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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나마스테!] 서로 다른 세상 한·미 두 작가의 수다… “글쓰기에 큰 도움”

입력 : 2016-10-17 20:38:12 수정 : 2016-10-17 20:3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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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작가축제서 만난 천명관·데이비드 밴 한국 소설가 천명관(52)과 미국 작가 데이비드 밴(50)은 지난달 말부터 이번 달 초까지 일주일 동안 서울의 같은 호텔에서 숙식하며 파트너로 지냈다. 두 남자 모두 굵직한 뼈대가 눈에 띄는 건장한 체격이다. 이들이 같이 지냈다는 건 말 그대로 함께 지근거리에서 서로의 작품을 읽고 ‘수다’를 풀고 낭독공연을 보면서 문학을 나누었다는 의미다. 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성곤)이 격년으로 진행하는, 국내외 문인 28명이 참여한 6회 서울국제작가축제(9월25일~10월1일) 자리였다. 여느 해보다 내실 있고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다는 평가다. 이 기간에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천명관은 2003년 단편 ‘프랭크와 나’로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와 이듬해에는 다시 장편소설 ‘고래’로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아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장편 ‘고령화 가족’ ‘나의 삼촌 브루스 리’를 연달아 펴냈고 소설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도 묶어냈다. 쉼없이 이어지는 호쾌한 남성적 서사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그의 서사 스타일은 ‘문학주의’에 답답한 독자들에게는 돋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최근 뒷골목 건달들의 좌충우돌 서사를 그려낸 신작 장편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예담)도 펴냈다. 국내에 장편을 새로 선보이기는 데이비드 밴도 마찬가지다. 이 장편 ‘아쿠아리움’(아르테)은 데이비드의 출세작 ‘자살의 전설’처럼 가족을 소재로 어머니와 할아버지의 화해를 그려낸 작품이다. 12살 때 접한 아버지의 자살로 인해 내내 트라우마를 안고 살다가 소설로 풀어내기 시작해 메디치 외국문학상, 캘리포니아 북어워드 등 전 세계 12개 문학상을 수상했고 20개 언어로 번역돼 각광받는 작가로 살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한 6회 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 만난 소설가 천명관(왼쪽)과 미국작가 데비이드 밴. 밴은 “유머러스하고 겸손한 게 매력”이라고 천명관에게 말했고 “미국 작가들 중에서도 특히 섬세하고 정교한 서사가 돋보인다”는 화답을 들었다.
첫인상을 묻자 천명관은 “자살한 아버지 이야기를 쓴 미국의 50대 아저씨라니 처음에는 음울하고 지루한 만남이겠다 싶었는데 막상 보니 에너지가 넘치고 유머러스하고 사교적이어서 약간 조증 같은 느낌을 줄 정도였다”고 말했고, 데이비드는 “처음에는 너무 겸손해서 출판한 책이 많을 뿐 아니라 많이 팔리고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는 걸 몰랐을 정도였는데 으스대면서 스스로를 과장하지 않는 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화답했다. 데이비드가 “영역해 수록한 자료집에서 천명관의 ‘프랭크와 나’를 읽었는데 유머러스한 부분이 좋았고 특히 돈에 대한 이야기는 미국 작가에게서도 접하는 것으로 외국 작가의 글을 읽는 것 같지 않고 친근했다”고 이어가자, 천명관은 “데이비드 작품은 다른 미국 작가들에 비해 묘사가 정밀하고 시적인 면이 느껴졌다”면서 “장면 묘사가 다음으로 넘어가는 감각이 되게 독특하고 플롯에 대한 감각이 독창적이어서 지금도 그러하지만 앞으로 더 크게 빛날 작가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데이비드는 최근 그리스 비극을 소재로 한 ‘메데아’라는 소설을 탈고해 가족 서사에서 벗어나는 중이라고 하지만 가족이 그의 문학의 출발점이자 뿌리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천명관은 개인사를 배제하고 외부에서 소재를 구해 상상력을 발휘해온 편이라지만 역시 가족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자살한 아버지(‘자살의 전설’), 아예 존재가 보이지 않는 아버지(‘고령화 가족’)를 그리는 이들에게 아버지는 현대사회에서 어떤 위상일까.


