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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길] “과거 연연하지 말고… 미래 창조로 인재 길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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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7-15 20:58:12 수정 : 2016-07-15 23: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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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전의 꿈 이룬 김도연 포스텍 총장 포스텍(포항공대) 김도연 총장은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전도사’로 불린다.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김 총장은 “앞으로 20∼30년만 지나도 우리의 삶이 어마어마하게 바뀔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명박정부 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으로 3년 동안 ‘외도’한 것을 제외하고 평생을 교수로 지내고 있다. 교수라는 외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학 발전이 곧 국가 발전”이라는 신념을 잠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 대학이 학문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사회에 이바지하는 주춧돌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신념은 왕성한 연구활동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2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전도사’로 불리는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4차 산업혁명은 무엇보다 일자리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므로 지금의 교육, 특히 평가방식으로는 학생들이 창의성을 기르기 어렵다”고 말한다.
서상배 선임기자
김 총장은 공학인들이 학문의 성격상 대체로 경직된 사고를 갖고 있는 것과는 달리 주변과 부하 직원의 의견을 경청하는 부드러운 리더십을 갖고 있다. 이는 그가 서울대 공과대학장 시절에는 공대 학생들의 결혼식 주례를 도맡다시피 한 데서 알 수 있다.

화제를 돌려 다시 4차 산업혁명으로 돌아갔다. 한국의 4차 산업혁명의 전도사로 불리는 김 총장은 4차 산업혁명이 무엇보다 일자리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경제포럼 보고서도 향후 5년간 전 세계에서 약 70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약 2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김 총장은 “4차 산업혁명은 모든 산업 분야와 직종에 걸쳐 노동의 본질과 직업체계를 재편할 것”이라며 “초등학생의 65%가 지금 존재하지 않는 직종에 근무할 것이라는 조사가 있을 정도로 일자리가 지금과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자리의 종류뿐 아니라 주당 근로시간도 20시간 정도로 줄어드는 등 변화가 예상된다”며 “직업과 근로에 대한 개인의 가치관도 이러한 변화에 맞춰 바뀔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4차 산업혁명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인류의 삶 전반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의 창시자 클라우스 슈밥은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시작됐다”며 “변화의 규모와 범위, 복잡성을 미루어볼 때 과거 인류가 겪었던 그 무엇과도 다르다”고 평가하고 있다.

김 총장은 이처럼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물리학과 화학, 공학 등 특정 학문의 전문지식이 아니라 개인의 창의성과 총체적 역량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총장으로 재직 중인 포스텍에 올해부터 하계사회경험(SES)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SES는 학생들의 여름방학을 기존 2개월에서 3개월로 늘려 국내외 기업이나 연구소 등에서 인턴십을 통해 사회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한 프로그램이다. 이뿐 아니라 봉사활동 동아리와 조정팀도 창단해 학생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끔 배려했다.

2013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시절의 김 총장.
세계일보 자료사진
김 총장은 우리나라 대부분 대학들이 수십년째 같은 형태의 강의와 연구 시스템을 이어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대학이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사회의 기대와 대학이 배출하는 인재 사이에 괴리감이 커진다는 지적이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학문 간 융합 등 학부 교육혁신이 매우 중요하다”며 “대학생들이 전공 공부뿐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과 체력을 기를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육방식 역시 무크(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를 확대하는 등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중·고등학교 과정에서도 학생들의 창의력을 높이고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김 총장은 덧붙였다. 그는 “지난 30여년 동안 안 해본 교육정책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급변했기 때문”이라며 “교육은 정책이 시행된 지 1∼2년 지났다고 해서 성과를 거두는 게 아니라 10년이 걸릴 수도, 20년이 걸릴 수도 있는 분야인데 지금까지 정부가 교육을 너무 근시안적으로 봤다”고 지적했다.

그 역시 국가의 백년대계를 책임지는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했으나 뜻을 채 펴보기도 전에 물러난 경험이 있다. 이명박정부 초대 교과부 장관을 지낸 김 총장은 교과부 직원들이 스승의 날에 모교와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특별교부금을 전달한 일로 6개월 만에 사퇴했다. 당시에는 관행이었으나 그는 조직의 수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그는 “정부 일이라는 게 그렇게 엄중한 것이라는 좋은 경험을 했다”며 아쉬움이 남진 않는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교과부 장관 재임 당시 김 총장이 가장 펼치고 싶었던 교육정책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학업성취도 평가방법을 꼭 바꾸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4차 산업혁명에 가장 필요한 능력이 창의성과 상상력인데, 대입 수능 등 객관식이 주를 이루는 현재의 평가방식으로는 학생들의 창의성과 잠재력을 측정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는 “정해진 시스템에서 5지선다형 같은 객관식으로 학습 내용을 평가한다면 교육과정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총장은 프랑스의 논술형 대입시험인 바칼로레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바칼로레아처럼 다방면에 걸친 독서량과 논리적 글쓰기를 토대로 창의력과 사고력, 지식을 고루 평가할 수 있는 시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평가제도가 성적순으로 줄세우기가 아닌 잠재력을 평가할 수 있고, 개인별 적성과 흥미를 평가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총장은 “바칼로레아 문제에는 정답이 없어 언론과 일반 대중들도 토론회를 벌일 정도로 관심을 갖는다”며 “이런 시험 방식이 도입돼야 제4차 산업혁명에 맞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칼로레아 같은 평가방법이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한 전제조건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개인적 역량이나 잠재력을 평가할 때 평가하는 사람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며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 정착을 위해 우리 사회가 ‘신뢰사회’가 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신뢰사회는 ‘서로를 믿는 게 안 믿는 것보다 이익이 되는 사회’로, 이념과 지역, 종교 등 한국 사회의 수많은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다.

