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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홈리스’와 ‘노숙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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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8-21 22:23:01 수정 : 2016-08-21 23: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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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계속 ‘홈리스(homeless)’라고 하세요? 우리말로 노숙인이라고 하는 게 낫지 않아요?”

지난달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홈리스월드컵’ 관련 취재를 하다가 노숙인 지원을 위한 잡지 ‘빅이슈’의 실무자와 대화하던 중 무심코 이런 질문을 던졌다. 빅이슈는 홈리스월드컵에 출전할 한국팀 선수들을 선발하고 지원하는 일도 맡고 있다. 순간 그 실무자의 얼굴에 난감함이 스쳤다. 잠시 고민하던 그의 설명을 듣고, 홈리스월드컵에 대한 공부를 좀 더 하고 보니 홈리스와 노숙인은 용어 이상의 큰 차이가 있음을 실감하게 됐다.

김준영 사회부 기자
유엔 해비타트의 ‘홈리스 대응 전략 보고서(2000년)’에 따르면 ‘홈(home)’이란 용어는 가족뿐 아니라 이웃, 친구 등의 개념을 포함한다. 미국에서는 보호와 치료 등의 목적으로 임시 거주지에 있거나 퇴거 위기에 있는 거주자도 홈리스이고, 영국에서는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잠재적 홈리스’로 보기도 한다. 호주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거나 사회·경제적 지원에서 소외된 사람을 포괄하며, 헝가리는 고아원 입소자나 무단점거자, 계약 만료에 다다른 임대인 등까지 홈리스로 규정한다. 요컨대 홈리스는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가족과 휴식, 위안 등을 아우르는 ‘홈’을 상실한 사람들이다.

반면 홈리스의 개념을 우리처럼 물리적 주거에 한정해 ‘노숙인’이라고 부르는 나라들도 있다. 주로 개발도상국가가 그렇다.

물리적 공간의 유무보다 가정의 가치를 기준으로 홈리스를 따지는 국가들은 이에 대한 해결 방법도 사회적·공동체적으로 접근할 뿐 아니라 예방적·장기적 해결책을 고민하게 된다. 이에 비해 국내 노숙인 대책은 명목상 ‘자활’을 부르짖지만 대부분 ‘일시적 시혜’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이다. 같은 맥락에서 홈리스월드컵 참가만 해도 국내에서는 일회적인 이벤트성 행사로 보는 데 반해 주요 선진국에서는 홈리스의 구제를 위한 사회적 시스템의 일부로 작용한다.

홈리스월드컵 대표 선수를 비롯해 국내 노숙인들을 만나보면 실직자나 고아원 출신, 장애인 등이 적지 않다.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랐거나 불의의 사고 등을 겪고 사회에서 낙오된 뒤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다.

얼마 전 서울의 한 자치구는 노숙인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려고 ‘노숙인’ 대체 명칭을 찾기 위한 공모전을 열었다가 흐지부지됐다. 해당 자치구나 공모전 참여자 모두 노숙인을 그저 ‘도와줘야 할 딱한 처지의 사람’으로 생각한 탓이 컸다고 본다.

노숙인 문제를 사회적 차원이 아닌 개인적 차원에 국한할 경우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는 얘기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든 엄동설한의 겨울이든 많은 노숙인이 거리를 배회하는 이유이다. 노숙인에 대한 개념정리부터 다시 하고 이들을 위한 ‘홈리스 대책’을 제대로 만드는 게 어떨까.

김준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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