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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청춘에 희망을!] "난 안되는 걸까" … '미생'들의 '완생'은 정규직이었다

입력 : 2017-02-09 19:58:45 수정 : 2017-02-09 21:5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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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현실 속 ‘완생’ 꿈꾸는 ‘미생’/작년 전체 근로자의 32% 달해/정규직 월 급여 279만원 받을 때/비정규직 149만원 받아 격차 커/국민 연금 등 가입률도 절반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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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이냐 ‘완생’이냐. 바둑알 놓는 기사들이나 쓰는 말이 이제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구별하는 뜻으로 더 보편화했다. 일자리 감소와 이에 따른 청년고용 불안이 한국 사회의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하면서다. 학사모를 쓰거나, 직업 교육을 받은 뒤 사회에 발을 내디딘 청년들을 받아주는 회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어렵디어렵게 찾은 일자리 상당수가 비정규직인 경우도 많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 더 많은 직업과 직장이 사라질 위기다. 기업과 정부가 정규직 청년고용 확대와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확산을 위해 팔을 걷어붙여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통령 탄핵에 따른 국가 리더십 붕괴, 이로 인한 정치·사회 불안, 미국·중국 등 주요 교역 상대국과의 보호무역, 안보 마찰이 좀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정규직 전환과 확산을 위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치열한 삶을 사는 젊은이들이 아직 많은 게 대견할 뿐이다. 청년은 우리의 미래다. 그래서 한국의 미래는 밝다. 2017년 대한민국 청년 비정규직의 엄혹한 현실과, 이를 뛰어넘어 보다 나은 일자리를 찾으려는 이들의 꿈을 들여다본다.


근로 시간은 월등히 많지만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 국민연금 등 가입률도 정규직의 절반 이하. 우리 주변의 근로자 10명 중 3명 이상은 이 같은 ‘비정규직’의 억울하지만 냉정한 현실을 묵묵히 견디고 있다.

심각한 것은 비정규직이 날로 늘고 있다는 데 있다. 8일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는 전체 임금근로자의 32.8%다. 2014년 32.4%, 2015년 32.5%에서 계속 증가 중이다. 또 한국고용정보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9월 신규 취업자 중 정규직 비율은 69.8%였는데, 12월엔 67.8%로 뚝 떨어졌다.

나이가 어릴수록, 여성일수록 비정규직이 많다는 특징도 드러난다. 지난해 15∼19세 비정규직 비율은 75.5%로 전체 연령층 중 가장 높았으며, 20∼29세 비율도 32.0%로 30∼39세 21.1%, 40∼49세 26.1%보다 월등했다. 또 전체 임금근로자 중 남성 비정규직은 26.4%인 데 비해 여성은 41.0%나 됐다.


김모(31·여)씨의 사례도 그렇다. 그는 서울 소재 사립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했지만 계속 떨어져 지금은 고향인 경남의 소도시로 돌아가 사립 고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 중이다. 첫 학교와는 1년 동안 계약해 일했고, 지금 두 번째 학교에서 3년째 근무하고 있다.

김씨는 갓 대학을 졸업한 20대 때 ‘잠시만 버티자’고 시작한 기간제가 계속되면서 정교사는커녕, 이제 계약이 연장되느냐 마느냐가 관건이 됐다. 김씨는 “최근 비슷한 또래 기간제 교사가 재계약이 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충격이 컸다. 일하면서도 임용고시를 준비 중인데 이젠 일도 바쁘고 될지 안 될지 확신도 없다. 왜 교육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는지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비정규직의 ‘자괴감’은 정규직과 임금과 근로조건 등에서 겪어야 하는 여러 차별 탓이 크다. 2016년 8월 기준 통계청 통계를 보면 정규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279만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3.7% 올랐는데, 비정규직은 149만원으로 1.8% 증가하는 데 그쳤다. 노동법에서 정한 주 40시간 근무 실시 비율은 정규직이 72.5%인데, 비정규직은 51.0%다.

평생 직장을 갖지도 못했는데 사회안전망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비정규직 임금근로자의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고용보험 직장가입자 비율은 각각 36.3%와 44.8%, 42.8%로 정규직 각각 82.9%, 86.2%, 84.1%에 턱없이 못미쳤다. 비정규직 근로자 절반 이상이 회사에서 잘리면 가장 기본적인 공적 보험 혜택에서도 소외되는 것이다.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면서 더욱 정규직이 되려는 절박감을 느낀 경우도 있다. 정모(27)씨는 지난해 말까지 1년 가까이 경남 창원의 한 자동차 부품제조 공장에서 일하다 그만뒀다. 지역 전문대학을 졸업한 뒤 가까스로 교수의 소개로 들어가게 된 업체였다. 빠르면 1년 안에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교수의 말을 믿고, 꺼림칙했지만 ‘비정규직’이라는 딱지를 감수했다. 

말이 좋아 비정규직이지 3개월마다 계약서를 새로 쓰는 초단기 계약직이었다. 첫 출근 때 사장은 “여기 직원 모두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일하라”고 조언했지만, 가족들 사이에도 엄연한 ‘신분’이 존재했다. 직원들이 정규직, 장기계약직, 초단기계약직으로 자연스레 나뉘었다. 분기별로 지급되는 작업복은 정규직들에겐 공짜였지만, 정씨는 얼마되지 않는 월급에서 2만원씩 떼여야 했다. 연말 성과급이 나오는 시기가 되면 자연스레 정씨 같은 계약직들 중 많은 경우가 잘린다고 했다. 정씨는 연말이 다가오자 회사를 그만뒀다. 지금 정씨는 정규직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정씨는 “그 공장에서 1년간 배운 건 ‘정말 정규직이 아니면 안 되는구나’하는 절박함이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확대가 연공서열 위주의 한국 기업 생태계에서 부족한 노동유연성 확보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굴뚝산업 위주의 전통적인 노동이 아니라, 지식기반 경제체제의 유연한 경영전략과 노동시장 활력 제고를 위해서는 비정규직이 일정부분 존재해야 한다는 논리다. 다만, 이 경우 이들이 직장을 잃을 경우를 대비한 완벽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서울시청 로비에서 열린 ``2017 뉴딜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관련 상담을 받고 있다. 뉴딜일자리는 청년 등에게 직업 경험과 전문기술·직무능력을 갖추도록 공공 일자리를 제공하고 민간일자리 취업을 돕는 서울시 공공일자리 사업이다.
이제원기자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근본 대책은 청년들이 선호하는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창출하는 것이지만, 오늘과 같은 경기 후퇴기에는 비정규직 같은 취약 근로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이 시기에 고통이 집중되는 비정규직을 위한 고용유지 장려금, 근로장려세제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기천·김승환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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