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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플러스] 바나나 공화국의 박근혜와 트럼프…거짓말은 통치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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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04 17:05:15 수정 : 2017-02-04 1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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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거의 모든 대통령은 국민 앞에서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정규재 TV’와 인터뷰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한마디로 거짓말로 쌓아올린 커다란 산이자 가공의 산”이라고 했다. 그러나 최근 특검의 수사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새로운 증언이 나오고, 사실 관계가 속속 드러나 박 대통령이 ‘커다란 산’ 같은 거짓말을 쌓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문화체육부장관 등 등 최순실 사건에 연루된 거의 모든 혐의자들이 국회 국정조사 특위 등에서 위증(거짓말) 경연을 벌였다. 
박근혜 대통령. 정규재 tv 캡처

최순실 사건을 통해 한국은 ‘바나나 공화국’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바나나 공화국은 ‘마지막 잎새’로 유명한 작가 오 헨리가 1904년에 발표한 ‘양배추와 왕들’에 등장하는 가상 국가이다. 바나나 공화국은 겉이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썩어 있는 바나나 같은 나라이다. 부패로 인한 구제불능 상태의 국가가 바나나 공화국이다.

한국만이 바나나 공화국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미국이 바나나 공화국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고 미국 언론이 떠들썩하게 보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부동산 개발을 하면서 거액의 부도를 낸 뒤 이를 이용해 수년 동안 개인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폭로했었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역대 대통령의 관행이었던 재산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트럼프는 ‘친족등용금지법’에도 아랑곳하지 않은채 올해 36세의 사위 제러드 쿠슈너를 백악관 선임 고문으로 임명하고, 자신의 백악관 집무실 옆방을 내주었다. 또 트럼프 부동산 왕국의 비즈니스는 에릭 트럼프 등 자녀들에게 맡겨 ‘이해 상충’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이란 등 무슬림 7개국 국민의 입국을 거부하는 반 이민 행정명령으로 미국과 세계에서 거센 반발이 일어나자 미국 언론은 바나나 공화국의 전형적인 모습이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AT)는 “미국이 지도자의 변덕으로 운영되는 바나나 공화국이 됐다”고 지적했고, CNBC 방송도 “미국이 이제 바나나 공화국처럼 보인다”고 보도했다. 보스턴 글로브, 베니티페어 등도 일제히 ‘트럼프의 바나나 공화국 시대’가 개막됐다고 전했다.

트럼프 정부는 출범 2주일 만에 신뢰의 위기에 직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뻔한 거짓말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취임식 참석자가 많아야 25만 명 가량(미국 언론 추정치)이었으나 100∼150만 명이 참관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트럼프는 180만 명가량이 참석했다는 평가를 받은 버락 오바마 전대통령 취임식보다 참석자가 더 많았다고 우기고 있다. 이는 박대통령이 ‘태극기 집회’ 참가자가 ‘촛불 집회’ 참가자보다 2배가 많았다고 주장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트럼프는 또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전체 투표 숫자에서 290만 표 가량이 뒤진 점을 의식해 수백 만 명이 부정 투표를 했다고 강변하고 있다.

뉴질랜드 빅토리아대의 제비어 마퀘즈 교수는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을 통해 독재자나 지도자의 거짓말이 유효한 통치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마퀘즈 교수는 “서양 정치사에서 정치 지도자의 거짓말은 정치 시스템을 강화하고, 국민의 공통된 가치를 고양하며 추종자의 충성심을 다지는 기능을 한다”고 지적했다. 군주론을 저술한 마키아벨리도 “왕자가 필요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거짓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면서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고 주장하다가 하야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이란­-콘트라 사건을 몰랐다고 거짓말을 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관계를 끝까지 부인하다 위증 혐의로 탄핵 심판대에 올랐다.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미국 정치에서 거짓말은 정당과 시대를 초월하지만 트럼프의 거짓말은 횟수, 빈도, 즉흥성, 부적절성 등의 측면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폴리티코는 “폴리티팩트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가 대선 기간 중 내놓은 성명의 70%가 거짓말이었고, 이는 클린턴 후보의 26%에 비해 훨씬 그 비율이 높았다”고 전했다. 이 전문지는 “트럼프의 거짓말은 전략이 아니라 몸에 밴 습관”이라고 주장했다. 폴리티코는 “미국이 이제 대통령의 말을 믿을 수 없는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고 강조했다.

하버드대의 심리학자 다니엘 길버트 교수는 정치 지도자의 거짓말이 일반 국민에 미치는 폐해를 20년 전부터 경고해 왔다. 길버트 교수는 “정치 지도자가 한 두 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거짓말을 하면 그것을 듣는 국민의 뇌에 과부하가 걸려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검증 과정을 생략하고, 거짓말의 일부를 사실로 수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국민이 거짓말을 계속 듣다 보면 ‘가공의 진실’(illusory truth)이라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길버트 교수가 강조했다.

정치에서 거짓말은 특별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캘리포니아대 레다 코스미데스 교수는 “선거 캠페인에서는 정책이 아니라 분노가 관건”이라며 “정치인이 도덕적인 분노를 유도하는 데 성공하면 사실 여부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특히 정치인의 거짓말이 일반 국민의 정치적인 정체성과 결합하면 그 거짓말을 정정하는 작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미국 학자들이 설명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한국의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 참가자의 사실 인식이 정반대로 나타나고, 이 간극을 좁히기 어려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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