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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지옥철에 몸을 싣는… 인류 출퇴근 여정

입력 : 2016-10-21 21:06:53 수정 : 2016-10-21 21: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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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통근열차 1인 공간 가로·세로 0.45m
일본 푸시맨까지 고용… 짐짝 취급은 예사
직장인 통근 길은 ‘가축보다 못한 대우’
산업혁명·철도 발달로 일터와 집 분리
출퇴근의 삶 탄생부터 성장·앞날까지 탐색
이언 게이틀리 지음/박중서 옮김/책세상/1만9800원
출퇴근의 역사/이언 게이틀리 지음/박중서 옮김/책세상/1만9800원


대도시의 직장인들은 아침저녁으로 “돼지에게조차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는” 대우를 받곤 한다. 그것은 일상의 흔한 풍경인지라 마지못한 것이긴 해도 견뎌낼 수밖에 없다. 인권이 보편적인 개념이고 각자의 권리 보장이 최고의 가치를 가진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실현하는 선진국에서조차 그렇다. 어디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출퇴근길을 상상해보라. 당신은 아침에는 직장, 저녁에는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 혹은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오늘은 제발 아니길 바라지만 어김없이 승객들로 꽉 차 있다.

“영국에서는 열차 통근자 1인당 이론상으로는 가로세로 0.45m씩의 공간을 부여받지만, 러시아워 동안에는 실제로 그만큼의 공간을 부여받는 경우가 드물었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가축에 대한 대우와 비교한다.

“가축의 인도적 운송을 위해 유럽의 법률이 정한 최소한도보다 훨씬 더 좁은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객차 내의 온도가 여름에는 섭씨 30도를 넘었는데, 그것 역시 가축을 위해 정해놓은 법적 상한성을 초과하는 수준이었다.” 


만원의 지하철은 대도시 직장인들이 흔히 접하는 풍경이다. 산업혁명 이후 집과 직장의 분리로 출퇴근 현상이 탄생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분석한 책은 만원 지하철로 내몰리는 직장인의 상황이 가축보다 대우가 못하다고 분석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돼지에게조차 부적절 운운하는 것이 과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일본으로 눈을 돌려보자.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1960년대 이후 일본의 열차 운영업체들은 ‘오시야’를 고용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푸시맨’이다. 그들은 통근자들을 말 그대로 열차 안에 밀어넣는다. 저자는 “그들의 근무 영상을 보면, 동물 이송 중에 벌어지는 잔혹행위를 부각한 동물보호단체의 광고 장면이 연상된다”고 적었다. 그러나 ‘오시야의 희생자’들은 저항하지 않는다. 굳은 얼굴을 유지한 채 “가능한 한 배를 피할 뿐”이다. 서로 등을 맞대고 서며 최대한 ‘예의범절’을 지키려 하는 것이지만 몸과 몸을 맞댈 수밖에 없는 상황은 성추행이라는 부작용을 낳는다. 샐러리맨이 젊은 여성, 특히 여학생에게 추파를 던지거나 심지어 성추행을 하는 것은 ‘전통 혹은 관습’이 되었다.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견뎌내는 것은 이론적으로 어떤 설명이 가능할까. ‘물체화 이론’이란 게 있다. 서로 바짝 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다른 사람들을 감정적 반응을 필요로 하지 않는 무생물체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강력한 일체감을 만들어 상호 원조를 한다는 ‘집단적 탄력성’ 이론도 있다. 둘을 조합해보면 통근자들은 한편으로 다른 통근자를 무생물로 간주함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일체감을 조성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함으로써 매일같이 과밀을 견뎌내고 있다는 그럴듯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출퇴근에 대한 이런 전문적인 분석이 신선하다. 인간의 삶,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영역임에도 아직 제대로 탐사되지 않았던 분야다. 저자는 산업혁명과 철도의 발달로 일터와 집이 분리되면서 생긴 출퇴근 현상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설명하고, 앞으로를 전망한다.

기차가 발명되어 통근이 가능해진 19세기의 유럽에서 출퇴근은 파격적인 행위였다고 한다. 집과 일터가 분리되고, 장거리 통근이 생겨났을 때만 해도 통근은 ‘이동의 자유’를 상징했으며 “그 도전을 받아들일 만큼 용감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특허국 사무원으로 일하면서 출퇴근 전차 안에서 시간의 상대적 변화 가능성을 사색하며 상대성이론을 고안해 낸 아인슈타인의 일화 등 흥미로운 이야기도 접할 수 있다.

출퇴근의 미래는 어떨까. 사회 전반의 디지털화로 집과 일터의 분리가 희미해져 사람이 일을 찾아가는 것이 불필요해 보이기도 하는지라 출퇴근은 시대착오적인 행위로 간주되어 폐기되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명확하게 전망하기는 힘들다면서도 존속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둔다.

“통근이 그렇게 쉽사리 없어질 것 같지는 않으며, 비유하자면 우리가 집에 불을 피울 땔감을 구해 오는 여정에 쓰는 시간을 결코 낭비나 헛수고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대답할 수 있을 뿐이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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