필요성을 재차 언급하면서 병사월급을 2022년까지 최저임금의 50% 수준인 94만원으로 인상해 군 복무 기간 2000만원을 저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재명 성남시장은 2월 13일 패트리엇 미사일을 운용하는 수도권 남부지역에 있는 공군 제3방공유도탄여단 예하 부대를 방문해 “첨단 무기를 운용하는 요원 10만명을 모병하면 현재 군대 63만명을 50만명으로 줄이는 정부계획을 고려할 때 징집병 20만명이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안보 경쟁 속에서 지난달 12일 북한이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북극성 2를 발사하고 이틀 후에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되자 범여권을 중심으로 ‘안보 이슈 띄우기’가 시작됐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지난달 15일 “사드 2~3개 포대를 국방예산으로 도입할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고 말했고 같은당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불확실성의 첫째는 북한 정권의 예측불가능한 도발성으로, 정부는 국가안보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잘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유한국당 이인제 전 최고위원도 트위터에 “김정남의 피살은 평양이 그만큼 초조해 있다는 반증이며, 권력은 종말에 이르러 가장 포악해진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야권은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며 북풍(北風)을 경계했다.

◆ 軍 “정치인 방문 NO”…일각선 “안보 조언 포기”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인들의 군부대 방문이 잇따르자 국방부는 지난달 각 정당에 정치인의 군부대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정치인들의 잦은 군부대 방문이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정치인의 부대방문을 준비하는 데 장병들이 동원되면 대비태세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국방부는 향후 대선후보로 정식 선출된 정치인도 군부대 방문 자제를 요청할지에 대해선 입장을 확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일 3.1절을 맞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기념행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역사어린이합창단 어린이들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이재문기자

하지만 안보를 잘 알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우리나라의 안보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기회를 정치적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막는다는 것은 군에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6년 9월 박정희 정권은 당시 야당인 민중당 당수 박순천 여사가 남베트남을 방문해 한국군의 작전 상황 등을 살필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방문을 마친 박순천 여사는 주월한국군의 군사적 성과를 찬양하고 파병장병의 봉급에 대한 면세 혜택이 이뤄지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주월한국군의 실상을 야당에 보여줌으로서 박정희 정권은 파병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잠재우고 야권의 협력을 얻어내 결과적으로 군에 긍정적 효과를 미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서는 전현직 장군들이 안보분야에서 럭비공 튀듯 좌충우돌하는 백악관을 안정화시키는 작업을 주도한다. 해병대 장군 출신인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존 켈리 국토안보부 장관과 현역 해병대 장군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과 육군 중장으로서 국가안보보좌관이 된 허버트 맥매스터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트럼프의 반(反)이민행정명령과 고문 부활 시도 등을 수습하면서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 전략가 등 대외정책 경험이 없는 측근들의 강경 행보를 견제하고 있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원칙으로 삼았던 미국에서 장군들이 외교안보 경험이 없는 민간 지도부의 막무가내 정책을 제어하는 ‘역전’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군 당국이 정치인들의 잦은 군부대 방문과 그로 인한 정치적 중립 훼손을 우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난 대선 당시 인터넷상에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비난하는 댓글을 올렸던 국군사이버사령부 정치댓글 사건의 악몽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탄핵심판이 인용될 경우 조기 대선이 실시되면 새로 집권할 정치세력은 정책을 제대로 가다듬을 시간적 여유 없이 곧바로 국정운영에 들어가야 한다. 사드 배치를 놓고 중국의 압박이 거세고,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군 경험이 없는 정치인들의 안보 의식을 제고하고 군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중요하다.

군 당국은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으면 군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지도자들의 뜻을 따르면 문민통제 원칙을 존중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기계적인 해석으로 군과 정치권, 시민사회를 서로 분리하는 결과만 초래한다. 정치권, 시민사회가 군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설익은 정책을 남발한다면 국가안보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선거로 집권한 민간 정치지도자들이 군의 현실을 무시한 채 공약대로 급속한 군 규모 축소와 모병제 시행을 실천에 옮긴다면 군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정치권을 상대로 끈질기게 설득하면 막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적 혼란은 불가피하며 정책의 연속성도 훼손된다. 정치권에서 제기하는 안보 관련 이슈에 대해 그 실상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조용히’ 입장을 피력해 정치지도자들이 국가안보정책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반발짝 앞선’ 정략이 필요한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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