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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80년대 생활문화사… 기억 저편 삶의 흔적들

입력 : 2016-09-03 03:00:00 수정 : 2016-09-02 20: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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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등 지음/창비/각권 1만6500원
한국현대생활문화사(전4권)/김경일 등 지음/창비/각권 1만6500원


1979년 7월 19일 서울의 한양여고에서 학생들의 농성이 있었다. 교련 검열 대비 훈련이 한 달 가까이 진행되면서 강도 높게 진행되자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다. 여고생들의 농성은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으나 “유신체제의 붕괴를 알리는 전조 중 하나”였다. 허은 고려대 교수는 “여고생들의 농성은 학교를 유신체제에 순응하는 인간형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만들고자 한 박정희 정권의 프로젝트가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설명한다.

신문에 짤막하게 소개됐을 뿐인 이 사건에 이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유신시대의 학교가 지배체제 재생산의 중요한 거점이라는 분석에서 비롯된다. 당시 학교는 정권의 최대 관심사인 반공을 교육하는 근거지였고, “국가지상주의 사고와 태도를 철저히 받아들인 국민”을 양성하는 기관이었다. 특히 강조한 것이 ‘생활화’였다. 학교환경, 수업, 특별활동 등과 ‘학원의 병영화’를 통해 학생들의 의식과 일상을 세밀하게 규율해 가려 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정권이 주입하려 한 이념을 저항 없이 내면화한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반유신 민주화운동과 1980년대 전반기 민주화운동에 동참한 수많은 학생들이 유신시대에 중등과정을 마쳤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런 결론이 자연스럽다. 이들은 권력의 강압에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있었을 뿐 사회현실에 대해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것이 박정희 정권의 몰락과 함께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다.

같은 1970년대 북한의 ‘음악정치’에서도 권력의 비슷한 의도가 읽힌다. 북한에서는 1970년대 초반 김정일의 주도로 항일혁명문학예술 작품을 영화, 가극, 연극 등으로 재생산하고 여기서 고양된 감정과 사회적 일체감을 노동현장으로 확대하려 한 시도가 활발하게 전개됐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가극 ‘피바다’, ‘꽃파는 처녀’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북한은 이런 작품들을 수시로 공연해 인민들이 주인공의 삶을 현실에서도 실현해 나가도록 강요했다. 그것은 “항일무장대원들처럼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이겨내고 목표한 생산량을 속도전식으로 달성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성공은 지금도 “대중적 영웅주의를 불러일으킨 자랑스러운 대중운동의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32명의 전문가가 참여해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생활문화사를 정리한 책은 정치사 중심의 통사를 넘어서 당대인들의 직접 겪은 체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허 교수의 1970년대 유신시대의 학교 분석은 지금의 40대들도 자신의 경험을 따라 책을 읽을 수 있다. 음악정치를 다룬 부분은 정치적인 변화 속에서 북한 사람들의 일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북한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책을 기획한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는 “참여 저자들은 역사학, 정치학, 사회학, 문화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공부를 해온 사람들”이라며 “한국현대사를 좀 더 다양하고 복합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글들을 실었다”고 소개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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