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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김정일 사망 5주기…평화는 가고 ‘핵 공포’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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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17 13:00:00 수정 : 2016-12-17 10:5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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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발사되는 무수단 중거리 탄도미사일. 노동신문
‘폭주기관차’. 2011년 12월17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직후 5년 동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구사한 전략을 이만큼 잘 표현하는 단어는 없다.

17년간 북한을 통치한 김정일 위원장은 두 차례 핵실험을 실시했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5년만에 세 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단행했다. 특히 올해에는 1월과 9월에 각각 핵실험을 실시해 국제사회를 경악케 했다. 김정일 위원장 시절 한 번도 발사하지 않았던 무수단 중거리 탄도미사일(사거리 3000㎞ 이상)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잇따라 쏘아올리며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 결과 한반도는 소련 붕괴 직후 국제사회에서 사라지다시피 했던 ‘핵 공포’의 현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난 5년 동안 김정은 위원장이 공개했던 핵 관련 기술과 탄도미사일들은 하루아침에 나타난 것은 아니다. 아버지인 김정일 위원장은 1980년대부터 탄도미사일에 핵무기를 탑재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왔지만 미국과의 협상과정에서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핵심 기술 공개 시기를 미뤄왔다.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혹만으로 미국의 공격을 받아 처형된 사례를 목격한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는 섣불리 공개했다가 미국의 선제타격을 불러일으켜 체제 붕괴를 초래할 위험은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반면 아들인 김정은 위원장은 아버지와 다르다. “북한은 핵보유국이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지난 2월 발사된 광명성 장거리 미사일. 노동신문

◆ 아버지와 아들이 핵 억제력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는 핵실험은 물론 핵무기를 탑재할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탄도미사일 발사도 신중하게 진행됐다. 김정일 위원장은 국제사회와의 협상이 교착상태에 직면할 경우 장거리 미사일 발사 카드를 사용했다. 1998년 대포동 1호 발사를 시작으로 2006년 대포동 2호, 2009년 은하 2호를 발사하며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위성 발사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 애썼다. 2006~2008년 북한의 평균 미사일 발사 횟수가 3회에 불과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무수단이나 SLBM 등 민간용으로 위장할 수 없는 것들은 시험하지 않되 미국의 정찰위성에는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전략적 모호성’을 발휘해 핵 억제력을 유지했다.

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아버지의 방식에서 벗어나 있다. 진기한 장난감을 손에 넣은 어린이가 주변에 이를 자랑하고 싶은 것처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핵 억제력을 과시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김정일 위원장이 단 한번도 발사하지 않았던 무수단 미사일을 올해 들어 8차례나 쏘아올리고, SLBM 발사시험을 관영 매체에 공개하며, 핵탄두 기폭장치와 로켓 엔진, 대기권 재돌입 시험 등 ICBM 핵심기술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마치 ‘우리는 이 정도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함으로서 핵 억제력을 유지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4년부터 미사일 발사횟수를 급격히 늘리며 도발 행보를 이어왔다. 이 당시에는 개발된 지 수십년이 지난 프로그나 스커드 계열을 주로 발사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무수단과 스커드-ER, SLBM, 노동, 300㎜ 방사포, KN-06 지대공미사일 등 종류가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5월 SLBM 수중사출시험 성공 후 기뻐하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노동신문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의 가장 큰 차이가 드러난다. 아버지는 미국과 ‘밀당’을 지속하며 얻은 시간을 이용해 핵무력을 향상시키고, 협상에서 불리할 때는 외교적 실리를 챙기기 위해 미사일 발사 카드를 사용했다. 6자회담 등을 통해 타협을 하면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을 이완시키고 경제 지원을 받으며 체제 안정을 추구했다. 반면 아들은 다르다. 밀당은 안중에도 없다. 국제사회가 ‘유사 이래 최강의 제재’를 감행해도 핵탄두를 터뜨리고 탄도미사일을 쏜다.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미사일이 떨어져도 개의치 않는다. 마치 손에 잡히는 것은 뭐든 상대를 향해 집어던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핵보유국들이 운영하는 핵 억제력-핵탄두, ICBM, SLBM, 폭격기-를 모두 갖겠다는 야심이 숨어있다. 아들은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갖고 싶어한다. 한미 양국의 정치적 교체기인 올해와 내년까지 핵 억제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실질적인 핵무력을 완성해 ‘동방의 핵 대국’ 지위를 얻고 새로이 출범하는 한미 정부를 상대하겠다는 심산이다.

