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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의 '책읽기 세상읽기'] "지속적인 육체적 고통 앞에서 사회적 습관과 본능이 침묵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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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26 17:49:52 수정 : 2016-12-26 17:5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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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것이 인간인가’ - 야만의 기억
‘이것이 인간인가’는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의 기록이다. 이탈리아 토리노 출신의 유대인 화학자인 레비는 제2차 세계대전 말 파시즘에 저항하는 지하운동을 하다가 체포돼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다. 이탈리아로 돌아온 뒤 수용소에서 겪은 일들에 관해 조금도 과장하지 않고 차분하게 썼다. 책 제목은 그가 수용소에서 수없이 되뇌었을 질문이다.

레비는 책 앞부분에서 이런 말을 한다. “수용소는 엄밀한 사유를 거쳐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 이 세상에 대한 인식의 산물이다. 이 인식이 존재하는 한 그 결과들은 우리를 위협한다. 죽음의 수용소에 관한 이야기는 모든 이들에게 불길한 경종으로 이해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 책은 수용소 시절부터 구상되고 계획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먼저 내적 해방을 위해 씌어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아우슈비츠의 실상을 세상을 알리겠다는 굳은 의지가 혹독한 환경에서 그의 삶을 이어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문학평론가 도정일은 산문집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에서 “인간이 인간이기를 망각하고 짐승처럼 살아야 한다면, 만약 그것이 인간이라면, 그 인간에게 희망은 없다. 그러므로 이 망각의 조건과 맞서기 위해 레비가 선택한 것은 반대 전략, 곧 ‘기억하기’이다”라고 했다. 이에 관한 레비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가 말을 해도 그들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설사 들어준다 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이름마저 빼앗아갈 것이다. 우리가 만일 그 이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면 우리는 우리 내부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찾아내야만 할 터였다. 그 이름 뒤에 우리의 무엇인가가, 우리였던 존재의 무엇인가가 남아 있게 할 수 있는 힘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는 더러운 세면대의 흙탕물밖에 없더라도 그것으로 몸을 씻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아직 생명력이 남아 있다는 증거로서 무척 중요하고 도덕이 살아있게 하는 수단으로써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용소는 우리를 동물로 격하시키는 거대한 장치이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동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곳에서도 살아남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똑똑히 목격하기 위해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는 최소한 문명의 골격, 골조, 틀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레비는 수용소의 유대인들이 다리에 쇠사슬을 매단 죄수들처럼 발을 끌면서 구부정한 자세로 걷는 데 대해, 신발이 ‘고문 도구’여서 발이 짓무르고 치명적으로 감염되기에 그렇게 걷게 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바르게 서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리는 나막신을 질질 끌지 말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걸어야 한다. 그것은 프로이센의 규율을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는 단테의 ‘신곡’ 가운데 지옥편을 한 줄 한 줄 암송하면서 야만의 일상을 견딘다. “수용소 자체가 배고픔이다. 우리 자신이 배고픔, 살아 있는 배고픔이다” “궁핍과 지속적인 육체적 고통 앞에서 수많은 사회적 습관과 본능이 침묵에 빠진다”고 한 그런 일상을 말이다.

그는 독일어 ‘하임베(Heimweh·향수병)’에 대해 “‘집을 향한 아픔’이라는 뜻의 아름다운 단어”라고 했지만 ‘다른 아픔’이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다. 바깥 세상에 대한 기억들은 우리의 꿈을, 깨어 있는 시간을 가득 채운다. 놀랍게도 우리가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떠오르는 모든 기억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선명하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레비는 이 책 부록에서 ‘평범한’ 독일인들의 침묵에 대해 고발한다. “이런 고의적인 태만함 때문에 그들이 유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괴물들은 존재하지만 그 수는 너무 적어서 우리에게 별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일반적인 사람들, 아무런 의문 없이 믿고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기술자들이 훨씬 더 위험하다.” 미국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강조한 ‘악의 평범성’을 말하는 것이다. 악은 그러한 평범성 때문에 쉽게 근절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국정농단 사태로 대통령 탄핵소추까지 벌어진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 책을 자주 떠올렸다. 이 책을 낸 출판사도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이 책과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순Siri 도서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묶어서 선보였는데 독자들의 호응이 크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지난 수년 간 우리나라는 야만이 판치던 곳이었다. 국정농단이 자행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짐작은 어렴풋이 했지만, 이 정도로 대놓고 했으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외국에 있는 지인들은 낯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현 주소를 생각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나라의 품위를 되찾는 것이다. 무엇보다 몸을 똑바로 세우고 걸어야 할 때다. 그래야 국정농단의 실체를 드러내고, 국정농단 주모자들과 그들에 협력해 사익을 챙긴 이들을 처벌하고, 나라의 기틀을 바로 잡는 엄중한 과제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 탄핵심판이 끝난 뒤에도 우리는 이번 사태의 원인과 과정, 결과에 대해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해야 한다. 유대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를 기억하고 세상에 알린 데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러한 기억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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