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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농부가 콩 세 알을 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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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1-09 22:11:59 수정 : 2016-11-09 22: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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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보면 스마트혁명은 10년, 디지털혁명은 30년, 산업혁명은 200년, 그에 비해 농업은 5000년 이상 이어졌다. 따라서 인류의 진정한 삶의 모체는 식물을 재배하기 시작한 농경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지구상에 약 50만종에 이르는 식물류의 균형과 정교함은 인간이 미칠 바가 아니다. 햇빛을 이용한 광합성을 거쳐 토양속의 양분을 얻는 결과에서부터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자외선이나 적외선 같은 색채의 파장까지 구별한다니 말이다.


박명식 수필가
오곡백과의 단 내음이 온 대지를 품고 있다. 올해 쌀농사도 풍년이고, 농식품부는 잉여 쌀 20여 만t을 가축사료로 풀 계획이라니 배고팠던 때를 기억하는 분들은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옛말에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 있고 한 톨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 있다’고 했다.

곡식은 주인의 발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처럼 쌀 미(米) 자를 풀어보면 八十八, 즉 농민의 손길이 88번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의 주식인 쌀이 더운 여름에 생산돼 추운 겨울에 먹고, 반대로 보리는 추운 겨울을 거쳐 더운 여름에 먹는 것도 자연의 오묘한 이치다.

그리고 가을은 우리에게 약속을 지킨다. 대부분의 수목은 뿌리내린 환경에 최선을 다하고 잎을 떨구거나 열매를 맺을 때를 잊지 않는 것이다. 하늘은 녹 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싹틔우지 않는다.

농민은 죽는 날까지 씨앗을 심는다는 말에 차라리 비장함마저 든다. 농민이 콩 세 알을 땅에 심는 데도 이유가 있다. 하나는 하늘을 나는 새의 몫, 또 하나는 땅 속 벌레의 몫, 나머지 하나가 주인 몫이다. 자연에 순응하며 조절하는 농민의 덕과 마음이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일컬어지던 시대에서 상공사농(商工士農)으로 변한 세상에서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머물고 있는 아름다운 섬 제주에는 지금 고즈넉한 돌담 사이로 해풍을 머금은 황금열매 천국이다. 감귤축제와 농장마다 수확에 한창인 감귤을 보자니 문득 인술을 베푼 귤정(橘井)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중국 진(秦)나라 의사였던 ‘소탐’은 고을 각 집 우물가에 귤나무를 심게 해 나무가 자라자 잎을 먹게 하고 그 뿌리의 정기가 우물에 녹자 마시게 함으로써 병을 예방케 했다는 이야기다.

최근 최순실이 국정농단으로 온 나라를 혼란에 빠트려 검찰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그의 딸이 ‘돈도 실력이다’, ‘그렇지 못한 부모를 원망하라’는 글을 쓴 사실이 밝혀지면서 많은 젊은이와 국민의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과정과 방법이 어찌 됐건 목적과 결과만을 중시하는 세태에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피땀이 묻은, 진정 가치 있는 돈 한 푼 벌어보지 않았을 그들을 꾸짖기에 앞서 세 알의 콩을 심는 농민의 마음을 깊이 본받아야 할 것이다.

박명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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