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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대북 선제타격론에 드리운 남북 '아마겟돈'의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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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16 08:00:00 수정 : 2016-10-16 10: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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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차원의 위기관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룬 ‘D-13’(2000년작)은 한번은 관람해야 하는 영화로 손꼽힌다. 이 영화는 사상 초유의 안보 위기에 직면한 미국 정부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지켰는지를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미사일을 발사하는 미 해군 이지스구축함. 미 해군 제공
러시아가 미국인 8000만명을 사망하게 할 수 있는 핵미사일 기지를 미국의 코앞인 쿠바에서 9개나 건설하면서 촉발된 쿠바 미사일 위기는 미국과 소련을 핵전쟁 직전까지 몰고 갔다. 하지만 케네디 행정부가 발휘한 고도의 리더십과 협상력, 위기관리 덕분에 CIA와 군부가 주장한 쿠바 침공을 통한 선제타격은 시행되지 않았다.

그때로부터 60여년이 지난 2016년. 잊혀져가던 선제타격론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전방위 압박과 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올해 들어 두 차례나 핵실험을 단행하자 정밀타격 방식의 ‘서지컬 스트라이크’(surgical strike)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미국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다음달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임에도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 캠프 모두 대북 선제타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는 60여년 전 협상파와 강경파로 나뉘었던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 정치권 분위기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미 해군 이지스구축함에서 SM-2 함대공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 美 정치권 “선제타격 포함한 모든 정책수단 고려”

미국 민주, 공화당 대선후보인 클린턴과 트럼프 캠프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안보 위협에 대해 대북 선제타격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커트 캠벨 전 미 국무부 차관보와 피터 후크스트라 전 미 하원 정보위원장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경제연구소(KEI) 토론에서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클린턴 캠프에서 자문을 맡고 있는 캠벨 전 차관보는 대북 선제타격론에 대해 “클린턴과 클린턴 캠프는 미국이 역내 동맹국과 긴밀히 협력해 시급히 다뤄야 할 문제가 북한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며 “우리는 이 시점에서 어떠한 선택 가능성도 테이블에서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측에서 외교안보 자문을 하고 있는 후크스트라 전 위원장도 “트럼프는 중동이든, 한반도든, 러시아든 미국의 안보에 대해서는 어떤 옵션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며 밝혔다.

미국의 전직 고위 외교관과 주한미군사령관들도 선제타격이나 대화 무용론에 가세하고 있다.

에반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수석부차관보는 이달 초 미 브루킹스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린 ‘2016년 대선과 미국의 미래’라는 글에서 “현 상황에서 대북협상을 하는 것은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는 것”이라며 “일부 인사들은 북한 핵 프로그램을 동결한 뒤 단계적으로 폐기해야한다고 하지만 비핵화를 위한 동결이 핵심인 제네바 합의나 9.19공동성명은 실패했다. 동결은 비핵화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은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향상시키고 실제로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면서 미국에 ‘우리는 기꺼이 핵전쟁을 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며 “고체연료 미사일 확보 등 북한의 선제타격 능력을 고려하면 우리가 공격을 당하기 전에 먼저 북한의 미사일 관련 시설을 선제공격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대기중인 B-2 폭격기. 미 공군 제공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도 지난 12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기습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를 위해서는 선제타격권과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선제타격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도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역량과 의지가 있다는 ‘심증’이 있다면 선제타격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마이클 멀린 전 합참의장도 최근 미국외교협회(CFR) 세미나에서 “만약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에 근접하고 미국을 위협한다면 자위적 측면에서 북한을 선제타격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대북 선제타격, 미국은 피해 없어…한국 피해 ‘눈덩이’

