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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사회에 나오는 순간부터 '퇴행'하는 발달장애인

입력 : 2016-09-07 21:48:59 수정 : 2016-09-07 22: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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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도 재활도 어려워 ‘발달장애인 힘겨운 홀로서기’… 부모들 한숨만 / 고교 졸업 이후 사회적 서비스 종료/ 취업률 17%… 그나마 1년도 못 버텨 / 15만 중 보호시설 수용인원 1만명뿐/ 자식 크면 부모 한 명은 일 그만 둬야
“붙을 수 있을까 걱정이네요.” “우리 애는 떨어졌어요. 다른 곳도 어려울 것 같아요. 집에서 데리고 있는 수밖에 없네요.” 수험생이나 취업준비생 부모의 대화가 아니다. 성인 발달장애인을 둔 부모들의 대화다. 고등학교 졸업일이 다가오는 시점부터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3년에서 5년 주기의 ‘입소지옥’을 겪는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사회적 서비스가 턱없이 부족해 일어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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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발달장애인은 전체 발달장애인(21만855명) 중 72.5%(15만2790명)를 차지한다. 이들은 인지와 의사소통, 사회적 상호능력이 부족해 평생 돌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발달장애인이 학령기에 제도권에서 미흡하나마 이용할 수 있었던 교육과 의료, 지역사회 이용시설 등의 서비스는 성인이 되면 대부분 종료된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들의 선택지는 세 가지뿐이다. 특수학교 내 전공과에 진학하거나 직업재활훈련시설 또는 주간보호센터로 가는 것이다. 전공과에서는 고등학교 과정 졸업 후에도 2년간 직업재활훈련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생활기능 교육을 받는다. 학교당 1~2반, 10여명씩 제한을 두고 있어 갈 수 있는 인원은 2%인 4000여명에 불과하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다. 

다음으로 보호작업장이나 직업재활시설에 갈 수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장애인 재활작업장의 경우 성과와 효율성, 관리의 편의성 때문에 생산성이 떨어지는 중증 발달장애인들은 작업장에서 밀려나기 일쑤다. 자폐성 장애 아들(21)을 둔 김모(46)씨는 “아들은 그나마 일을 할 수 있는 정도여서 복지관에서 직업재활훈련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면서도 “취업에 나갈 수 있는 경우도 30∼40%에 불과한 데다 취업해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1년 안에 퇴사하는 경우가 많아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말했다.

2014년 발달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의 취업률은 17.1% 정도다. 월평균 급여는 51만원. 발달장애인은 전체 15개 장애유형 중 임금은 가장 낮고 근속기간은 가장 짧았다. 직장에 취업한 이후에 생기는 문제나 퇴직한 이후의 문제는 전혀 논의되지도, 고려하지도 않는다.

직업재활시설에 가지 못할 정도로 기능이 떨어지는 발달장애인들은 주간보호센터와 같은 시설에 간다. 그마저도 자리가 있을 때 이야기다. 단순히 돌봐주는 보호시설마저도 수용 인원이 1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무연고자나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면 입소가 어렵다.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발달장애인을 받아주지 않기도 한다. 장애인복지사업이 대폭 지자체로 이양되면서 입소조건은 더 까다로워졌다.

입소해도 머물 수 있는 시간은 평균 3년이다. 어느 시설이나 대기자가 넘쳐난다. 자폐성 장애 1급인 딸(21)을 둔 박모(50)씨는 “한 시설에 입소하고 나면 바로 다른 시설을 찾아야 한다”며 “1~3년의 대기기간을 생각해 이용 대상 연령대가 아닌 때부터 대기자 명단에 올려두기도 한다”고 말했다. 중증 장애인들의 보호자들은 시설에 들어가도 안심할 수 없다. 폭력을 휘두르는 등의 돌발행동을 하면 쫓겨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다른 시설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 지적장애 1급 아들(25)을 둔 최모(57)씨는 “마지막으로 보낸 시설에서도 보름 만에 퇴소결정을 받았다”며 “맞벌이 가정이었는데, 둘 중 한 명은 일을 그만둬야 할 형편”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주간보호시설이나 장애인복지관 등을 이용하고, 취업자를 뺀 80%가량의 성인 발달장애인은 오갈 데가 없다. 부모가 24시간 돌볼 수밖에 없다. 발달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적장애의 경우 65.3%는 주로 부모가 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었고, 자폐는 부모가 돌보는 비율이 82.9%에 달했다.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지만 생활이 어려운 가정이거나 한부모가정일 경우 더욱 암담하다. 부양의무제에 따라 소득이 있는 가족이 있으면 1급 중증장애인이라도 기초급여 대상이 안된다. 아이를 두고 일을 나갈 수도 없고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가정이 모든 부담을 떠맡게 된다.

아이의 덩치는 커지지만 부모는 늙어간다. 극단적 선택은 발달장애인 가정에서는 남의 일이 아니다. 발달장애인 보호자의 우울지수는 일반인의 3배가 넘는다. 학령기 동안 그나마 체계적인 학습 프로그램으로 조금씩 나아지던 발달장애인들은 사회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퇴행한다. 정부가 세금을 들여 십수년간 해왔던 모든 것들이 무용지물이 돼 버리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답답한 마음에 부모들이 나서 발달장애인을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이나 일자리를 만들기도 한다. 부산의 발달장애인 전문기관인 나사함복지관, 서울의 베어베터(인쇄물과 쿠키, 커피, 꽃다발), 성미산공방(양모펠트와 찜질팩)이 대표적이다. 이는 성공한 사례로, 지역 주민들의 반대나 지자체의 미온적 태도에 부딪혀 설립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나사함복지관도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시설을 건립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발달장애인지원법이 지난해부터 시행됐지만 지자체들의 세부지원 방안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전체 등록장애인의 8%에 불과한 데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어려워 예산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올해 책정된 예산은 94억4000만원으로, 당초 법 제정 당시 추계한 예산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지원서비스가 양적·질적으로 늘어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권오형 중앙장애아동 발달장애인지원센터장은 “발달장애인이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맞는 직업과 거주형태,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 스스로 돕는 발달장애인 자조단체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울산=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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