장관직을 사퇴한 이후 김 총장은 2년간 장관급인 국가과학기술위원장으로 일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평생을 서울공대 교수로서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일한 김 총장에게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도록 중책을 맡긴 것이다.

과기위원장으로 재임할 때도 마찬가지로 과학기술이 곧바로 성과를 내길 바라는 국민적 기대와 이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돌아오는 차가운 시선을 마주해야 했다. 한 번은 연구개발(R&D) 예산이 처음으로 전년도에 비해 5000억원이 깎인 적이 있었는데, 김 총장이 이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 “이러시면 안 됩니다”고 설득했다.

이 대통령은 “과학기술이 금방 성과가 나오면 누가 못하겠어”라며 김 총장의 주장대로 예산을 다시 늘렸다. 김 총장은 그 일이 과기위원장으로서 국가 과학기술에 가장 크게 기여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가 평생을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몸을 바친 덕분에 우리나라는 지난 4월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꿈의 빛’으로 불리는 최첨단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만든 나라로 자리매김시켰다. 김 총장이 2011년 국가과학기술위 위원장으로 재직했을 때 시작한 사업이 5년 만에 결실을 본 것이다.

공직을 떠난 뒤에도 김 총장은 국가 교육정책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정부가 선행학습이나 사교육을 이유로 수학과 과학의 학습량을 줄이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그는 “수학과 과학은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라며 “전공이나 진로에 관계 없이 꼭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수학과 과학 학습량 축소는 인문계 전공자들에게 기초 소양과 합리적 사고력 배양에 어려움을, 이공계 진학희망자들에게는 과학적 사고력의 저하를 안길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김 총장은 지난 5월 국방부가 이공계 전문연구원제도를 2023년까지 폐지한다고 발표한 데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이공계 대학원생들의 병역특례제도는 특혜라고 할 수 없고, 오히려 국방의 의무를 다른 방법으로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수한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경력의 단절없이 연구를 수행해 국가경쟁력을 향상시켜왔다”며 “국방과 과학기술의 발전은 함께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도 이처럼 과학기술을 경시하는 사회 분위기와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는 교육정책 때문이라고 김 총장은 보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 인프라, R&D 투자 비중 세계 1위 등의 여건에도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에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과학을 경제발전의 도구로 생각하고 있어 실질적인 이윤창출에 기여하지 못하는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미래를 비관적으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36년 전, 김 총장이 처음 교수가 됐을 때 그의 목표는 한국에서 연구한 논문을 해외 저명 학술지에 내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의 연구 수준은 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했고, 국가 지원도 부족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총장의 목표는 이뤄졌다. 지금은 해외 유수의 학술지에 한국 논문들이 실리고, 한국인 교수들이 초청강연에 불려다니기도 한다.

그는 “웬만한 국가에서는 한 세대 안에 이룰 수 없는 일들을 해낸 저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며 웃었다.

김 총장은 과거를 잘 돌아보지 않는다고 했다. 지나간 일을 아쉬워해봤자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그는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며 “흔히 ‘예측 불가능한 미래’로 일컫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을 중시하고 변화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는 김 총장의 모습에서 그가 왜 4차 산업혁명의 전도사로 불리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지원선 선임기자 president58@segye.com

◆ 김도연은…


△1952년 부산 출생 △서울대 재료공학과 졸업 △카이스트에서 석사 학위, 프랑스 블레즈파스칼대(클레르몽페랑 제1대학)에서 박사 학위 △아주대 기계공학과 교수 △서울대 재료공학과 교수·공과대학 학장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울산대 총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포스텍 제7대 총장 △국내 최고의 무기재료(세라믹) 공학 권위자로 꼽히며 발표한 논문만 200편 이상 △고든리서치 콘퍼런스 등 세계적 학술대회에 40회 이상 강연자로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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