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여왕’ 박세리(39·하나금융그룹)가 정들었던 그린과 마침내 작별을 했다. 아버지 박준철(65)씨의 권유에 따라 골프채를 잡은 지 무려 27년 만이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은퇴가 실감나지 않는다고 말하던 박세리는 13일 인천 영종도의 스카이72 골프앤 리조트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1라운드를 마친 뒤 18번홀 그린 주변에서 기다리던 동료와 포옹하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박세리는 대회 주최 측인 함영주 KEB하나은행장과 아버지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긴 포옹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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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가 13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앤 리조트에서 열린 LPGA KEB하나은행챔피언십 1라운드를 마친 뒤 은퇴식에서 동료들의 격려 메시지가 담긴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영종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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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는 “골프와 함께 한 지난 시간은 너무 행복했다.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그린 위에서 했던 것처럼 새로운 인생 이모작도 성공을 거두고 싶다”고 은퇴 소감을 밝혔다. 박세리는 2015년 초부터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하겠다고 선언했고 LPGA에서는 지난 7월 US여자오픈 2라운드를 마친 뒤 은퇴무대를 마련해줬다.
박세리는 이날 오전 10시40분 지난해 우승자인 렉시 톰프슨(21·미국), ‘중국의 박세리’라 불리는 펑샨샨(27)과 같은 조에 편성돼 마지막 티샷을 날렸다. 열렬한 팬으로 스카이 72골프장 캐디인 원정숙(46)씨가 박세리의 마지막 백을 멨다. 고질적인 어깨부상 등으로 US여자오픈 이후 골프채를 잡지 않았다는 박세리는 이날 버디 1개와 보기 9개로 8오버파 80타를 쳐 최하위인 공동 76위에 그쳤다. 박세리는 “1번홀 티샷을 한 뒤에 착잡함을 느꼈다. 하지만 경기에 잘 집중했는데 18번홀부터 눈물이 쏟아졌다. 하마터면 티샷을 못 할 뻔했다. 18번 홀 그린 위에서는 우승할 때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육상 단거리 선수로 소년체전에도 출전했던 박세리는 성적이 신통치 않자 아버지의 권유로 초등학교 6학년 때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 1997년 퀄리파잉스쿨을 거쳐 1998년 LPGA무대에 데뷔해 메이저 대회 5승을 포함해 25승을 거두는 등 한국여자 골프의 시대를 박세리 이전과 이후로 나눌 정도로 박세리의 업적은 엄청났다. 1998년 5월 메이저대회 맥도날드 LPGA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한 박세리는 LPGA 최고 권위의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는 연못에 맨발로 들어가 샷을 날리는 투혼을 보여주면서 정상에 올랐다. 박세리를 얘기할 때 외환위기로 침울했던 한국 국민에게 큰 용기와 감동을 줬던 ‘맨발의 샷’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장면을 보고 골프를 시작한 소녀들이 대거 생겨났고 이들이 현재 LPGA를 점령하고 있는 ‘세리키즈’다.
한편 재미교포인 프로 2년차 앨리슨 리는 이날 7언더파 65타를 쳐 선두에 나섰다.
인천=박병헌 선임기자 bonanza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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