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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의 월드줌人] "정의의 실패…미안합니다" 어느 판사의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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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8-12 14:45:00 수정 : 2016-08-12 16: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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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탈을 쓴 늑대를 심판하던 잉글랜드의 한 판사가 피해자 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그는 정의 실현의 실패로 피해자들의 고통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지난 세월을 정말로 미안해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영국 BBC와 가디언 등 외신들에 따르면 앞선 10일 성폭행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직 신부의 선고공판을 앞둔 울리치 형사법원 크리스토퍼 헤이르 판사가 법정에 들어선 피해자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고개 숙였다.

“미안합니다. 여러분이 1998년과 1999년, 두 차례에 걸쳐 법원에 왔을 때 정의는 당신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습니다.”



한 피해자는 과거의 아픔이 생각났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가해자가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저지른 범행을 상상할 수 있다”며 “결코 그날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고, 영원히 자유로워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템플은 반(反)사회적 인격을 가진 악랄한 거짓말쟁이였다”고 덧붙였다.

 

영국 BBC와 인터뷰 중인 피해자


1970년대 런던 남부의 한 어린이 보호소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필립 템플(66)은 아이들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았다. 그는 이 같은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자 사회복지사를 그만뒀으며, 1981년에 수도원에 들어간 뒤 1987년 사제서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템플은 신부가 된 후에도 성당 축제를 비롯한 여러 자리에서 복사단 소년을 비롯, 어린이를 상대로 또다시 나쁜 짓을 저질렀다.

아이들을 성 노리개로 삼았던 템플은 1998년과 1999년, 두 차례 재판에 섰으나 첫 재판에서는 법원이 평결을 내리지 못한 데 이어 두 번째 재판에서는 무죄판결이 나오면서 자유의 몸이 됐다.

 
필립 템플


1999년 교구가 템플의 신부 자격을 정지한 데 이어 그를 제명하면서 모든 일은 끝나는 듯 했다. 그러나 지난해 런던 경찰청이 해당 사건들을 재조사하면서 템플은 쇠고랑을 찼다.

템플은 처음에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추가 조사에 이어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진술이 이어지자 자신의 죄를 모두 인정했다. 그렇게 템플은 최초로 범행을 저지른 지 40여년이 흘러서야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헤이르 판사는 “템플은 아이들을 성 노리개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의 진술에도 자신의 죄를 완강히 부인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진실된 모습을 보여야 할 성직자로서 범행을 저질렀다”며 “양의 탈을 쓴 늑대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판사지만, 이때만큼은 템플의 악행 앞에 분노한 한명의 시민이었다.



앞서 아픔을 호소했던 피해자는 “어린시절을 모두 잃고 말았다”며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그때의 나와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보면,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고 조용히 말했다.

이날 헤이르 판사는 템플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사진=영국 가디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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