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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한·일 GSOMIA 깜짝 발표한 정부

입력 : 2016-10-31 01:23:35 수정 : 2016-10-31 01: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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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차관 협의 때도 거론 안 돼
왜 하필 지금일까 의문점 제기
일본 과거사 문제 등 해결 안 돼
무리하게 추진 땐 분노 거세져
지난 27일 오전 도쿄에서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가 열렸다. 북한의 점증하는 핵·미사일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북한을 압박할 카드를 서로 비교하고 조율하면서 공조를 강화하기 위한 자리였다. 마침 이날 오전 한국에서는 한·일 간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 협상을 4년 만에 재개하기로 결정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유는 똑같았다. 북한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사안의 무게를 고려할 때 당연히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 때 이 문제가 거론됐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GSOMIA는 논의 주제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협의 후 공동기자회견에 나선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방금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와 협의를 재개한다고 발표했다는 얘기를 들어서, 알고는 있다”고 말했다. 예상하지 못한 한국 정부의 갑작스러운 결정에 당황한 듯한 인상도 풍겼다.


우상규 도쿄특파원
그동안 GSOMIA는 일본 쪽이 더 적극적이었다.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의 정보를 최대한 빨리 손에 넣고 싶어서다. 한·일 GSOMIA는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2년 서명 직전까지 갔으나 ‘밀실협상’ 논란이 불거져 무산된 바 있다. 4년 전 서명 직전까지 갔던 점을 고려하면 군사 분야의 실무적인 협의는 거의 마무리된 상태고 사실상 외교적인 결정만 남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협의 재개를 깜짝 선언한 것이다. 왜 하필 지금일까.

일본도 이 부분을 찬찬히 뜯어보는 듯하다. 사실 한국이 결단만 한다면 일본은 두 손 들어 환영할 일이다. 일본 언론은 11월 타결을 전망하기도 했다. 12월 개최가 예상되는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을 열어 협정서에 서명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다. 한국 정부가 국민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느냐다. 일본 정부도 4년 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스기야마 사무차관은 “신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사안이 무리하게 추진될 경우 한국 국민의 분노가 들끓을 가능성이 크다. 독도 문제나 일본군 위안부 등 역사인식 문제에서 일본 정부의 자세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2012년 당시보다 상황이 더 나쁠 수 있다. 여론이 악화돼 일본이 화풀이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일본도 한국의 상황을 모를 리 없다. 일본의 뉴스와 신문도 연일 ‘최순실 사태’를 비중 있게 전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어 한·중·일 정상회의가 올해 안에 열릴 수 있을까 의심하는 시선도 있다. 한국의 현재 상황을 어쩌면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가장 아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부 간 위안부 협상에서 한국 정부를 상대로 원하던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명분을 얻어냈고, 이제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 문제만 처리하면 되는데 마침표를 찍기 직전에 이번 소동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위안부 합의는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만 긍정적으로 평가할 뿐,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세계 시민단체들은 다들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흔히 이런 경우 피해자가 속았다고 말하지 않던가.

요즘 일본에 있는 동포들은 만나기만 하면 “한국 상황이 정말 부끄럽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역사적 특수성은 있지만 생활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본에는 꽤 많다. 그들은 서울올림픽 때도, 외환위기 때도 팔을 걷어붙이고 한국을 도왔다. 그런 그들이 지금 조국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하루빨리 사태를 진정시키고 한·일 외교에 악영향이 끼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양국 관계가 개선되는 분위기라고 하지만 최근 일본 오사카의 ‘고추냉이 초밥 테러’ 사건 등 풀어야 할 일이 여전히 많다.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응을 위해 긴밀하게 대화를 나눠야 하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 후회는 늘 늦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우상규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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