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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역대 선거에선 유력한 대권주자가 일찌감치 부상했다. 이번엔 다르다. 집권당은 지지율 10%가 넘는 잠룡이 없다. 인기 1위를 달리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야권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돋보이나 경쟁자들의 도전이 거세다. 친박계 못지 않게 친노·친문계도 국민 밉상이 된 만큼 ‘문재인 대세론’이 이어질지 미지수다. 이 틈새를 비집고 ‘제3지대론’이 활동공간을 넓히는 중이다. 선거판 자체를 흔들 정계개편 가능성이 상존하는 셈이다.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은 진앙이 될 수 있다. 변수가 많아 춘추전국시대 같은 차기 대선. 앞으로 여야 잠룡의 행보를 따라가며 정국 흐름을 짚어보고 대선 향배를 전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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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7년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그동안의 반대 의사를 접고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한 개헌 논의를 전격 제안하고 있다. 정치권이 개헌론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남정탁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임기내 개헌 완수’라는 깜짝 제안을 내놓았다. 취임후부터 “개헌은 블랙홀”이라며 시종 반대해왔던 터라, 180도 변신은 여러 해석을 낳았다. ‘우병우 의혹’에다 ‘정권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 추문이 퍼질대로 퍼진 시점이라 국면 전환용 카드라는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박 대통령과 친박의 노림수가 담긴 대권플랜이 마침내 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

이날 새누리당에선 친박 홍문종 의원의 과거 발언이 다시 주목을 받았다. 홍 의원은 지난해 11월 “20대 총선이 끝난 후 개헌을 해야 된다는 것이 현재 국회의원들의 생각이고 국민들의 생각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이원집정부제’를 내세우며 ‘반기문 대통령-친박 총리’ 체제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이 외교·국방 등 외치를 담당하고 의회 다수당 대표인 총리가 내치를 맡는 정치체제다. 대통령제와 내각책임제를 혼합한 것이다. 당시 정치권에는 반 총장을 대통령으로, 친박 핵심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총리로 하는 차기 체제를 통해 박 대통령의 퇴임후 영향력을 보장하는 시나리오가 회자됐다. 야당도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통해 친박 세력의 장기집권 기반을 삼겠다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홍문종 개헌론은 “개인 의견”, “국정에 부담만 주는 엉뚱한 얘기”라는 친박계와 청와대의 일축으로 수그러들었다.
4·13 총선 후엔 진박을 자처한 정종섭 의원이 불을 다시 지폈다. “개헌 논의는 늦어도 올해 말까지 마무리 짓는 일정으로 서둘러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정현 대표가 지난달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조건부 개헌론’을 들고 나왔고 정진석 원내대표도 ‘국감 후 개헌특위 구성 검토’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지난 10일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이 정색하며 부인했는데, 10여일만에 거짓말한 게 드러났다.

자체 대선주자가 없는 친박계는 반 총장에 목맬 수 밖에 없는 처지다. 비박계 대선주자들과는 구원이 많은데다 정치적 이해가 상충된다. 특히 박 대통령은 당장 레임덕 차단을 위해서라도 반기문 카드가 필요하다. 반 총장의 지지층은 여당 성향이 강하다. 집토끼를 뺏긴 경쟁자들은 뭘 해도 지지율 5% 미만에 머무는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미래권력의 존재감이 미약할수록 현재권력은 레임덕 걱정을 덜 수 있다.
박 대통령과 친박은 반기문 카드의 반대 급부를 기대할 수 있다. 현실적 조직과 세, 자금이 없는 반 총장이 친박의 지원을 받으면 빚을 지게 된다. 이원집정부제는 반 총장을 끌어들이고 코를 꾈 수 있는 당근이자 고리다. 박 대통령의 영남권 영향력을 감안하면 친박이 원내 세력을 유지하며 집권을 노리는 제도적 기반이기도 하다.
물론 다른 선택의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 있다. 최근 친박·반기문 불화설이 나오면서 ‘플랜B’가 검토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황교안 국무총리, 김무성 전 대표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고 한다. 반 총장이 부담스러운 친박을 꺼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과 박 대통령과 지지층이 겹치는게 걸림돌이다. 두 사람 지지율이 같이 등락하는게 여론조사 추세다. 친박과 반 총장이 따로 가기에는 한계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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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에서 개헌 발언에 대한 찬성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
김무성 전 대표는 “이 정권 출범한 이후 오늘이 제일 기쁜 날”이라며 대환영했다. 김 전 대표는 2014년 ‘개헌 봇물’ 운운하며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까지 거론했던 개헌 찬성론자다. 유승민 의원 반응은 좀 다르다. 찬성 의사를 밝히면서도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이 주도해서는 국민이 그 의도에 찬성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계산과 당리당략에 따른 권력 나눠먹기를 위한 개헌은 야합에 불과하다”고도 했다. 청와대발 개헌론의 의도와 목적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현재로선 개헌의 방향과 성공 여부는 극히 불투명하다. 그러나 반 총장을 편애하는 방향으로 개헌론이 진행될 경우 비박 대선주자들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할 것이다. 제3지대론이 원심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 대선주자 측은 “반기문 대통령, 친박 총리 시나리오가 정말 현실화되는 것 아닌가”라며 “진행 상황을 보고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허범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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