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쏭달쏭 종잡을 수 없는 표정이다. tvN 금토드라마 '굿와이프'에서 선악이 공존하는 이중성을 지닌 이태준으로 열연한 배우 유지태의 얼굴에 다양한 모습이 내비쳤다. 야망을 위해 주저 없이 아내 김혜경(전도연 분)을 이용하면서도 혜경의 말 한마디에 휘청이는 약한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악역이지만, 선악을 가늠하기 힘든 양면성을 지닌 캐릭터다. 일명 '쓰랑꾼(쓰레기+사랑꾼)'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인상적인 캐릭터로 남았다.
"태준은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장검사예요.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면 불법도 불가피하다 생각하죠. 대의를 위해 더 큰 힘을 갖는 것이 정의라고 믿는 남자로, 아내 혜경 역시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인물이에요. 사실 태준이 드라마에서 보고 싶은 인물은 아니잖아요. 굳이 드라마에서까지 이토록 현실적인 인물을 연기해야 하나 생각도 했지만 영화보다 대사량과 신이 많으니 충분히 설득할 만한 연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유지태는 '태준이 실제 인물이라면?'이란 가정에 "싫다"고 단호히 선을 그었다. 그는 "무언가 전전긍긍하고 야망을 불태우는 모습이 너무 먼 당신"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 가운데 태준이 입체적 캐릭터로 많은 이에게 받아들여진 것은 뜻밖의 수확임은 부정하지 않았다.
"태준이 스펙트럼을 지닌 역할이라는 건 분명했고, 이를 잘 보여주고 싶었어요. 연기적으로 다른 부분을 보이고, 입체적으로 그리고 싶었죠. 하지만 이런 반응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유지태는 부부로 호흡 맞춘 전도연에 대해 "역시 칸의 여왕이었다"는 말로 감탄을 드러냈다. 아울러 전도연과 현장에서 숨 쉰 시간은 배우로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털어놨다.
"기대감이 컸어요. 내 앞에 전도연이 있을 거라는 게 흥분되고 기대되더라고요. 역시 '칸의 여왕'이었어요. 선배가 초반 촬영하면서 '이게 진짜 감정인지 모르겠다'고 자문하더라고요. 저 나이와 경력에 아직까지 진짜 감정을 고민하고 표현하려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선배가 '자신이 느낀 감정을 오롯이 상대배우가 느끼면 좋겠다'며 상대배우의 리액션에 같이 눈시울 붉혀주는 모습도요. 이러니 상대배우의 진가도 발휘되는구나 싶더라고요."
'굿 와이프'는 다소 파격적인 결말로 끝났다. 혜경이 연인 중원(윤계상 분) 곁에 남으며 성공한 변호사가 되지만, 남편 중원과 쇼윈도 부부 생활을 유지하는 결말은 한국 정서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결말이다. 이에 유지태는 "생각했던 결말은 아니었다"며 "혜경이 좀더 주체적이길 바랐다. 도피까지는 아니더라도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든지 혜경의 인생에 초점이 맞춰지길 원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유지태는 제작진의 선택을 존중하며, 그런 측면에서 만족스런 결말이었노라 털어놨다.
"제작진이 정말 고민을 많이 했겠다 싶었어요. 16부 대본이 너무 늦게 나와서 불안함을 느낄 정도였어요. 대본을 받아본 순간 연설하는 장면 등 대사량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만큼 결말에 대한 제작진의 고민이 많았던 거고요. 쇼윈도 부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어서 그렇게 표현되어야 했을까 생각도 했지만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온 결말이니 만족스러워요."
유지태는 배우이자 연출자로서 작품을 향한 애정과 열정을 쏟고 있다. 그의 이름에 따라붙는 '감독' 수식어는 더이상 낯설지 않다. 그는 "감독 위치가 어렵고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에 누구보다 감독을 존중한다"며 "마지막까지도 감독 편에 서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가 작품을 대할 때 보인 진지함은 가족을 이야기할 때도 그대로 묻어났다. 유지태는 아내인 배우 김효진의 복귀 계획을 묻자 "아내가 아들이 3살 될 때까지는 꼭 옆에 있어주고 싶다고 했다"며 "아이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함께하길 바란다"고 답했다. 이어 "아이가 이제 말하기 시작했다. 너무 예쁜데 작품 활동하느라 아기를 자주 보지 못한다"며 애틋한 아빠의 모습을 보였다.
명예와 가족 중에 망설임 없이 가족을 택할 만큼 그가 가족에 갖는 애정은 남다르다. 가족을 대하는 신념도 확고하다. 유지태는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에서 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구속 없이 그때그때 감정을 사랑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며 "결혼해 상대방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한다면 불행하지 않은가. 상대에 대한 희생을 강요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전했다. 아들을 미디어에 노출하지 않는 것도 아들 인생을 위한 속 깊은 배려가 깔려있다.
"아들이 배우 하고 싶다고 하면 밀어주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창의적인 직업을 선택하면 좋겠어요. 사회가 만들어놓은 직업군이나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았으면 해요. 다양함을 꿈꿀 수 있는 세상인데 체제에 머리 조아리는 건 원치 않아요. 아이를 방송에 노출하지 않는 것도 아들 인생을 미리 만들고 싶지 않아서죠. 아들이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생기고 주도적으로 뭔가 펼치고자 할 때 도움 주고 싶어요.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사진=나무엑터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