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중 공청회·정책권고 준비

응호씨 사례는 일이 고되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의 상황을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20일 국가인권위원회의 ‘2015년 건설업 종사 외국인 근로자 인권 상황 실태조사’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건설업계의 외국인 근로자들은 공공연한 인권 침해와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일용직이나 미등록 취업자가 많아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기 힘든 건설업계의 외국인 근로자와 중국 동포의 인권 상황 실태를 직접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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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에 따르면 건설업에 종사하는 베트남·중국·캄보디아·태국인과 중국 동포 총 339명(불법 취업자 포함)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호씨처럼 임금이 제때 지급되지 않은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36.9%를 차지했다. 임금 체불 기간은 1개월 미만이 47.9%로 가장 많았으며 △1∼3개월(39.3%) △4∼6개월(6.8%) △1년 이상(5.1%) △7∼11개월(0.9%) 순이었다.
작업장 내 인권침해도 우려스러운 수준이었다. 조롱이나 욕설을 들은 적 있다는 경우가 49.7%에 달했다. 이 중 92.1%는 가해자가 한국인이라고 답했다. 특히 조롱이나 욕설을 당한 비율이 외국인 근로자(62.7%)가 중국 동포(30.4%)의 갑절인 것에 비춰 의사 소통이 잘 안 될수록 막말 피해를 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15.7%였고 가해자도 대부분 한국인(84.4%)이었다. 물리적 폭력 피해 비율 역시 외국인 근로자(21.4%)가 중국 동포(7.4%)보다 3배가량 높았다. 보고서는 “우리 사회가 피부색 등을 기준으로 소수자 개개인의 노동력을 획일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한국 사회의 낮은 인권 의식 수준을 꼬집었다.
작업장에서 부상한 응답자는 24.1%였으며, 이 중 69.9%는 산재보험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부상 사고가 난 이유(중복 응답)로는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해야 해서’(24.4%)가 가장 많았고, ‘필요한 안전 장비 없이 작업해서’(19.2%)와 ‘작업기구에 안전 설비가 돼 있지 않아서’(10.3%)라는 답변도 적지 않았다.
근무 여건 또한 열악했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하루 평균 근로시간과 휴게 시간은 각각 10시간48분, 1시간25분3초(점심시간 1시간 포함)였고 평균 일당은 10만4105원(지난해 8월 기준)으로 조사됐다. 외국인 근로자 평균 일당(8만5175원)은 중국 동포(13만550원)보다 5만원 정도 적었다.
건설업계 외국인 근로자 수가 최소 6만4000명, 최대 25만명으로 추산되는 점을 감안하면 수만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 용역을 수행한 IOM(국제이주기구) 이민정책연구원은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 보호는 산업 전반에 인간적인 근로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며 △건설업 특수성을 반영한 표준 근로계약서 개발 △임금공시제 혹은 적정임금제 도입 △내국인 대상 인권교육 강화 등을 제안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건설업계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해 보고서를 토대로 다음 달 말이나 오는 11월쯤 공청회를 열고 11월 말까지 정책 권고를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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