“아버지 이미지는 많이 바뀌고 있어요. 아픔의 상징이었던 치과병원도 요새는 아픔을 덜어주는 요소를 많이 보완하듯 아버지들도 가족과 감정적으로 많이 교류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앞으로는 이미지가 많이 나아지지 않을까요?” 12살짜리 아들에게 1년만 같이 살자고 청했지만 거절당하고 자살했던 아버지에게 부채감을 안고 살아온 데이비드. 그는 바닥까지 추락한 아버지의 미래에 대해 정작 낙관적으로 말했지만 천명관은 비관적이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변화의 핵심은 아버지의 죽음이라고 봅니다. 대를 이어 내려오던 연속된 삶의 패턴이 완벽하게 단절되면서 대단히 심각한 양상인데 어떻게 해결돼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족처럼 가장 가까운 이들이 왜 더 깊고 큰 상처를 주는지 다시 물었다.

“가족은 우리를 만들고 파괴시키기도 합니다. 가족이 실패하면 우리는 사랑을 주고받을 기회나 화해할 기회도 놓치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외로움을 느끼고 상처를 받는 아픈 일이 생기지요. 가족은 우리를 세상과 연결해주는 관계이고 우리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10년 동안 어머니와 서로 연락을 두절한 채 살았습니다. 서로 용서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인데 이번에 한국에 소개한 ‘아쿠아리움’은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고 용서할지 다루었습니다.”(데이비드 밴)

“저는 가까운 사람들 이야기를 쓸 용기가 없었어요. 그걸 들여다보는 게 너무 힘들어서 가능하면 저로부터 먼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하고 3인칭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구상하곤 했지요. 내면에 들어앉은 과거의 제 이야기는 딱 단편 두 편에 쓴 적 있는데 나머지는 저랑 상관없는 이야기들이에요. 다 못 배우고 가난하고 무지하고 어리석고 언제나 곤경에 처해 있는 그런 사람들 이야기가 대부분이지요. 제가 아는 사람들, 쓸 수 있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저는 서른 살 넘을 때까지 대학 나온 사람을 한 번도 본 적 없어요.”(천명관)

천명관이 개인사와 관련해 딱 두 편 썼다는 단편은 ‘우이동의 봄’과 ‘봄날’. 막노동을 하며 폐암 걸린 할아버지를 봉양하던 이야기와, 이십대의 암울하지만 애틋한 추억이 음악다방 디제이박스와 헤어진 다방 여자 이야기를 배경으로 서럽게 흐른다. 카카오스토리에 연재하고 이번에 책으로 묶어낸, 자신의 작품들 중 가장 문학적 요소가 적을지 모른다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이것이 남자 세상이다’의 저류에도 기실 페이소스가 감도는 건 단순히 인터뷰 자리에서 돌아와 저 단편들을 읽고 난 여파였을까.

일주일 동안 함께 숙식하며 각국 작가들과 어울리면서 ‘작가들의 수다’와 밤마다 열린 낭독공연은 물론 서울 야간기행, 진관사 워크숍까지 더불어 체험한 서울국제작가축제에 대한 소감을 묻자 데이비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제가 작가 세상이라는 커뮤니티의 일부가 된 것 같아 기뻤다”면서 “세계 각지에서 개최되는 70개 정도의 작가 페스티벌에 참석해보았지만 다양한 형태의 낭독공연까지 곁들여진 이 축제가 가장 독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천명관은 “등단 이후 문단에 있으면서도 항상 혼자라는 기분으로 살아왔는데 이번에 좋아하는 작가들도 만나 같이 어울려서 좋았다”면서 “작가들이 전부 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서 다른 작품을 만드는 걸 느꼈고 제 글쓰기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파트너가 여자가 아니어서 실망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데이비드는 솔직히 약간(a little bit) 실망했다며 환하게 웃었고, 천명관은 첫날 둘 다 늦게 일어나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상면했을 때 비슷한 사람들끼리 단박에 서로 알아보았다고 조용히 웃었다.

글·사진=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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