19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와 달리 대북 선제타격에 대해 미국 내 여론이 긍정적인 것은 북한의 공격으로 미 본토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쿠바 위기 당시에는 3메가톤 위력의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러시아의 SS-4 탄도미사일 기지가 쿠바 내에서 건설되고 있었다. 미 서부지역을 제외한 본토 전역이 사정권에 들어가는 상황에서 이를 요격할 수단은 없었다. 미국이 러시아에 핵공격을 감행하면 러시아는 쿠바에 배치한 핵미사일로 반격해 워싱턴 등 미국의 정치, 경제 중심지를 타격할 수 있었다. 이는 미국의 핵 억제력이 무력화되는 것을 의미했다. 때문에 미국은 쿠바에 배치된 러시아의 핵미사일을 제거해야 했지만 섣불리 군사작전에 나설 경우 러시아 본토의 핵미사일이 미 본토로 날아올 수 있었다. 쿠바인 망명자들을 무장시켜 쿠바로 들여보낸 ‘피그스 만 침공’이 실패한 상황에서 케네디 행정부는 군사적 모험을 감행할 여유가 없었다.

북한의 KN-14 대륙간탄도미사일. 노동신문
반면 북한은 현재 시점에서 미 본토를 직접 공격할 능력이 없다. 무수단 중거리 탄도미사일은 괌을 타격할 수 있을 뿐이며, 스커드나 노동 미사일 등은 일본 공격만 가능한 수준이다. KN-08/14 등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있지만 그 성능은 검증되지 않았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ICBM을 실전배치하지 못한 현 시점이 선제타격에 가장 좋은 시기다. 미국의 공격을 받으면 북한은 사거리 1000㎞ 이상인 탄도미사일 발사가 매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미 본토는 북한의 위협에서 자유로워지고,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 방어만 지원하면 되므로 미국 정부의 정치적 부담도 크게 줄어든다. 

시험발사되는 현무 지대지미사일. 국방부 제공
문제는 우리나라다. 미국의 선제타격은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에 집중되기 때문에 휴전선 일대에 포진한 장사정포와 방사포 전력은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 북한이 미국의 선제타격에 장사정포를 동원해 우리나라를 상대로 보복에 나설 경우 사정권에 들어가 있는 수도권은 가스관 폭발 등이 겹치면서 큰 피해가 예상된다. 특히 포탄이 도심에서 폭발해 발생하는 ‘공포’는 수도권을 아비규환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북한군의 포탄에 맞아 찢어진 사지가 거리 곳곳에 튀고 피가 강물을 이루고, 가족들이 비명조차 지를 시간도 없이 숨지고, 포탄 파편에 다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공포에 빠진 시민들은 서울을 탈출하려 도로로 쏟아져 나온다. 휴전선에서는 남북한 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외국 자본의 탈출이 시작돼 경제가 붕괴되며, 시민들은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상점가를 약탈한다. 한편에서는 패닉에 빠져 남쪽으로 피난하려는 시민들과 전선에 물자를 지원하려 북상하는 군경이 뒤엉켜 아귀다툼을 벌이는 현장에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이 날아드는, 한국판 ‘아마겟돈’이 시작되는 셈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황이지만 정부 당국은 대북 선제타격론에 한 발짝 들어선 모양새다.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10일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정부의 북한 선제타격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임박한 징후가 있을 경우엔 자위권 차원에서 선제타격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선제타격이 몰고 올 후폭풍을 고려하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케네디 행정부는 쿠바 미사일 기지를 선제타격하자는 군부의 주장을 물리치고 외교적 압박과 협상, 무력시위 등 고도의 위기관리를 통해 국민에게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고도 핵전쟁 위기를 벗어났다. 우리 정부가 따라야 할 자세는 미국의 선제타격론자들이 던지는 ‘말폭탄’이 아닌, 케네디 대통령의 냉정하고도 절제된 리더십과 위기관리다. 남북한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의 군사력을 갖추고 있다. 북한의 장사정포나 방사포, 탄도미사일은 부유하거나 힘있는 사람이라고 비켜가지 않는다. 모두가 죽음의 공포에 직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북 선제타격을 주장하기 전에 나라를 지키다 숨져간 우리의 아들들을 기리는 비석이 국립현충원을 가득 메운 모습을 상상해보라. 
북 선제타격이 얼마나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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