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는 주민들의 일상을 모두 파괴했다. 피난민들은 고향을 버리고 자유와 생존을 위해 정처없이 떠돌아야 했다. |
◆ 고향도 없고 가족도 없다…이별의 성탄절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 부두에 / 목을 놓아 불러 봤다 찾아를 봤다 /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
6.25 전쟁 기간 대구 오리엔트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최고의 히트곡 가운데 하나인 가수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의 1절은 6.25 전쟁에서 가장 처절한 전투와 생이별의 아픔을 담고 있다. 바로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작전이다.
1950년 10월,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한 유엔군은 38선을 넘어 북진해 평양을 점령하고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진격했다. 한국군 6사단은 북-중 국경인 압록강의 초산을 점령했고, 미 24사단은 신의주 남방까지 진출했다. 북한의 위기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중공군은 10월 말부터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한국군과 유엔군에 공세를 가했다. 한국군과 유엔군은 후방이 차단된 상황에서 위기를 맞았으나, 중공군은 갑자기 공격을 멈추고 청천강 북쪽 적유령산맥으로 이동했다. 중공군이 후퇴하자 유엔군사령관 맥아더 원수는 11월24일 ‘크리스마스 공세’에 돌입했으나 공세 시작 하루만에 중공군의 2차 공세에 부딪혀 큰 손실을 입고 같은달 30일 남쪽으로 무질서하게 후퇴했다.
유엔군과 피난민 철수가 완료되자 미 해군과 공군은 집중 폭격을 통해 부두에 남겨둔 물자를 파괴했다. |
장진호 전투에서 많은 피해를 입은 미 1해병사단을 비롯해 동부전선에서 싸우던 한국군과 유엔군 10만5000여명은 같은해 12월 원산이 함락돼 퇴로가 끊기자 함경남도 흥남으로 집결했다. 공산 치하에서 살기를 거부한 수십만명의 피난민들도 영하 27도의 추위를 무릅쓰고 흥남으로 몰려왔다. 12월 9일 맥아더 원수의 철수 명령이 하달되면서 15일 미 1해병사단 병력과 장비가 흥남부두를 출항한 것을 시작으로 24일 전 군이 철수를 완료했다.
전차상륙함(LST)에 타기 위해 흥남 부두로 모여든 피난민들. |
이 때 미 10군단장 알먼드 장군을 설득해 피난민들을 후송한 현 박사는 휴전 이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대학들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임상병리학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2007년 뉴저지 주 뮬런버그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해병대는 흥남철수작전에서의 공로와 1950년 8월 해병대 문관 시절 미군의 최신 무기인 자동기관총을 공수해 열악한 장비 개선에 힘쓴 공로를 인정해 지난 19일 보국훈장 통일장과 해병대 핵심가치상을 현 박사에게 수여했다. 훈장과 상장은 이날 서울 남대문로 연세재단 세브란스빌딩 앞에서 열린 현 박사 동상 제막식에서 장녀 에스더 현 씨에게 전달됐다. 해병대는 현 박사의 공적을 기려 2002년 ‘명예해병’으로 위촉하고, 그의 해병대 문관 재직 기록 등을 국가보훈처에 제공했다. 보훈처는 현 박사의 공적을 인정해 보국훈장 서훈 결정을 내렸다.
◆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었던 크리스마스 고지
삶과 죽음이 몇 초 만에 엇갈리는 전장에서 크리스마스의 낭만은 설 자리를 잃었다.
1.4 후퇴 이후 6.25 전쟁은 사실상 교착상태에 빠졌다. 여러 차례의 진격과 후퇴를 거듭하면서 유엔군과 중공군은 대규모 공세를 감행할 의지도, 능력도 떨어졌다. 양측은 ‘지는 전쟁은 피하자’는 전략 하에 판문점에서 휴전협상에 돌입한다. 처음에는 몇 주면 휴전협정을 체결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군사분계선 설정과 포로 교환 문제를 놓고 양측은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전선 일대의 고지들을 둘러싸고 치열한 국지전이 벌어졌다. 대표적인 전투가 백마고지 전투, 베티고지 전투 등이다.
원산 인근에 있던 북한군 기차가 유엔군의 공습으로 파괴되고 있다. |
1951년 12월 25일, 1090고지에 중공군이 400여발의 포탄을 집중 발사하면서 전투가 시작됐다. 크리스마스 당일부터 28일까지 중공군 204사단과 한국군 7사단은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중공군은 압도적인 병력 우위를 이용해 고지를 포위하고 야간에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우리 군은 일시적으로 수세에 몰렸으나 날이 밝자 이를 격퇴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면서 겨울을 맞아 하얀 눈으로 뒤덮였던 산은 한국군과 중공군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었다.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캐롤과 축복은 사라지고 총성과 포성, 신음소리가 메아리쳤다. 고지의 주인도 계속 뒤바뀌었다.
공군 장병들이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호국영웅들을 기리고 있다. 공군 제공 |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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