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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정의할 수 없는 神이고 삶”

입력 : 2017-03-02 20:48:13 수정 : 2017-03-02 20: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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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사랑의 생애’ 펴낸 소설가 이승우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홀려서 사랑하기로 작정한 사람의 내부에서 생을 시작한다.”

이승우(58)의 새 장편소설 ‘사랑의 생애’(예담)는 사랑은 그 자체로 독립된 어떤 존재라고 규정해 놓고 출발한다. 사랑을 사람이 주체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그 사람은 사랑이 거처하는 숙주일 따름이라는 언설이다. 그러니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사람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라는 논리다. 
5년 만에 새 장편소설을 펴낸 소설가 이승우.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별스러운 사랑 이야기를 지어내는 대신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 경험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보고서를 쓴 것”이라고 작의를 밝혔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그는 우리가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꾸어지는 것을 겪을 뿐이듯 사랑 또한 덮쳐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장편소설은 흥미로운 사건과 반전이 있는 게 아니라 세 남녀의 평범한 사랑을 시종 설명하고 분석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랑의 속성과 본질을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선희는 학교 선배인 형배를 좋아해서 어느 날 사랑을 고백했다. 형배는 자신이 사랑할 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노라는 명분으로 그 고백을 뿌리쳤다. 3년이 지난 후 직장 동료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다시 선희를 만났는데 하필 그녀의 하트 모양 귀가 눈에 밟히고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뒤늦게 이번에는 형배가 선희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녀는 뜨악하고 불편할 따름이다. 작가는 형배가 선희를 뿌리치는 명분으로 제시했던 ‘사랑할 만한 자격’을 이렇게 분석한다.

“사랑할 만한 자격을 갖춰서가 아니라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올 때 당신은 불가피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자격을 갖추고 있어서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와서 당신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 은총이나 구원이 그런 것처럼 사랑은 자격의 문제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사랑이 뒤늦게 제멋대로 형배를 방문한 셈이다. 사랑이 독립된 어떤 존재라고 전제했듯이 형배는, 아니 형배라는 숙주에 깃든 사랑은 쉬 포기하지 않는다. 이미 선희에게는 영석이라는 남자가 있다. 마르고 무뚝뚝하고 연약하고 나이도 많은 이 남자를 선희도 사랑하리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이 남자 영석은 네 살 때 부모를 모두 잃고 이집 저집을 전전하며 눈칫밥을 먹으며 살아온 인생이다. 사랑을 잘 믿지도 못하고 사랑받을 만한 매력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못하는 닫힌 남자다. 기적처럼 영석과 선희에게 사랑이 동시에 방문한다. 나이든 남자인 영석은 응석을 부리고 나이 어린 여자인 선희는 그의 응석을 받아준다. 이 대목에서도 작가는 묻고 답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하는, 사랑이라는 기적을 경험하게 하는 초자연적 존재의 이름은 무엇일까. 이 기적은 누구에 의해 행해지는가. 누가 사랑이라는 기적을 일으키는가.”

“사람들을 사랑하게 하는 것, ‘사랑하기’라는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랑이다. 이 기적의 주체는 사랑이다. 연인들은 사랑이 기적을 행하는 장소이다. 사랑이 사랑하게 한다. 이는 마치 존재가 존재하게 하는 것과 같다.”

상처받기 쉬운 ‘고아의 사랑’을 하는 영석은 선희가 형배와 밤늦게 합석한 장면을 목도하고 불같은 질투에 빠진다. 형배는 선희의 마음인 것처럼 거짓말로 영석의 자격지심을 부추겨서 두 사람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간다. 형배의 질투가 영석의 질투를 부추겼고, 질투는 결투로 이어지지 못하지만 의외의 결말을 맺는다. 작가는 이 대목에서 “질투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그가 느끼는 약점의 크기”라고 조언한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수시로 밑줄을 긋게 된다. 과거의 사랑을 복기하거나 사랑의 예감에 설레는 이들 모두 고개를 끄덕거리며 작가가 설파하는 사랑을 따라가게 만드는 아포리즘이다. 

이승우 소설은 유럽에서 특히 각광을 받는 편이다. 신학대학을 나온 그의 소설 편편에 깔린 기독교적 세계관이 서구인들에게 익숙한 바탕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번 소설에서도 기실 가벼운 연애론 같지만 사랑이라는 ‘신’에 대한 성찰이 엿보인다. ‘사랑’이라는 존재와 ‘신’은 그에게 동격인 것 같다. 사도행전 속 제자들이 병을 고치는 기적은 ‘성령’이 시킨 것이요, 연인들이 만들어내는 ‘기적’ 또한 사랑이 들어가서 행하는 일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어떻게 해도 정의되지 않는 것이 신이고 삶이고 사랑”이라고 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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