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굴만 보면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여느 고교생과 다름없다. 그러나 키가 무려 2m2. 길게 쭉쭉 뻗은 두 팔과 두 다리, 선명한 복근만 보면 ‘이런 게 바로 국가대표의 몸이지’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지난해 10월 선발한 대학생-고교생 위주의 국가대표 14명의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임동혁(17·제천산업고) 얘기다. 지난해 만 16세였던 임동혁은 1977년 장윤창(당시 만 17세) 교수의 ‘최연소 국가대표’ 기록을 38년 만에 갈아치웠다.
이후에도 꾸준히 각급 국가대표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임동혁은 22일부터 28일까지 태국 나콘빠톰에서 열리고 있는 제 5회 AVC(아시아배구연맹)컵에도 출전 중이다. 양 어깨에 한국 남자배구의 미래를 짊어지고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는진 임동혁에게 배구와 국가대표 타이틀은 어떤 의미일까.
인터뷰 요청을 하자 임동혁은 “이번 대회에선 진짜 인터뷰할 자격 없어요”라며 손사래 쳤다. 그의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임동혁은 22일 조별 예선 3경기 도합 5점에 그쳤고, 26일 대만과의 8강전에선 내내 벤치만 지키며 성인 선수들과 비교해 부족한 파워와 기량을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임동혁은 “그래도 청소년 국가대표에서는 제가 에이스의 역할을 해야 해서 부담이 크지만, 이번 대회엔 형들이 있어 의지도 되고 부담이 적어서 좋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어 “형들이 훈련이나 미팅 때 ‘넌 아직 어리니까 충분히 대형 선수가 될 수 있다’고 격려해준다”면서 “사실 이번 대표팀에 합류한 뒤 잘하는 형들 사이에서 배구가 잘 안돼 슬럼프에 빠졌었다. 그때마다 격려해준 부모님과 주변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덧붙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테니스 선수로 운동을 시작한 임동혁은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 덕에 배구 선수로 발탁됐고, 이후 승승장구하며 마침내 ‘최연소 국가대표’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임동혁은 “중학교 은사님이셨던 김광태 감독님과 백규선 코치님이 고등학교에도 지도해주고 계신다. 내가 배구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 분들 덕분”이라고 감사함을 전했다. 최연소 국가대표 타이틀에 대해선 “많은 분들이 ‘이제 앞날 폈다’며 축하해줬지만, 아직 부족하다. 키가 큰 덕에 뽑히는 거지 실력은 아직 모자르다”라며 쑥쓰러워했다. 이어 “그 타이틀이 지금도 많이 부담된다. 그래도 지난 7월 열린 아시아 U-20대회 일본과의 3-4위전에서 30득점을 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면서 실력은 조금은 증명한 것 같아 부담이 줄었다”고 덧붙였다.
임동혁 본인 스스로 꼽는 배구선수로서의 장단점을 묻자 “큰 키와 유연성, 점프력은 자신 있다. 다만 스윙이 크고, 옆으로 때리는 폼이라 고쳐야 한다. 대학이나 프로, 국가대표팀 등 큰 무대에선 지금 스윙폼으론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처음엔 스윙폼을 고치라는 말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다. 이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도 오랜 습관이라 잘 안 된다”고 설명했다.
임동혁의 롤모델은 현대캐피탈의 토종 주포이자 국가대표 라이트 문성민(30)이란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제일 좋아했던 선수다. 문성민 선수를 보면 이기고 있든 지고 있든 항상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이 멋지다. 개인적으로도 팀 분위기가 처지는 것을 싫어해서 항상 파이팅을 많이 외치는 편이다”라고 답했다. 이어 “문성민의 선수의 빠른 발과 간결하면서 빠른 스윙폼 등을 배우고 싶다. 나도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현재 고2인 임동혁은 내년이면 대학 진학이냐, 프로 직행이냐를 선택해야 한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대학에 진학하지만, 고교 졸업 후 프로에 직행한 정지석(대한항공)은 프로 3년차였던 지난 시즌 국가대표급 선수로 성장한 사례도 있다. 프로의 체계적인 관리 하에서 기량을 갈고 닦는 게 선수로서는 더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임동혁은 “주변의 의견은 반반이다. 대학교 가서 많은 경기를 소화하느라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며 프로에 가서 구단들의 체계적인 관리를 받으라는 조언도 많이 해 주신다”면서 “우선 고3이 되는 내년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먼저다”라고 답했다. 이어 “부족한 살림에서도 제 부탁은 다 들어주시고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어머니께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 마음이 내가 배구를 열심히 하게 되는 첫 번째 동기다. 어머니께 보답하려면 프로로 직행해 빨리 돈을 버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만 또 한편으로는 지금 학교 동기 3명이 있는데 이 친구들과 같은 대학교에 진학해서 배구를 함께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결국 내년에 좋은 성적을 내는 게 먼저다. 그런 이후에 부모님 의견 등을 다 들어보고 결정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임동혁은 끝으로 자신의 성장을 지켜보는 팬들에게도 한 마디 전했다. “제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아직은 성장하는 과정이니 지적보다는 따듯한 응원을 받고 싶습니다”
나콘빠톰(태국)=남정훈 기자 che@segye.com
사진= 남정훈 기자, 아시아배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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