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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인 이환의가 쓰는 농부 이반의 초록일기] 〈11〉 발품을 팔수록 희망은 가까워진다

관련이슈 귀농인 이환의가 쓰는 농부 이반의 초록일기

입력 : 2016-11-04 19:36:03 수정 : 2016-11-04 19:3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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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지 구석구석 돌다보면 우연찮게 꿈꾸던 곳 만날 수도 귀농 교육을 받고 농촌에서 흙과 함께 보내고 싶은 이들은 되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런데 막상 시골로 가려니 자신이 없어 한 해 두 해 미루거나 준비만 몇 년씩 하는 분들을 종종 만난다.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귀농 시점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세상에 완벽한 배우자감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모든 조건을 갖춘 귀농지 또한 없다고 보면 된다. 설령 있다고 해도 땀흘리며 살기 위해 농촌으로 가려는 마당에 모든 것이 갖춰져 있으면 그처럼 따분한 일도 또 없을 것이다.

몇 년전 예비 귀농인들과의 만남에서 어떤 후배가 물었다. ‘선배님, 내려가려는 곳이 다 좋은 데 손봐야 할 곳이 많고, 밭에 온통 비닐이 깔려 있어요. 어찌 할까요?” 답은 간단했다. “집은 고치고, 비닐은 걷으면 됩니다!” 그 집에 들어가 농사를 지으려면 다른 방법은 없다. 10년 전만 해도 이민은 수긍을 해도 귀농한다고 하면 아는 이 모두가 말렸다. 그 정도의 수고도 없이 시골에서 편안히 살아가려 한다면 애당초 농부의 꿈을 접는 것이 낫다. 어쩌면 그 집과 밭이 그이에게 차례가 온 것은 밭에 널린 비닐과 고칠 곳이 많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귀농투어에 참가한 도시민들. 교육농장에서 체험교육을 받고 있다.
20년 전 우리 부부도 새로운 삶터를 찾아 여행을 겸해 예정지 몇 군데를 둘러보았다. 당시 신문에 보도된 공시지가 중 충남 금산의 ○○리가 제일 낮았다. 즉시 건설교통부에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한 뒤 수소문해서 찾아갔지만 관광지로 개발된다는 소문에 시세는 공시가의 수십 배였다. 두세 군데 더 돌아다녔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 그 즈음 울림이 있는 농촌 에세이 저자에게 전화를 드렸는데 홍성을 추천하셨고 귀농 강좌 시간에 같은 지역의 빈집과 농토를 소개받고 망설임없이 안착했다.

지금 우리 집은 부부의 연고지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혹시라도 의지하는 마음이 생길까봐 후보지에서 빼놓았다. ‘생태적 가치와 자립하는 삶을 위하여’라는 귀농 학교의 모토에 걸맞은 농촌 생활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소통의 중심에서 제 역할을 해내고 연로하신 장모님의 농사를 돌봐 드리게 되어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모른다. 우리도 그랬고 지역에 뿌리내린 동료들을 봐도 각자에게 맞는 귀착지는 따로 있는 것 같다. 전국을 한 바퀴 돈 끝에 이 자리에 다시 왔으니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귀농투어에 참가한 도시민들. 농가에서 농기계 실습 중이다.
#노하우보다 더 중요한 노후(knowwho)


아무리 준비에 공을 들여도 미진한 구석은 늘 남는 모양이다. 선배들의 좌충우돌 정착기를 살펴보면 귀농 초기에 새내기 농부들이 얼마나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는지 절로 웃음이 난다.

몇 가지 재미있는 사례를 보자. 어떤 이는 김장무를 심을 때 씨앗을 들깨처럼 흩어뿌려서 동네의 웃음거리가 되는가 하면, 여물지 않은 참깨를 베어 한 톨도 건지지 못한 경우도 있다. 지금은 베테랑 농부가 된 선배들도 아마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으리라 본다. 몇 년 전 우리 동네에 들어와 농사를 시작한 아름이네도 첫해에 ‘들깨는 눕혀 심는 게 좋다’는 말에 한 뼘도 안 되는 모종까지 모조리 눕혀 심었다.

농사에 막 입문해서 이런저런 실수를 하는 건 변명의 여지도 충분하고 다시 심거나 다음해에 잘 지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눈앞의 도로만 보고 지적도에 길이 없는 맹지(盲地)를 사들였거나 ‘산림보전지역 일부’라는 용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원하는 곳에 집을 지을 수 없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행정에서는 1000평 중 10평만 관리 지역이고 나머지가 보전 지역이라도 ‘일부’라는 말을 붙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이런 어려움에 맞닥뜨리면 경제적 손실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비슷한 실수와 실패를 줄이기 위해 앞선 이들의 노하우를 살짝 엿보는 것은 어떨까. 이미 선배들이 쓴 무용담에 가까운 책들이 후배들을 손짓하고 있다. 농촌에서 고생하는 선배들을 도울 겸 눈길이 가는 농촌 생활 정착기를 사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그중에 울림이 큰 저자와 소통을 시도하거나 찾아가서 시골살이의 지혜를 구해봄 직도 하다. 단 방문할 때는 일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작업복과 장갑, 모자 따위를 준비했으면 좋겠다. 따로 시간을 내어달라기보다 농가에서 그날 해야 할 일을 함께 하며 이것저것 묻는 것이 양쪽 모두에게 부담이 적다.

