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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통제 이데올로기 ‘아름다움의 신화’

입력 : 2016-10-08 03:00:00 수정 : 2016-10-07 20: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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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개인적 용모가 평가 잣대된 사회
앞다퉈 다이어트하고 성형병원 찾고…
‘아름다움 강요하는 사회’에 감춰진 진실
저자 “남성 지배 온존시키는 가장 좋은 신념”
일·종교·문화 6가지 영역 나눠 날선 비판
나오미 울프 지음/윤길순 옮김/김영사/1만9000원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나오미 울프 지음/윤길순 옮김/김영사/1만9000원


포털사이트의 메인페이지에 한참 동안 올라 있는 한 여배우의 사진. 사진만 봐도 여배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한눈에 들어오는데 제목은 그걸 또 굳이 강조한다.

“행인들 시선을 붙잡는 미모.” “무결점 비주얼.” “공항 발칵 뒤집은 절세미모.”

여성 연예인의 미모에 대한 흔해 빠진 찬사다. 그중에서 ‘여신’은 최상급이다. 영화제나 시상식이라도 열리는 날 포털의 이미지 기사를 보면 여신이 흘러넘쳐 올림푸스에라도 온 듯하다. ‘아름다움의 신화’라고나 할까. 

페미니스트로 유명한 저자는 아름다움의 신화가 불편하다. 아름다움은 “현대 서양에서는 그것이 남성의 지배를 온존시키는 마지막 남은 가장 좋은 신념 체계”이며 “문화적으로 강요된 신체 기준에 따라 여성의 가치를 매겨 수직으로 줄을 세운다는 점에서 권력 관계의 표현”이라고 분석한다. 책은 여성에게 ‘강요된’(!) 아름다움이 일·문화·종교·섹스·굶주림·폭력의 6가지 영역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날선 시각으로 분석한다.

흔히 여성의 아름다움은 유사 이래 계속된 생물학적, 성적, 진화론적인 당연한 현상으로 간주된다. 또 여성에게 아름다움이란 객관적,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남성이 아름다운 여성을 차지하려고 싸우니 아름다운 여성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름다움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대체로 허구다. 저자에 따르면 여성이 현대적인 형태의 아름다움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아무리 멀리 잡아도 1830년대다. 산업화라는 대격변 속에서 여성이 대거 가정에서 탈출했을 즈음이다. 전통의 제약과 금기, 법의 처벌, 종교적 명령, 임산과 출산의 노예화는 여성을 통제할 만한 힘을 상실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남성이 지배하는 제도들이 여성의 자유로부터 위협을 받았고, 정치적인 지배에 위기를 느낀 남성들은 아름다움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저자는 따라서 “아름다움의 신화는 언제나 외모가 아니라 실은 행동을 처방하려고 했다”고 주장한다.

아름다움을 강요해 여성을 통제하는 방식을 가장 흔하게 목격할 수 있는 분야가 ‘일’이다. 저자는 ‘PBQ’(professional beauty qualification)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직업에 필요한 아름다움이라는 자격 조건’을 이른다. 노동시장은 아름다움의 신화를 다듬어 여성에 대한 고용 차별을 정당화했다. ‘TV저널리즘’에 대한 분석이 특히 흥미롭다. 시청자들이 매일 보는 뉴스에는 “삼촌 같은 남성 앵커에 한참 어리고 직업적 미인 수준으로 예쁜 여성 캐스터”가 화면을 채운다. “나이 든 남성 옆에 성적 매력이 있는 젊은 여성이 진하게 화장하고 있는 모습이 직장에서 남성과 여성 관계의 패러다임”이다. TV에 나오는 여성의 처지는 직업에 필요한 아름다움이라는 자격 조건 일반을 상징하고 강화한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직장에서 맺어지는 이런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아름다우면 일을 못해도 눈에 들어온다. 일을 잘하는데 아름다우면 실력보다 아름다움으로 평가된다. 일을 잘해도 아름답지 않다면? 눈에 보이지 않아 실력이 있어도 소용없다. 게다가 아무리 일을 잘하고 아름다워도 나이가 들면 사라질 수 있다.

출판사는 이 책이 페미니스트 운동이 백인 이외의 여성이나 동성애 문제 등으로 관심의 폭을 넓혀가던 1990년대에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소개한다. 책이 나오고 30년 가까이 지난 만큼 저자의 날카로운 비평은 각론에서 현실과 배치되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사회적 욕구는 세계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라는 건 너무나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날로 번성하는 다이어트 산업이다. 각종 미디어에서 “거의 굶주리는 수준으로 먹는 기아식에 대해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또 여성이 주고객인 성형수술병원이 성업 중이다. 넘쳐나는 잡지와 영화, 광고 등은 아름다움의 신화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저자는 남성 역시 아름다움 신화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미용 산업은 남녀 모두의 성적인 자신감을 흔들면 효과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남성을 시장의 새로운 고객으로 유인하고 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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