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꽁꽁 얼어 버린 썩은 호수처럼 보이기도 했고, 빛이 새지 않도록 누군가가 하늘 전체를 시멘트로 발라 버린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건 회색 눈이 아니라 하늘이 무겁다며 수제비처럼 뚝뚝 떼어 놓고 있는 구름 덩어리일까. 눈과 구름의 색깔이 꽨히 똑같은 건 아닐 것이다. 그도 아니면 죽은 사람들이 벗어 놓고 간 젖은 양말에서 떨어지고 있는 얼어붙은 땟국물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눈이 저토록 시커멀 수는 없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회색 세상을 그려낸 소설가 장은진. 그는 “미래를 축적하지 못한 채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의 절망을 억지 희망으로 포장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음사 제공 |
“멍자국 같은 얼룩덜룩한 구름들이 만들어 낸 어둠을 이불처럼 둘러쓰고 잠에 빠진 회색시는 언제 깨어날지 알 수 없는 수면병 걸린 환자의 모습이었다. 하늘은 늘 그늘이어서 회색시는 불면의 고통을 조금도 모르는, 영원히 해가 뜨지 않는 그늘의 도시이자, 얼룩의 도시이자, 잠의 도시였다. 그러나 도시를 잠에 빠뜨린 그 하늘은 다크서클을 달고 사는 불면증 환자처럼 늘 깨어 눈 만드는 일을 했다.”
소설은 처음부터 카운트다운을 시작하며 “그게 온다”고 발설한다. 그게 온다는 말은 계속해서 반복되거니와 맨 마지막 문장도 “그게 온다고 한다”로 맺는다. 그것이란, 최종 재앙을 불러올, 숨통을 마지막으로 끊을 거대한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이러한 소식이 소문으로 전파돼 회색 도시를 탈출하려는 ‘회색인’들의 행렬은 끝없이 이어진다. 남자와 여자를 포함한 몇몇만 그 대열에 동참하지 않고 검은 무덤 같은 도시를 배회한다. 기타를 수리하던 청년은 회색인에서 탈출해 돌아와 그가 목격한 공포를 눈빛으로만 증언하다 죽는다. 여기저기 자살하는 이들이 속출하고 발에 걸리는 게 시체들이다. 재활용할 사람도 없는데 폐지 줍는 노파는 여전히 회색 거리를 돌아다닌다.
노파를 관찰하는 작가의 이런 진술은 이 소설이 겨우 내보이는 희미한 희망이다. 세상이 아무리 출구 없는 암울한 회색 세상이라도 끝까지 허물 수 없고 포기할 수 없는 건 마음이라는 언설. 세상의 마지막을 앞두고 회색 도시의 두 남녀는 꼭 껴안고 ‘낮고 가느다란 숨’을 서로 나누며 눈을 감는다. 장은진은 “대개의 종말을 다루는 소설들이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희망을 말하지만 희망 없이 절망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면서 “결말부에서 독자들이 희망을 읽는다면 작가인 저로서는 절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날짜가 없는 것처럼 미래가 보이지 않는 청춘들의 현실은 마지막 남은 하루도 어제와 같은 특별하지 않는 오늘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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