2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다 홍성에 건축 중인 어느 60대 부부의 주택.
#농번기에는 작업복과 장갑을 챙기자


농촌에서는 작물이 논밭에서 자라는 기간은 항상 바쁘다고 보면 된다. 봄이면 봄대로 바쁘고 여름이면 여름대로 해야 할 일이 있다. 공휴일은 농촌과 큰 상관이 없다. 오히려 혼인이나 생신 잔치로 더 바쁜 경우도 많다. 그럴 때 일을 거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선배로서 안내를 부탁한다면 찾아가는 이를 달리 볼 것이다.

묻지는 않았지만 전국의 귀농 선배들은 이런 준비된 만남을 꿈꿨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대개 바쁜 시간에 찾아와서 필요한 것들을 묻다가 휭하니 가버리기 일쑤다. 아쉬운 건 상대에 대한 배려다. 솔직히 농번기에는 와서 일을 돕든가 아니면 그때그때 나오는 농산물이라도 사갔으면 좋으련만 그런 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도시적 습성이란 별스런 게 아니다. 나 필요한 용무만 보고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지 않는 것, 이런 것이 바로 도시인의 깍쟁이 기질이 아닐까.

만일 누가 우리 집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와서 그날의 일을 나눈다면, 우리 부부는 마음을 나누고 몸으로 부딪쳐서 힘들게 얻은 농부의 지혜를 나눌 것이다. 어스름이 깔릴 무렵, 그이가 도시로 돌아가려 할 때는 곳간 깊숙이 갈무리한 농산물을 꺼내 배낭이나 트렁크를 채워 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빈 집과 논밭이 나면 맨 먼저 전화를 걸어 지체없이 알려주리라. 그이는 이미 시골로 올 마음과 몸의 준비가 모두 끝나 있으니….

#귀농투어 다니며 보금자리 점찍자

후보지를 찾아 전국 각지를 구석구석 돌다보면 우연찮게 자신이 꿈꾸는 곳을 만나기도 한다. 우리 부부도 세 번째 여행길에 그런 곳을 만났고 몇 달 뒤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남들에 비해 큰 고생 안 하고 귀착지를 정했으니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 없이 무턱대고 다녔던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서울까지의 거리와 시간, 교통, 지역의 농특산물, 분위기와 특징 등을 알아본 뒤에 길을 나섰다.

우리 부부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방법을 살짝 귀띔해보고자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성지순례(?)다. 각 지역별로 귀농인의 메카로 불리는 곳을 찾아가 보는 것이다. 이들 지역 외에도 최근에는 새롭게 조명받는 곳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그중 관심이 가는 지역을 방문하여 농가 살림과 농사짓는 모습을 관찰하면 시골살이의 밑그림이 구체적으로 그려질 것이다.

선배 귀농·귀촌인들이 모여 있는 곳들은 한 번에 여러 농가를 두루 살펴볼 수 있다. 한 지역에서 귀농과 귀촌, 자경과 임대, 은퇴농과 겸업농 등 다양한 삶의 형태를 만날 수 있음은 도시민에게는 행운이다. 시간과 비용을 줄일뿐더러 배움의 효과도 한층 더 커진다. 혹여 생태 뒷간에 관심이 있다면 농가 간에 차이를 자연스레 비교해 볼 수 있다. 이렇듯 개별 방문과 지자체의 귀농 투어를 몇 차례 경험하다 보면 자연스레 후보지와 지향점이 생긴다.

농촌에서 보금자리를 찾는 길은 여러 갈래지만 가장 성공률이 높은 방법 중 하나는 후보지에 살고 있는 귀농 선배나 지인의 소개를 받는 것이다. 남녀의 만남도 미팅보다는 소개팅의 성사율이 높듯이, 어떤 지역이 마음에 든다면 연락을 해줄 만한 사람에게 간절함을 호소하는 읍소 전략 또한 효과적이다. 농가 방문 시에 이름과 연락처, 원하는 바를 간략히 적은 나만의 명함이라도 건네면 어떨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라도 해야 성사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답을 드리고 싶다. 시골 어르신들은 농사 말고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 하물며 전화번호부 한쪽에 적어 놓은 이름을 찾아 연락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튀어야 빛이 나는 건 광고만이 아니라면 아쉬운 건 이쪽이니 조금은 특별해질 필요가 있다.

이환의 홍성 귀농귀촌종합지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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