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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일상 톡톡] 한국 사회, 혐오로 '벌레'먹고 있다

입력 : 2016-07-16 05:00:00 수정 : 2016-07-16 11: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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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OO충'이 들끊는 이유
언제부턴가 대한민국 사회에 혐오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등 주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성별 대결로 치닫는 혐오성 단어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인데요. 평범한 단어에 벌레라는 뜻의 '충(蟲)'을 붙이는 용어는 물론, 된장남·김치녀 등 비방하는 의미의 신조어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같은 단어들이 유행처럼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무언가를 깊게 살펴보는 게 아닌 단순히 좋고 싫음에 대해 빠르게 결론을 내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런 혐오, 비방 표현을 양산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한국 사회에 '벌레'가 들끓고 있다. 멀쩡한 단어에 벌레라는 의미의 '충'을 붙여 대상에 혐오를 드러낸 신조어가 범람하고 있는 것. 'OO충'이라는 단어가 온라인과 SNS를 뒤덮으면서 사회적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 전문기업 다음소프트가 2011년 1월 1일부터 올해 5월 26일까지 블로그 7억2025만3521건과 트위터 92억4959만7843건을 분석한 결과 'OO충'이란 신조어가 빠른 속도로 확산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평범한 단어에 '벌레' 붙여 혐오 드러내

'OO충'은 대부분 대상에 대한 비하와 경멸의 의미로 쓰인다. 언어에 사용자의 의식이 투영되는 만큼, 한국 사회가 혐오로 '벌레'먹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우리 사회가 앓는 병으로 규정하고,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OO충'이란 단어의 시작은 '일베충'이다. 극우성향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 회원을 일컫는 이 단어는 일베 회원들에 대한 비하를 담아 쓰인다. 일베충은 2011년 하반기 처음 등장했으며, 올해만 벌써 15만회를 넘겼다.

한국남자와 벌레가 합쳐진 신조어 '한남충'도 같은 기간 24만796회나 등장했다. 한남충이란 단어 자체는 지난해 8월 처음으로 등장했지만, 올해는 일베충을 뛰어넘어 18만951회나 입에 오르내렸다. 이는 '김치녀'·'된장녀'·'김여사' 등 온라인에서 벌어진 여성 비하에 대한 여성들의 집단 반발이란 해석이다.

그간 우리 사회는 여성에게 'OO녀(女)'란 딱지를 붙여왔는데, 이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라 가능했던 일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남성들도 '한남충'이란 단어에 불편함을 느끼고 스스로 자정하라는 차원에서 해당 단어 사용이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OO녀(女)' 지고 '한남충' 뜬다?

물론 'OO녀'도 '맘충'·'메갈충' 등 또 다른 여성비하 단어로 변주됐다. '맘충'(몰지각한 엄마)이란 신조어는 지난해 4만8508회, 올해는 최근까지 2만1425회 이상 누리꾼들 사이에서 오르내렸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 때 새로 생긴 여성주의 사이트 '메갈리아' 이용자를 일컫는 '메갈충'도 총 6700회 언급됐다. 특히 일베를 중심으로 한 여성혐오와 이에 대항하는 메갈리아의 남성혐오는 서로에게 손가락질하며 온라인 공간을 남녀 성대결의 전쟁터로 만들고 있다.

여성혐오는 경제난으로 인한 불확실성과 불안의 원인이 사회 구조에 있다고 보기보다는 개별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데 집중한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OO충'은 비단 남녀 혐오뿐 아니라 일상에 전방위적으로 퍼지고 있다.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으로 대학을 졸업하고도 사회에 나가지 못하는 대학생들은 '학식충'(6053회 언급)으로 불린다.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해도 취업이 안 되니 학식(學食)만 축낸다는 경멸의 의미다.

초·중·고 학생은 급식을 먹는다는 이유로 '급식충'(8만8526회), 매사 진지하게 설명하려 든다는 이유
로 '설명충'(15만7257회)이라는 단어도 생겼다. 노인을 비하하는 '틀니충'(126회)이란 말도 있다.

◆'학식충' '설명충' '틀니충'의 공통점

보통 'OO충'이 붙는 대상은 대부분 여성이나 노인·유족 등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많다. 약자보다 조금이라도 우위에 있다는 이유로 아무 죄의식 없이 비하·차별 발언을 배설하는 일이 일상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극심한 경쟁'이라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경쟁이 장기화하고 서열의식이 굳어지면서, 본인의 삶보다 못한 사람을 멸시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것.

'OO충'의 무분별한 언급은 법적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다. 실제 서울북부지법 형사항소2부는 인터넷 게시판 글쓴이에게 "일베충 맞네"라고 댓글을 단 직장인 김모(37)씨에게 최근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 50만원을 선고유예했다. 법원은 벌레라는 뜻의 '충'은 부정적 의미가 강하며, 일베 회원에게 일베충이라 지칭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판시했다.

아직 일베충 외에는 모욕·명예훼손 처벌 사례는 없으나, 늘어가는 'OO충' 언급량을 볼 때 처벌 사례도 급증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벌레'라는 단어로 다른 사람을 비하·모욕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이라 'OO충'이란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문화는 형사처벌을 통해서라도 개선돼야 한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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