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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싸워온 삶”… RBG의 ‘악명’과 만나다

입력 : 2016-11-05 03:00:00 수정 : 2016-11-04 2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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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째 미국 연방대법관 재직 중인 85세 할머니 /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라는 ‘특별한 개인’의 평전
아이린 카먼, 셔나 크니즈닉 지음/정태영 옮김/글항아리/2만3000원
노터리어스 RBG/아이린 카먼, 셔나 크니즈닉 지음/정태영 옮김/글항아리/2만3000원


‘꽉 막힌 잔소리꾼, 왜곡된 페미니스트, 꼰대, 뜨뜻미지근한 급진주의자, 따분한 먹물.’

이런 경멸조의 별명을 얻었던 RBG(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이제는 사랑받는 해시태그로 거듭났다. 긴즈버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네티즌의 클릭을 달고 다닌다. 미국 젊은이들은 RBG를 테마로 한 핼러윈데이 의상을 입고, 모자를 쓰고 기념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RBG는 똑똑한 페미니스트의 대명사로 통한다. 요즘 미국에서 말 좀 하는 사람치고 RBG를 들먹이지 않는 이가 없다. 아무리 유명한 대법관이라 해도 이런 식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사람은 없었다.

미연방대법원 대법관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열렬 페미니스트이면서 요즘 미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판사로 유명하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85)는 현직 미 연방대법관으로 23년째 재임 중이다. 근엄하게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법조인이지만, 한편으로 대중 스타이며 젊은 아이콘이다.

긴즈버그의 평전인 이 책 저자 아이린 카먼은 하버드 법대 출신의 미 MSNBC 법조 기자이며, 셔나 크니즈닉은 ‘노터리어스 RBG’ 텀블러 블로그 운영자로, 연방항소법원 재판연구원이다.

한 젊은 여성이 블로그에 올린 긴즈버그 핼러윈 코스프레 사진이다. ‘나는 반대한다’는 소수의견 쪽지를 들고 있다.
두 사람은 긴즈버그 대법관에 반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긴즈버그는 팔순 중반 노인이지만 젊은이들과 호흡하며 생각을 공유한다. 저자들은 긴즈버그의 일생뿐 아니라 가족 및 주변인들과 에피소드, 인간적인 면모 등을 담아 이 책을 썼다.

1993년 긴즈버그는 백악관 로즈가든을 찾았다.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이 연방대법원 대법관에 지명했기 때문이다. 미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미국 사회 성차별 장벽과 싸워야 했다. “차별을 경험한 나는 차별과 싸우고 우리의 아내, 어머니, 자매, 그리고 딸을 위해 이 나라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것이다.”

1993년 연방대법관 인준청문회 직후 의회에서 아들, 손자 손녀 등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긴즈버그 판사를 대법관에 지명했다.
글항아리 제공
통상 로스쿨 재학생과 졸업생은 로펌이나 법원의 재판연구원으로 일하며 사법 시스템의 생리를 익힌다. 로스쿨을 공동 수석 졸업한 긴즈버그에게도 당연히 그런 기회가 왔다. 그러나 돌아온 건 차별이었다. 지원서를 내면 아이를 가진 엄마라서, 기혼 여성이어서, 혹은 단지 ‘여성’이어서 곤란하다는 답이었다. 심지어 ‘남학생 전용’이라는 라벨이 붙은 입사지원서도 수두룩했다. 럿거스대는 여성이고 남편이 번다는 이유로 그에게 더 낮은 강의료를 제시해 항의하기도 했다.

암 투병 중인 남편을 간호하며 기적적으로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는 조마조마했다. 임신 사실이 들통나면 교수직에서 쫓겨날 것이었기 때문이다. 불룩해진 배를 감추느라 몸에 맞지도 않는 헐렁한 옷으로 방학 때까지 버텼다. 이런 경험들 위에서 1972년, 긴즈버그는 여성권익증진단(WRP)을 출범시켰다. 그곳에서 비슷한 경험의 수많은 여성들을 만났다. 테니스를 가장 잘 쳤지만 여자라서 학교 대표팀에 들어갈 수 없었던 선수, 임신을 사유로 일터에서 내쫓긴 교사, 임신 때문에 강제 전역된 여군 등…. 이들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능력이 있어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었다. 긴즈버그는 사명감에 불탔다. 그리고 열정적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그렇다고 여성 편에 선 것만은 아니었다. ‘남편, 아버지, 형제, 그리고 아들’을 잊은 적이 없다. 남성이 주체가 된 사건들을 다수 변호하기도 했다. 그에게는 미국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적 풍토를 바로잡는 게 주목적이었다.

소수의견을 내기도 했다. 2000년 11월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가 맞붙은 대선에서다. 연방 대법원은 수작업 재개표를 명령한 플로리다 대법원의 판결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이는 부시의 승리를 의미했다. 긴즈버그는 소수의견을 내면서 “(판결에 대해)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며 대법원 판결에 반대했다. 긴즈버그가 문제 삼은 것은 복잡한 미국 대선 절차였다.

긴즈버그는 장중미려한 판결문으로 유명하다. 문장은 탁월한 미적 성취를 거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수하에서 일하는 재판연구원들의 꼼꼼한 조사와 검증을 거친 사건보고서인 동시에 인권과 자유, 평등을 진전시킨 문장으로 호평받곤 했다.

최근엔 도널드 트럼프를 사기꾼이라고 공격해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대법원의 선거 개입이라 비난했고, 법조계에선 올바른 처신이 아니라고 나무랐다. 마지못해 긴즈버그 할머니는 사려 깊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그는 동성애를 지지한다. 소수의 인권과 권익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책은 긴즈버그를 찬양하는 내용 일색으로 꾸며진 것은 아니다.

저자들은 긴즈버그 평전을 통해 “자유와 평등, 여성 인권이 어떻게 구축되어가는지 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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