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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에 미친 ‘슈독’들… ‘Just Do it’ 나이키 제국 만들다

입력 : 2016-10-14 18:48:23 수정 : 2016-10-14 18: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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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나이트 지음/안세민 옮김/사회평론/2만2000원
슈독/ 필 나이트 지음/안세민 옮김/사회평론/2만2000원


24살의 청년 필 나이트는 다짐했다.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자. 멈추지 않고 계속 가는 거다. 그곳에 도달할 때까지는 멈추는 것을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그곳이 어디인지에 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말자.”

그가 훗날 이룩한 기업의 브랜드는 ‘Just Do it’. ‘그냥 하자’라는 의미의 이 말은 젊은 날의 다짐과 꼭 닮았다. ‘나이키’의 창업자 나이트의 자서전이다.

나이트의 ‘미친 짓’은 1962년 배낭여행 중 일본 운동화 회사 오니쓰카(지금의 아식스)를 찾아가 있지도 않은 회사 이름을 말하며 미국 판매권을 달라고 설득하는 것으로 구체화됐다. 육상 선수 출신인 나이트는 소비자들이 편안하고 가벼운 운동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다. 마침 미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던 오니쓰카는 미국 서부 지역 독점판매권을 줬다.

미국으로 돌아온 이듬해, 아버지의 집 지하실에서 ‘블루 리본’(나이키의 전신)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사업을 시작한다. 말이 사업이지 직원은 한 명도 없었고, 빌린 돈으로 수입한 신발 300켤레가 가진 것의 전부였다. 수입한 운동화를 스포츠용품점에서 판매할 수 없게 되자 자동차에 신발을 싣고 직접 육상대회를 찾아다니며 신발을 팔았다. 생계를 위해 다니던 회계사무소의 급여까지 사업에 투자하며 경영에 매달렸지만 창업 후 6년 동안 회사에서 월급 한 푼 가져가지 못할 만큼 어려움을 겪었다.

악전고투 속에서 그는 동료들을 만났다. 직장 상사에게 버림받았거나, 지독히 운이 없어 사회로부터 거부당한 인물들이었지만 신발에 미친 ‘슈독’(shoe dog)들이었다. 불 같은 성미만큼 운동화 개발에 열정을 가진 동업자 빌 바우어만, 운동화와 달리기의 숭배자 제프 존슨, 촉망받던 육상선수였으나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보브 우델 등은 나이트와 함께 했다. 이들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이 내 가게’라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마침내 블루 리본은 ‘아디다스’와 ‘퓨마’가 주름잡고 있던 스포츠용품 업계에서 매년 매출을 두 배씩 확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때도 그는 부족한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블루 리본에 적대적인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러 다니는 처지였다.

나이키의 시작은 1971년이었다. 나이키 론칭은 오니쓰카가 더 이상 신발을 공급하지 않으려 하자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다. 이후 스포츠 스타를 활용한 공격적 마케팅, 와플형 밑창과 에어 쿠션 등의 제품 혁신으로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어놓으며 업계의 1인자로 올라섰다. 1976년에는 회사 이름을 나이키로 변경했다.

나이트는 스스로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던 일에서 출발해 연매출 300억달러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과정을 들려준다. 자수성가한 인물들의 자서전이 늘 그렇듯 창의적인 해결 방안을 찾는 과정,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한껏 펼쳐진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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