◆ ‘핵 공포 균형’ 이뤄지면 남은건 ‘벼랑끝 평화’

북한의 야심찬 계획에 제동을 건 것은 바로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다. 공직 경험이 전혀 없는 ‘아웃사이더’로서 다음달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는 트럼프 당선자는 유럽 등 미국의 우방국들은 물론 북한에도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트럼프 당선자는 상대방을 혼란시키기 위해 불확실성을 부추기는 등 비즈니스에서 사용했던 협상기술을 외교적 협상에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북한으로서는 섣불리 행동에 나서기가 부담스럽다. 트럼프의 대북정책이 백지상태인 것도 북한의 행보를 머뭇거리게 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부터 북한이 미사일 발사 등 도발행위에 나서지 않는 것도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한국의 국내 사정도 변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국내 정치 상황이 혼란스러운데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북한으로서는 한국의 정국 변화를 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능한 이른 시기에 미국과 협상을 개시해 체제 안정을 보장받고, 이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전략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이다.
수중에서 발사되는 북한의 SLBM. 노동신문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 핵 억제력을 확실히 구축하면 협상이 늦어지거나 결렬되어도 손해볼 것은 없다. 사거리 1만㎞로 추정되는 KN-14 ICBM과 최대 2000㎞를 비행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SLBM은 핵심 기술의 검증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무수단 미사일 엔진을 여러 개 묶으면 ICBM의 1단 추진체가 완성된다. 무수단과 SLBM 고각 사격으로 검증한 대기권 재진입 기술과 단 분리 기술 등이 결합되면 KN-14를 만드는 것은 시간문제다. 북한이 전력을 쏟으면 10년 안에 KN-14가 호주 앞바다에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SLBM도 고각 사격을 하면 우리나라 후방지역을 공격할 수 있다.

미 본토와 우리나라 후방지역을 각각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북한이 확보하면 한미 군 당국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이를 저지할 대책을 마련할 수 밖에 없다. 경북 성주에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고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를 구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미사일 방어(MD)망에서 보듯 공격무기보다 방어무기를 갖추는 것이 훨씬 더 비싼 것이 현실이다.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 각도를 조금만 바꾸어도 수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일을 무한정 반복할 수는 없다.

북한이 노리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냉전 시절 미국과 러시아처럼 남북이 핵미사일의 위협에 노출된 채 남아있음으로서 전면전 위협을 피하는 것이다. 미국의 핵우산과 북한의 핵무기가 대치하게 되면 한때 제기됐던 대북 선제타격은 불가능하다. 북한이 SLBM 개발에 혈안이 된 것도 유사시 미국의 공격 직후 반격을 꾀하기 위한 ‘제2격 능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제2격 능력을 갖추게 되면 한미 군 당국은 북한에 대한 공격을 쉽게 결심하기 어렵다. 서울 도심에 북한의 핵미사일이 날아올 위험을 감수하면서 대북 선제타격을 강행할 군인은 없다. 결국 핵전쟁 위협이라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평화가 유지되는 역설적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기를 통해 체제 안전을 보장받아 4대 세습을 위한 수령 중심 유일적영도체계 구축 기반을 조성할 수 있다.
북한이 개발중인 KN-14 대륙간탄도미사일. 노동신문

핵무기를 통한 공포가 한반도를 뒤덮게 되면 남은 것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평화뿐이다.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들은 전면전 위협이 낮아졌다고 판단하고 국지도발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인도-파키스탄, 인도-중국이 국경에서 분쟁을 거듭하고 있는 것도 핵무기가 전면전 위협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역시 ‘동방의 핵 대국을 상대로 미제와 남조선이 전면전을 걸어올 배짱은 없다’고 판단하고 휴전선에서 적극적인 군사행동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국지도발을 지속하면서 “한반도의 평화가 위협받고 있으며 정전협정은 수명을 다했다”고 주장하며 평화협정 공세를 취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은 북한이 쥐는 셈이며, 불안정한 평화속에 북한의 도발이 일상화될 수 있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과 함께 살아야하는 날이 올까? 북한의 의도대로 휘둘리는 남북관계를 용인하는 시대가 올까? 예전처럼 북한을 단번에 박살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기 어려운 시대에 접어드는 상황에서 말뿐인 대북 제재만 반복한다면 그 시점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올 수 있다. 탄핵 국면 속에서 외교가 실종된 우리나라의 보고 싶지 않은 자화상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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