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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신분 뛰어넘은 참 예인의 삶, 더 많은 사람에 알리고 싶었어요”

입력 : 2016-12-15 20:39:20 수정 : 2016-12-15 20:3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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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장편 ‘매창’ 펴낸 소설가 최옥정 “거문고야 설워마라/ 나는 너를 버리지 않으마/ 네 곡조 내가 듣고/ 내 울음 네가 들으니/ 이 세상에 너만 한 벗이 어디 있겠느냐”

거문고를 붙들고 그리 길지 않은 한 생을 사랑하고 기다리고 시를 쓰며 살다 간 조선의 여성시인 매창(1573~1610). 그녀는 부안에서 객점을 운영하는 기생이었지만 사대부들과 더불어 문재를 겨루며 수백편의 시를 지었고 지금까지 남겨진 시만 60여 수에 이른다. 황진이나 허난설헌보다 전해지는 시편이 더 많다. 매창의 삶과 사랑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는 다양하게 전해오지만 각기 그 질감이 다른 터에 소설가 최옥정(52)이 최근 새 장편 ‘매창’(예옥)을 펴냈다. ‘거문고를 사랑한 조선의 뮤즈’라는 부제를 달았는데 사랑에만 목매달지 않고 적극적으로 한 생을 풍미하다 간 여인으로 그리는 데 차별점을 두었다. 공들인 문장들이 각별히 돋보이는 작품이다. 

조선시대 부안의 여성시인 매창을 장편소설로 새롭게 그려낸 소설가 최옥정. 그는 “매창은 지고지순한 절개와 사랑으로 흔히 거론되지만 그것 때문에 그녀의 풍부한 삶이 가려진 편”이라며 “그녀는 기생으로서 적극적으로 세상과 대면했던 뛰어난 예인”이라고 말했다.
“거문고 소리는 낮잠 자는 아이에게 부쳐주는 부채바람처럼 부드러워졌다. 대나무 숲을 드나드는 서늘한 바람결과 바람 소리였다. 그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유희경 마음의 여러 갈래를 굽이치며 돌아다녔다. 높은음은 낮은음을 끌어올리고 낮은음은 높은음의 가파른 기를 꺾어 넘실넘실 서로 소리의 길을 터주었다. 옆에서 수작을 거는 듯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가, 들숨과 날숨이 저들끼리 장단을 주고받았다. 장다리꽃 빛깔의 옷소매가 현을 스치는 소리마저 배경음으로 그만이었다.”

높은음과 낮은음이, 들숨과 날숨이 교합을 하듯 수작을 거는 거문고 소리 묘사만으로도 문장의 품격은 능히 짐작할 만하다. 이 거문고 소리를 듣고 있는 유희경(1545~1636)은 매창이 스무 살 적에 부안에서 처음 만나 운우의 정을 쌓았다. 짧게 만나고 길게 기다린 끝에 다시 잠시 만났지만 그걸로 영영 이별이었다. 그리 해도 후일 사람들은 매창이 그만을 위해 절개를 지키며 절절한 사랑의 시를 썼다고 칭송했다. 최옥정은 그리 생각하지만 않는다. 매창은 유희경이 떠난 지 구년 뒤 허균(1159∼1618)을 만나거니와 그는 “하룻밤 풋사랑을 나누기엔 아까운 인물이고, 아까운 재주로 평생 너 같은 여인을 곁에 둔다면 그것은 내 인생의 지복일 것”이라며 “너는 나의 하룻밤 여자가 아니라 심복지우”라고 높이 평가한다.

실제로 허균의 기록에 나오거니와 그이처럼 오만한 당대의 지식인이 함부로 누군가를 높이지 않는데 여인을, 그것도 기생을 그리 평가했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최옥정은 생각했다. 그리하여 유희경을 필두로 김제 현감 이귀, 허균 등을 두루 섭렵하며 남자를 통해 세상을 주체적으로 파악했던 여인으로 매창을 그리려 했다. 그렇다 해도 유희경과의 사랑을 가볍게 치부한 건 아니다. 중간중간에 서로 주고받는 한시를 삽입하며 서로 멀리 떨어져서 그리는 애틋한 정을 거문고의 농현처럼 문장으로 탄주해낸다.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나의 집은 한양에 있어/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볼 수가 없네/ 오동나무에 비 내릴 때마다 애가 끓는구나” “임과 한번 헤어진 뒤로 구름이 막혀 있어/ 나그네 마음 어지러워 잠 못 이루네/ 기러기도 오지 않나 소식마저 끊어지니/ 벽오동 앞에 찬 빗소리 차마 들을 수 없어라”

오동나무에 비 내릴 때마다 애가 끓고, 벽오동 앞 찬 빗소리 차마 들을 수 없다는 남녀의 이심전심이 애틋하다. 유희경은 천민 출신으로 신분을 극복해 벼슬길에 나아간 인물로, 출신 성분이 매창과 비슷했을 뿐 아니라 성정도 비슷하여 서로 끌리지만 합쳐질 수 없는 운명이었다. 고작 이 말밖에 하지 못하는 나를 용서해 달라고 말하는 여린 남자였다. “힘없이 너를 부르듯 부끄러운 마음으로 네게 당부한다. 잠시 슬퍼하되 비탄에 빠져 너를 상하게 하지는 말기 바란다.” 최옥정은 애욕의 대상인 유희경 대신 허균을 등장시켜 영혼의 동지로 만들었다. ‘유희경을 향한 마음이 통절한 간곡함이라면 허균을 향한 마음은 유쾌한 든든함이었다. 허균 앞에서 더 자유로웠고 유희경 앞에서 더 풍요로웠다.’

최옥정은 “매창은 남자에게 이용가치가 있는 여자로 그친 게 아니라 자기 삶을 풍부하게 하기 위한 존재로 남자와 더불어 살아간 존재였고, 온몸으로 슬픔이 육화된 시를 썼던 여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생이라는 신분을 넘어 예인의 삶을 견지한 매창을 더 많은 사람이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놓고 싶었다”면서 “이 책이 사랑을 잃었던 사람, 사랑을 의심하는 사람, 사랑에 붙들려 있는 사람의 잠을 축내며 곁에 머물기를 바란다”고 작가의 말에 적었다.

글?사진=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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